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9 06:22 AM
By 전재희
미국 주택시장의 침체가 4년째 이어지면서 부동산 중개업계 전반에 구조적인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높은 모기지 금리와 주택가격 부담으로 거래가 급감한 가운데, 부동산 중개사들은 업계를 떠나거나 부업을 찾고 있으며, 모기지 대출 담당자와 주택 관련 산업 전반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 보도했다.
텍사스 포트워스 지역의 부동산 중개사 킴 테일러(Kim Taylor)는 2023년 남편과 함께 자체 부동산 중개회사를 설립하며 사업 확장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팬데믹 시기의 과열은 진정됐지만 시장은 비교적 양호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후 고금리 환경이 장기화되면서 주택 수요가 급감했고, 매물은 장기간 시장에 머무르게 됐다. 결국 소속 중개사 대부분이 다른 직업을 찾아야 했고, 남편 역시 학군 관련 직장으로 옮겼다. 테일러는 올해 봄 회사를 폐업하고 다른 중개업체에 합류했다.

그는 "지난 11개월은 내 경력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며 현재 시장 상황을 "출혈이 멈추지 않는 상태"라고 표현했다.
현재 미국 주택시장은 수십 년 만의 최악의 침체를 겪고 있다. 미국 부동산 시장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기존주택 거래량은 가구 수 대비 기준으로 198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예상보다 오랜 기간 이어지는 거래 부진으로 업계 종사자들의 생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부동산 중개사들은 대부분 독립 계약자 형태로 일하기 때문에 거래가 성사되어야만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거래량 감소는 곧바로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특히 주택 판매가 지연되면서 신규 고객 확보와 거래 성사 모두 어려워지고 있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2025년 조사에서 부동산만을 본업으로 하는 중개사 비율은 71%로 집계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부동산 업계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많은 중개사들이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추가 수입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생산성이 높은 최상위 중개사들은 여전히 성공하고 있지만 부동산 업계의 중산층이 사실상 붕괴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신규 진입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경력 2년 이하 중개사의 경우 2024년 평균 거래 건수는 3건에 불과했으며, 부동산 관련 총수입은 8,100달러 수준에 그쳤다. 전체 중개사의 평균 거래 건수도 10건, 총수입은 5만8,100달러로 집계됐다.
주택시장 침체는 부동산 중개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 미국 모기지은행협회(MBA)에 따르면 모기지 산업 종사자 수는 2021년 정점 대비 약 40% 감소했다. 연간 10건 이상 대출을 성사시키는 핵심 대출 담당자 수도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디트로이트에서 모기지 대출 담당자로 일했던 트리스탄 홀트(Tristan Holt)는 지난해 업계에 진입했지만 충분한 거래를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올해 4월 업계를 떠났다. 그는 현재 은행 또는 보험업계 취업을 모색 중이다.
시장 침체 외에도 업계에는 새로운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024년 부동산 중개 수수료 체계를 바꾼 법적 합의 이후 일부 구매자들은 중개사 없이 거래를 진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매수자와 매도자가 직접 정보를 수집하고 거래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이전보다 쉬워졌다.
이 같은 변화는 특히 중소형 중개업체들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형 중개회사, 건설업체, 금융기관들이 중소 업체를 인수하며 시장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 대형 업체들은 에스크로 서비스, 타이틀 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을 함께 제공하며 원스톱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다.
주택거래 감소의 여파는 주택보증보험 판매업체, 감정평가사, 사진 촬영업체, 가전제품 제조업체 등 관련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텍사스에서 주택보증 상품을 판매하는 셰리 레인(Sheri Lane)은 "주택 판매는 수많은 산업이 연결된 생태계"라며 "주택이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 모두가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지 않는 한 미국 주택시장의 거래 부진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시기 형성된 초저금리 모기지를 보유한 기존 주택 소유자들이 매물을 내놓지 않으면서 거래량 회복도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주택시장은 거래 절벽, 고금리, 수수료 구조 변화, AI 기술 확산이라는 복합적인 압박 속에서 부동산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