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4 10:03 AM

러시아 엘리트 내부서 커지는 전쟁 회의론… 푸틴은 강경 노선 고수

By 전재희

우크라이나 전쟁이 5년째로 접어든 가운데 러시아 권력층 내부에서도 전쟁 지속에 대한 회의론이 공개적으로 고개를 들고 있다.

전쟁 초반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의 강경 노선을 지지했던 일부 인사들조차 이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 어렵다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의 교착 상태를 돌파하지 못하는 현실이 뚜렷해지면서, 러시아 기득권층 안에서도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자료화면)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독립성을 약화시키려는 초기 전쟁 목표에서 물러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강경파 내부에서도 "완전한 승리 어렵다"

주목되는 점은 전쟁 회의론이 러시아의 자유주의 성향 인사나 경제 엘리트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푸틴의 전쟁 목표를 지지해온 강경파 일부도 이제 러시아군의 한계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대표적 인물이 올레그 차료프(Oleg Tsaryov)다. 그는 2014년 우크라이나를 떠나 러시아로 망명한 전 우크라이나 의원으로, 2022년 러시아가 키이우를 점령할 경우 친러 괴뢰정부 수반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차료프는 최근 텔레그램 글에서 러시아 선전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필연적 승리라는 위험한 환상을 만들어냈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체 현실을 만드는 전문가들이 국민뿐 아니라 자기 자신들까지 자신들이 만든 환상이 현실이라고 믿게 만들었다"며 "환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언젠가 충돌할 수밖에 없고, 지금 그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고 적었다.

또 다른 강경파 인사인 알렉세이 차다예프(Aleksey Chadaev)도 현재 전쟁 노선을 계속 밀어붙이는 것은 단순히 '승리하지 못하는 길'이 아니라 "전면적 패배로 가는 길"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러시아가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위해 전쟁을 일시 중단하고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러 정권 수립은 더 이상 현실적 목표 아니다"

러시아 고등경제대학의 유럽·국제연구센터를 이끄는 바실리 카신(Vasily Kashin)도 최근 러시아 외교전문지에 게재한 글에서 푸틴의 초기 전쟁 목표가 현실성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십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전쟁에서 죽거나 다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앞으로도 반러·친서방 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키이우에 친러 정권을 세우겠다는 목표는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카신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군·민간 지도부를 제거하는 극단적 확전이 이뤄지더라도, 그 결과는 러시아에 우호적인 정권이 아니라 더 적극적이고 급진적인 새 우크라이나 지도부의 등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는 또한 러시아가 핵 위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결국 현재 전선에서의 분쟁 동결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전면적인 핵 위기를 감수하지 않고도 지금 당장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크렘린 내부도 실용파와 확전파로 갈라져

러시아 내부의 이런 실용주의적 흐름이 전면적인 정책 변화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러시아 권력층 안에는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항복과 서방과의 역사적 단절을 요구하는 초강경파가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WSJ는 러시아 분석가들을 인용해, 러시아 군사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 크렘린 일부 세력과 대외정보국, 경제 관료 그룹 사이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전쟁이 러시아 경제와 사회에 주는 부담을 줄이고 일정 수준의 정상화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확전 노선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내 강경 세력과 전쟁 선전가, 군사 자원봉사자, 극단적 보수 성향 분석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가 서방과 완전히 결별하고, 정교회적 이념과 이란식 신정체제, 북한식 전체주의가 섞인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식의 급진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알렉산더 가부예프(Alexander Gabuev) 소장은 "전쟁 5년째가 되면서 일부 사람들은 전쟁을 1~2년 더 지속해도 러시아의 협상력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푸틴이 자신이 막다른 길에 있고, 전쟁의 수익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며 "그가 생각을 바꿨다는 신호는 없다"고 평가했다.

푸틴, 협상보다 미사일 공세 선택

푸틴 대통령은 최근 실용파의 휴전론과는 반대로 키이우와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들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강화했다. 월요일 밤 대규모 공습으로 민간인 22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다쳤다. 이는 전쟁 전체를 통틀어 가장 치명적인 공격 중 하나로 꼽힌다.

푸틴 대통령은 공격 몇 시간 전 안보 관계자들과의 회의에서 우크라이나가 "분쟁 전체의 새로운 성격"을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러시아가 군사적 압박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공세 수위를 높일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이번 공습이 러시아 점령지인 스타로빌스크(Starobilsk)의 교원대 기숙사를 겨냥한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측은 이 공격으로 여학생들이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우크라이나는 해당 지역의 러시아 드론 부대 기지를 타격했다고 밝혔다. 유엔과 독립기관들은 해당 지역에 자유롭게 접근하지 못해 양측 주장을 검증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드론전, 러시아 병참 마비

전선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중거리 공격 드론이 러시아 병참을 흔들고 있다. 최근 며칠간 우크라이나 드론은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 전선 기지를 연결하는 도로의 연료 트럭과 군사 호송대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일부 드론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격으로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지역에서는 연료 배급제가 도입됐고, 크림반도에서는 연료 공급이 이미 바닥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군사 평론가들은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공세가 임박했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러시아 유럽 지역 전역에서 장거리 타격 성과를 높이고 있으며, 푸틴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례 경제회의가 개막한 날에도 현지 석유 터미널을 공격했다.

독일의 닐스 슈미트(Nils Schmid) 국방차관은 우크라이나의 드론 작전이 러시아 내부에 큰 혼란을 일으킬 잠재력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다만 러시아는 권위주의적 통제력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충격이 사회와 정치적 의사결정으로 확산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초강경파, 회의론 확산 차단

러시아 내 전쟁 회의론이 공개적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초강경파와 안보 기관은 이런 논의가 확산되는 것을 강하게 경계하고 있다.

친크렘린 성향 신문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Moskovski Komsomolets)는 최근 과거 러시아의 패전이 오히려 더 큰 자유와 번영을 가져왔다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했다가 삭제했다. 이 글은 우크라이나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1853~1856년 크림전쟁과 1904~1905년 러일전쟁의 패배가 러시아 사회 변화의 계기가 됐다는 점을 다뤘다.

러시아 의회의 유력 인사인 퇴역 장군 안드레이 구룰료프(Andrey Gurulyov)의 텔레그램 계정에도 우크라이나 전선 교착과 러시아 지휘부의 과도한 낙관론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몇 시간 뒤 구룰료프는 자신의 계정이 해킹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러시아 논평가들 사이에서는 그가 불편한 진실을 말한 뒤 강제로 입장을 철회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전쟁은 이 체제의 생존 방식"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 내부의 회의론이 곧바로 전쟁 종식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파블로 클림킨(Pavlo Klimkin) 전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러시아 체제 자체가 군사화돼 있기 때문에 푸틴이 이성적 목소리에 귀 기울일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쟁은 이 정권의 삶의 방식"이라며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아서 멈추면 쓰러진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압박해 이른바 '앵커리지 합의'를 수용하도록 하면 전쟁 종식을 검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지난해 8월 알래스카에서 푸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도달한 것으로 알려진 합의를 가리킨다. 해당 구상은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 북부의 방어선 도시들을 러시아에 넘기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러시아군도 해당 지역에서 정상회담 이후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유럽연합의 카야 칼라스(Kaja Kallas)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평화협상이 멈춰 있고 결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달성하지 못한 최대 요구를 미국이 협상장에서 관철해주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은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며, 설령 젤렌스키 대통령이 수용하더라도 우크라이나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쟁 장기화의 수익 체감

현재 러시아 엘리트 내부에서 제기되는 핵심 문제는 전쟁을 더 지속해도 얻을 것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막대한 인명 손실과 경제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전선에서 결정적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드론전과 장거리 타격 능력을 키우며 러시아 본토와 점령지 병참망을 압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푸틴 대통령은 아직 전쟁 목표를 수정하지 않고 있다. 그는 협상보다 군사 압박을 택하고 있으며, 러시아 권력 구조 안의 초강경파도 여전히 확전론을 밀어붙이고 있다.

러시아 내부에서 전쟁 회의론이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한 변화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푸틴의 결정을 바꿀 만큼 강한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전쟁이 러시아에 점점 더 큰 비용을 안기고 있음에도, 크렘린은 여전히 물러서기보다 더 강한 압박으로 현실을 바꾸려는 길을 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