2026.05.14 06:14 AM
By 전재희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Xi Jinping) 중국 국가주석의 베이징 정상회담은 미·중 무역 갈등을 전면 해결하는 자리라기보다, 충돌을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고 일부 분야에서 거래를 재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양측은 공개적으로는 "긍정적 진전"과 "상호 이익"을 강조했지만, 실제 무역 의제에서는 분명한 한계도 드러났다.
관세 일부 완화, 농산물·에너지·항공기 구매 확대, 희토류 공급 안정, 양국 간 무역·투자 협의체 신설 등이 논의됐지만, 첨단 반도체와 전략 기술 분야의 수출통제는 유지되는 방향이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주목되는 변화는 미국이 중국의 경제 모델 자체를 바꾸려는 기존 접근에서 한발 물러났다는 점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양국은 이른바 '관리된 무역' 방식으로, 국가안보상 민감하지 않은 품목을 중심으로 약 300억 달러 규모의 상호 관세 인하 또는 무역 장벽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국가 주도형, 수출 중심 경제 구조를 미국식 시장경제 모델로 바꾸라고 압박하기보다는, 두 체제가 공존할 수 있는 제한적 거래 공간을 만들겠다는 의미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대표는 양국 경제 시스템이 서로 다르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어디에서 무역을 최적화할 수 있는지 찾는 접근을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은 향후 무역과 투자를 관리하기 위한 협의체, 즉 '무역위원회(Board of Trade)'와 '투자위원회(Board of Investment)' 신설을 논의하고 있다. 이 기구들은 양국이 어떤 품목과 분야에서 거래를 확대할 수 있는지, 어떤 분야는 국가안보상 제한해야 하는지를 구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중 관계가 과거처럼 포괄적 경제 통합을 추구하는 단계가 아니라, 전략 분야는 분리하고 비전략 분야는 거래하는 '선별적 경제 관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국은 비민감 품목을 중심으로 관세 인하를 검토하고 있지만, 전면적인 관세 철폐 가능성은 낮다. 현재 논의되는 구상은 양측이 각각 약 300억 달러 규모의 상품을 지정해 관세를 낮추거나 무역 장벽을 줄이는 방식이다.
다만 미국은 첨단기술, 반도체, AI 관련 품목 등에 대해서는 기존 수출통제와 고율 관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역시 미국산 일부 상품 구매를 확대하더라도, 자국 산업정책과 공급망 독립 전략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
결국 이번 합의의 성격은 "무역전쟁 종식"이라기보다 "무역전쟁의 확전을 막기 위한 제한적 휴전"에 가깝다.
미국 측은 이번 회담에서 중국의 대규모 미국산 상품 구매를 주요 성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이 보잉(Boeing) 항공기, 미국산 농산물, 에너지 구매와 관련한 발표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미 재무장관도 중국 방문 기간 중 대규모 보잉 항공기 주문 발표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에너지, 농산물, 비민감 분야의 중국 투자도 논의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농산물, 특히 대두 구매에 대해서는 기대가 다소 낮아졌다. 베센트 장관은 중국의 대두 구매 문제는 기존 합의로 "이미 처리됐다"고 말해, 이번 회담에서 새로운 대규모 대두 구매 약속이 나오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은 중국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 확대도 기대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과정에서 부과된 관세로 중국의 미국산 원유와 LNG 수입은 크게 줄었거나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2025년 미국산 LNG에 총 25% 관세를 부과한 이후 미국산 LNG 수입을 거의 멈췄으며, 미국산 원유도 2025년 5월 이후 수입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란 전쟁으로 중동 에너지 공급 불안이 커지면서, 중국 입장에서도 미국산 LNG와 원유를 다시 검토할 유인이 생겼다. 특히 중국이 미국산 LNG 관세를 낮추거나 철회할 경우, 중동 리스크를 줄이고 에너지 공급원을 다변화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무역적자 축소와 에너지 수출 확대라는 정치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희토류도 중요한 무역 의제다.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 과정에서 중국은 희토류 수출 제한을 무기로 활용했고, 미국은 첨단 제조업과 방위산업 공급망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이번 회담에서는 중국산 희토류가 미국으로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기존 휴전을 연장하는 문제가 논의됐다. 미국 관리들은 지난해 가을 체결된 희토류 관련 합의가 아직 유효하며, 적절한 시점에 연장 여부가 발표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으로서는 희토류 공급 안정이 핵심이고, 중국으로서는 이를 협상 카드로 유지하려는 계산이 있다. 따라서 희토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다기보다, 양측이 당장 공급망 충돌을 재점화하지 않기로 한 상태에 가깝다.
무역 의제 가운데 가장 민감한 분야는 AI 반도체다. 미국은 엔비디아(Nvidia)의 H200 AI 칩을 중국 기업 10곳가량에 판매할 수 있도록 승인했지만, 실제 배송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상 기업에는 알리바바(Alibaba), 텐센트(Tencent), 바이트댄스(ByteDance), JD닷컴, 레노버(Lenovo), 폭스콘(Foxconn)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안은 단순한 수출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중국에 일부 AI 칩 판매를 허용하면서도 최첨단 기술 우위를 유지하려 하고, 중국은 미국산 칩 의존도를 줄이고 화웨이 등 자국 반도체 생태계를 키우려 한다.
따라서 AI 반도체는 양국이 "거래는 하되 신뢰하지 않는" 대표적 분야다. 이번 회담에서 일부 허용 조치가 나오더라도,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완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는 비교적 분명하다. 미국산 항공기, 농산물, 에너지, 일부 기술 제품의 대중 수출을 늘려 경제적 성과를 확보하는 것이다. 특히 이란 전쟁과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부담 속에서, 중국과의 무역 합의는 국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성과가 될 수 있다.
로이터통신도 이번 방문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제적 승리가 필요한 시점에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반면 시진핑 주석은 단기 구매 약속보다 미·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 중국 외교부 발표에 따르면 시 주석은 양국 관계를 "건설적이고 전략적으로 안정적인 관계"로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역 문제에서도 시 주석은 중국 시장 개방을 강조하면서도, 중국의 산업정책이나 국가 주도 성장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신호는 주지 않았다.
이번 미·중 무역 논의의 핵심은 양국이 다시 대규모 관세전쟁으로 돌아가지는 않겠다는 데 있다. 양측은 일부 관세 완화, 미국산 상품 구매 확대, 무역·투자 협의체 신설, 희토류 휴전 유지 등에서 접점을 찾고 있다.
하지만 차이도 분명하다. 미국은 무역 불균형 축소와 중국 시장 개방을 원하고, 중국은 미국의 관세·수출통제 완화와 안정적 대외환경을 원한다. 미국은 AI 반도체와 첨단기술을 국가안보 문제로 보고 있으며, 중국은 이를 자국 발전을 막는 전략적 압박으로 인식하고 있다.
결국 이번 회담의 무역 성과는 "대타협"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부분 합의"로 볼 수 있다. 미·중은 완전히 화해한 것이 아니라, 충돌 비용이 너무 커진 상황에서 서로 필요한 분야만 거래하는 현실적 휴전에 들어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