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1 11:30 PM

바이낸스 통해 이란 혁명수비대에 수십억달러 흘러갔다... 美 제재망 또 뚫린 정황

By 전재희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Binance)가 이란 정권 및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관련 자금 세탁 통로로 활용됐다는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 보도했다.

내부 컴플라이언스 문건과 블록체인 추적 자료에 따르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암호화폐 거래가 바이낸스를 거쳐 이란 측 네트워크로 이동했으며, 일부 거래는 올해 이달까지도 계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의혹의 중심에는 이란의 대표적 '제재 회피 사업가'로 알려진 바박 잔자니(Babak Zanjani)가 있다.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잔자니 측 네트워크는 단일 바이낸스 계정을 중심으로 약 2년간 8억5천만달러 규모의 거래를 수행했다.

바이낸스 창업자 자오창펑
(바이낸스 최고 경영자 자오창펑. 자료화면)

바이낸스 조사팀은 해당 계정들이 동일 기기에서 접속됐으며, 잔자니의 가족·연인·회사 관계자 명의 계정들이 함께 움직였다는 점을 근거로 제재 회피 가능성을 내부적으로 지적했다.

특히 바이낸스 내부 경고가 여러 차례 발생했음에도 핵심 계정은 최소 15개월 이상 유지됐고, 올해 1월까지도 열려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IRGC의 금융 동맥 역할" 지적

유럽 및 중동 지역 법집행기관 관계자들은 바이낸스가 사실상 IRGC 자금 흐름의 핵심 통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IRGC는 이란 내 군사·경제 권력의 핵심 조직으로, Hamas, Hezbollah, 예멘 후티 반군 등 중동 내 친이란 무장세력 지원에도 관여하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 수사기관들은 잔자니 거래 규모 가운데 실제 자금 이동액은 약 4억2천500만달러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는 대부분 이란 군사·안보 자금 조달에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외에도 이란 중앙은행 관련 지갑에서 지난해 약 1억700만달러 상당의 암호화폐가 바이낸스 계정으로 이동한 정황도 포착됐다. 또한 2024~2025년 동안 바이낸스 계정과 이란 테러 자금 네트워크 사이에서 약 2억6천만달러 규모의 직접 거래가 있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바이낸스 "불법 활동 용납 안해"

바이낸스 측은 관련 보도에 대해 "부정확하다"고 반박했다. 회사 측은 "당시 제재 대상 개인이나 지갑과의 거래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문제가 확인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또한 "2024년 이후 최고 수준의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구축해 제재 위험 노출을 거의 제로 수준으로 줄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내부 문건과 외부 수사기관들의 판단은 상반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바이낸스 조사팀은 해당 계정들을 "정권 자금세탁 네트워크"로 규정했으며, 당국 보고 및 계정 차단 권고까지 내부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행정부 압박 속 다시 부각된 '암호화폐 제재 회피'

이번 사안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최근 미국의 대이란 압박 강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는 현재 이란 자금망 차단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으며, 재무부는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이란 자금 이동을 지원할 경우 책임을 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법무부 역시 바이낸스의 대이란 제재 회피 연루 가능성을 다시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바이낸스는 2023년 미국에서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43억달러 벌금을 낸 바 있다. 창업자 Changpeng Zhao는 당시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받았다.

다만 이후에도 이란 관련 자금 흐름이 계속됐다는 점은, 미국의 대규모 제재 및 감시 체계에도 여전히 상당한 허점이 존재함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 암호화폐로 '전시 금융망' 구축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최근 미국과의 군사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암호화폐 기반 결제망 구축을 적극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이란 당국은 올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일부 선박들에 대해 통행료를 암호화폐 또는 중국 위안화로 납부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잔자니 측 회사인 Zedcex는 자체 스테이블코인인 USDZ까지 발행했으며, 바이낸스를 통해 해당 토큰 거래를 유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재무부 역시 최근 IRGC의 암호화폐 활용 사례로 USDZ를 직접 지목했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국제 금융망 차단 속에서 암호화폐를 사실상 '대체 국제결제 시스템'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중국의 이란산 원유 구매 대금 일부가 암호화폐 형태로 전환돼 이동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전통 금융 제재만으로는 자금 흐름을 차단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