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5 07:36 AM

사모대출펀드 시장, '차입자 우위' 시대 저문다

By 전재희

 사모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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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급성장한 비은행권 사모대출펀드(private credit fund) 시장에서 대출 관행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와 대출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운용사들이 신규 대출 기준을 강화하고 금리와 수수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사모대출펀드는 은행이 아닌 자산운용사나 대체투자 운용사가 기업에 직접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투자상품이다. 일반적인 사모펀드가 기업 지분을 인수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라면, 사모대출펀드는 주로 중견기업이나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에 대출을 제공하고 이자수익을 얻는 구조다.

그동안 이 시장은 저금리 이후 고수익을 찾는 기관투자자와 고액자산가 자금이 몰리면서 빠르게 커졌다. 운용사들은 더 많은 대출 거래를 따내기 위해 차입자에게 낮은 금리, 느슨한 계약 조건, 이자 지급 유예 등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그러나 최근 투자자들이 자금을 빼내고 대출 손실 가능성에 민감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투자자 환매 압력에 운용사들 보수적 전환

사모대출펀드 시장의 변화는 투자자 이탈에서 시작됐다. 개인 고액자산가들은 최근 몇 달 동안 사모대출펀드가 보유한 기업 대출의 부실 가능성을 우려하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환매를 요청했다.

운용사들은 이러한 우려가 과도하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동시에 투자자 불안을 달래기 위해 대출 기준을 더 엄격하게 바꾸고 있다. 새로 돈을 빌려주는 기업에 대해서는 더 높은 금리와 수수료를 요구하고, 부채 규모도 예전보다 보수적으로 책정하고 있다.

아레스매니지먼트(Ares Management)의 마이클 아로게티(Michael Arougheti) 최고경영자는 최근 투자자 콘퍼런스에서 "시장 소음과 일부 자금 유출의 긍정적 효과는 경쟁 압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라며 "시장이 차입자 친화적 환경에서 대출기관 친화적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사모대출펀드 운용사 입장에서 더 이상 무리하게 낮은 가격으로 대출을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됐다는 의미다.

신규 대출 금리와 수수료 동반 상승

가장 뚜렷한 변화는 대출 금리다. 사모대출펀드 운용사들은 신규 대출에서 기준금리에 더하는 가산금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실적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이런 변화가 두드러진다.

투자은행 자문사 링컨인터내셔널(Lincoln International)에 따르면, EBITDA가 1억 달러를 넘는 기업이 직접대출 시장에서 발행한 신규 부채의 중간 가산금리는 5월 5.13%를 기록했다. 이는 4월 5.00%, 3월 4.88%에서 오른 것으로, 거의 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출 비용은 금리뿐 아니라 수수료에서도 올라가고 있다. 사모대출펀드 운용사들은 대출 실행 시 부과하는 선취성 비용도 늘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오리지널 이슈 디스카운트(original issue discount)'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기업이 1억 달러를 빌리더라도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그보다 적다. 하지만 갚아야 할 원금은 여전히 1억 달러이고, 여기에 이자까지 붙는다. 지난해 말에는 1억 달러 대출을 받은 기업이 평균적으로 약 9,915만 달러를 실제 수령했지만, 올해 4월 말에는 평균 수령액이 9,896만 달러로 줄었다. 차입자 입장에서는 대출을 받는 순간 약 104만 달러의 비용을 부담하는 셈이다.

일부 거래에서는 할인 폭이 훨씬 크다. 찰스뱅크캐피털파트너스(Charlesbank Capital Partners)는 최근 한 사모펀드의 인수 대상 기업에 약 1억 달러 대출을 제안하면서 약 5%의 디스카운트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약 500만 달러의 선불성 비용에 해당한다.

차입자에게 유리했던 특혜 축소

사모대출펀드 운용사들은 차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제공하던 각종 완화 조건도 줄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자 지급 유예다. 과거에는 차입 기업이 당장 현금으로 이자를 내지 않고, 나중에 원금에 더하는 방식이 비교적 쉽게 허용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조건이 줄어드는 추세다.

또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에 추가 부채를 얹는 것도 더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장비나 유형자산을 담보로 추가 차입을 일으키는 방식, 기업 자산을 따로 매각하거나 담보로 활용하는 방식도 예전보다 까다롭게 관리되고 있다.

재무지표 조정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다. 사모펀드와 차입 기업은 그동안 일회성 비용이나 재량적 비용을 EBITDA에서 제외해 기업을 더 건전하게 보이도록 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대출기관들은 이제 이런 조정을 예전만큼 쉽게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기업의 실제 상환 능력을 더 보수적으로 평가하겠다는 뜻이다.

AI 리스크도 대출 심사에 반영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이 대출 심사 기준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일부 운용사는 AI가 특정 산업의 수익모델을 크게 흔들 수 있다고 보고, 관련 업종에 더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구겐하임인베스트먼트(Guggenheim Investments)는 회계법인과 화이트칼라 서비스 기업을 더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AI가 이들 업종의 업무를 대체하거나 수익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구겐하임은 AI 시대에 어떤 기업이 살아남고 어떤 기업이 타격을 받을지 확신하기 어려운 경우, 차입 가능한 부채 규모를 줄이고 담보가치 대비 대출비율을 낮추며 계약 조건을 더 엄격하게 설정하고 있다.

구겐하임 기업신용 부문의 조 맥커디(Joe McCurdy) 대출총괄은 "누가 승자가 되고 누가 패자가 될지를 놓고 논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며 "가격을 올리는 것보다 낮은 레버리지로 대응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 인수금융에도 제약 강화

이번 변화는 사모펀드 업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모펀드들은 기업을 인수할 때 대규모 차입이 필요하고, 최근 몇 년 동안 은행 대신 사모대출펀드가 주요 자금 공급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 사모대출펀드 운용사들은 사모펀드가 인수 대상 기업에 과도한 부채를 얹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추가 차입 한도, 자산 매각 제한, 담보 제공 제한, 재무지표 조정 제한 등이 강화되고 있다.

이는 최근 몇 년과 정반대의 흐름이다. 당시에는 사모대출펀드 운용사들이 빠르게 불어난 자금을 집행해야 했고, 좋은 거래를 따내기 위해 사모펀드가 원하는 조건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 자금이 모두 몰리면서 운용사 간 경쟁은 치열했고, 차입자는 그 경쟁을 이용해 더 유리한 조건을 얻었다.

그러나 투자자 환매가 늘고 신규 자금 유입이 둔화되면서, 운용사들은 더 이상 무리하게 자금을 집행할 필요가 줄었다. 경쟁이 약해지자 대출 조건은 자연스럽게 운용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3월부터 분위기 전환... 일부 거래 재가격·철회

사모대출 시장의 분위기가 바뀐 첫 신호는 3월 중순쯤 나타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진행 중이던 일부 대출 거래의 가격이 다시 조정됐고, 몇몇 거래는 아예 철회됐다.

이후 개인투자자들의 환매 요청이 더 커지면서 운용사들의 가용 자금도 줄었다. 이는 특히 신용도가 최상급이 아닌 대출에서 경쟁을 크게 낮췄다. 과거에는 위험이 조금 있어도 여러 운용사가 대출을 따내기 위해 조건을 낮췄지만, 이제는 위험에 맞는 대가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칼라일그룹(Carlyle Group)의 하비 슈워츠(Harvey Schwartz) 최고경영자는 최근 "대출기관에 더 유리한 조건이 즉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모대출펀드 시장의 정상화인가, 균열인가

이번 변화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사모대출펀드 시장이 과열 국면에서 벗어나 정상화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지나치게 차입자에게 유리했던 조건이 조정되고, 운용사들이 위험에 맞는 금리와 보호장치를 다시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모대출펀드 성장 모델의 균열이라는 해석이다. 개인투자자들이 환매를 요구하고, 펀드 규모가 줄고, 대출 손실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운용사들이 방어적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사모대출펀드는 본질적으로 유동성이 낮은 기업 대출에 투자하면서, 개인투자자에게는 일정 수준의 환매 가능성을 제공해왔다. 시장이 안정적일 때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지만, 투자자들이 동시에 자금을 회수하려 하면 이 구조적 불일치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운용사들이 주도권을 되찾고 있다. 금리는 오르고, 수수료는 커지고, 레버리지는 낮아지고, 계약 조건은 엄격해지고 있다. 사모펀드와 차입기업 입장에서는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거래 구조도 더 까다로워질 수 있다.

결국 사모대출펀드 시장은 '돈을 쓰기 위해 조건을 풀어주던 시대'에서 '위험을 따지고 그 대가를 요구하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높은 수익률을 앞세워 급성장했던 private credit 시장은 이제 투자자 환매, 대출 부실 우려, AI로 인한 산업 변화라는 압박 속에서 본격적인 체질 개선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