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5 06:12 PM

미 증시 급락 마감... 강한 고용지표에 금리인상 우려 재부상

By 전재희

미국 증시가 5일 급락 마감했다. 5월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훨씬 강하게 나오면서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하에 나서기 어려워졌다는 우려가 커졌고, 최근 시장 상승을 이끌었던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관련 기술주에 매도세가 집중됐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695.15포인트, 1.35% 하락한 50,866.78에 마감했다. S&P 500은 200.57포인트, 2.64% 떨어진 7,383.74를 기록했고, 나스닥종합지수는 1,121.53포인트, 4.18% 급락한 25,709.43에 거래를 마쳤다.

이번 하락으로 S&P 500은 9주 연속 금요일 기준 상승 흐름을 끝냈다. 이는 2023년 12월 이후 가장 긴 주간 상승 행진이었다. 나스닥은 2025년 4월 이후 최대 하루 낙폭을 기록했다.

반도체주, 2020년 3월 이후 최대 낙폭

매도세는 특히 반도체주에 집중됐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하루 만에 2020년 3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고, 시가총액 1조 달러 이상이 증발했다.

뉴욕 증권 거래소
(뉴욕 증권거래소. 자료화면)

엔비디아(Nvidia)는 6.2% 하락했다. 인텔(Intel), 마이크론(Micron), AMD, 브로드컴(Broadcom)은 7.9%에서 13.3% 사이로 급락했다. 최근 AI 투자 열풍을 타고 급등했던 반도체주들이 고평가 부담과 금리 상승 우려가 겹치며 일제히 조정을 받은 것이다.

S&P 500의 11개 업종 가운데 기술주는 5.8% 급락했다. 반면 필수소비재 업종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며 방어주 성격을 드러냈다.

카슨그룹의 라이언 데트릭(Ryan Detrick) 수석 시장전략가는 "지난 9주 동안 주식, 특히 기술주와 반도체주에서 기록적인 상승세가 이어진 뒤 오늘 댐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는 예상보다 강한 고용지표가 연준을 곤란한 위치에 놓이게 했고, 시장은 올해 가장 많이 오른 종목들을 중심으로 반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5월 고용 17만2천 명 증가... 금리인하 기대 약화

이날 시장을 흔든 핵심 요인은 5월 고용보고서였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5월에 17만2,000개의 일자리를 추가했다. 이는 애널리스트 예상치의 두 배 이상이다. 실업률은 4.3%로 유지됐다.

강한 고용지표는 미국 경제가 여전히 견조하다는 신호다. 그러나 시장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고용이 강하면 임금과 소비가 유지되고, 이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울 수 있다. 결국 연준이 금리 인하를 미루거나, 경우에 따라 추가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융시장은 12월 연준 회의에서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을 42.7%로 반영하고 있다. 이는 고용보고서 발표 이후 금리 경로에 대한 시장의 인식이 크게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반도체 강세장 끝은 아니다" 시각도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이날 급락이 펀더멘털의 변화라기보다 포지션 쏠림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웰스파고의 오성 권(Ohsung Kwon) 수석 주식전략가는 "오늘 시장 반응은 펀더멘털보다 포지셔닝에 의해 더 크게 움직였다"며 "반도체 업종이 지나치게 과매수 상태였기 때문에 매도세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강세장이 끝났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AI와 반도체주는 최근 몇 주 동안 미국 증시 상승의 핵심 동력이었다. 나스닥과 S&P 500은 잇따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투자자들은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반도체 수요 증가에 베팅해왔다. 그러나 높은 밸류에이션은 금리 상승과 실적 전망 변화에 취약하다. 이날 매도세는 그 취약성이 한꺼번에 드러난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이란 전쟁과 에너지 물가도 부담

금리 우려 외에도 중동 전쟁 장기화가 투자심리를 압박했다.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해협 재개 지연 가능성은 에너지 가격 상승이 더 넓은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로이터는 이란이 헤즈볼라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고, 이스라엘이 남부 레바논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단기 평화 합의가 더 복잡해졌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세 차례 휴전을 중재했지만, 교전은 크게 줄었을 뿐 양측은 여전히 공습을 주고받고 있다.

이처럼 강한 고용, 높은 금리, 중동발 에너지 불안이 동시에 겹치면서 투자자들은 주말을 앞두고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는 쪽으로 움직였다.

개별 종목도 희비 엇갈려

기술주 외에도 일부 개별 종목의 변동성이 컸다. 룰루레몬 애슬레티카(Lululemon Athletica)는 연간 이익 전망을 낮추고 2분기 실적 전망도 월가 예상치를 밑돌면서 8.6% 급락했다. 반면 콘택트렌즈 업체 쿠퍼컴퍼니스(Cooper Companies)는 2분기 실적이 예상치를 웃돌며 8.6% 상승했다.

암호화폐 관련주도 약세를 보였다. 비트코인이 4.1% 하락하면서 코인베이스(Coinbase)는 7.1%, 스트래티지(Strategy)는 6.9% 떨어졌다.

또 S&P글로벌은 주요 지수 편입 요건을 변경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스페이스X(SpaceX)가 세계 최대 IPO를 통해 상장하더라도, 곧바로 S&P 500에 편입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시장 폭도 약했다

이날 하락은 일부 대형 기술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는 하락 종목이 상승 종목보다 3.14대 1로 많았다. 나스닥에서도 1,074개 종목이 올랐지만 3,737개 종목이 하락해, 하락 종목이 상승 종목보다 3.48대 1로 많았다.

거래량도 많았다. 미국 거래소 전체 거래량은 228억9,000만 주로, 최근 20거래일 평균인 202억9,000만 주를 웃돌았다. 이는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포지션을 조정했음을 보여준다.

좋은 고용이 나쁜 뉴스가 된 하루

이날 시장은 전형적인 "좋은 뉴스가 나쁜 뉴스가 된" 흐름을 보였다. 고용이 강하다는 것은 경기침체 우려를 낮추지만, 지금처럼 인플레이션과 금리 부담이 남아 있는 환경에서는 연준의 완화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

AI와 반도체주가 최근 증시 상승을 주도한 만큼, 금리 부담이 커지자 매도세도 이들 종목에 집중됐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급락이 반도체 강세장의 종료라기보다는 과열된 포지션의 조정이라고 보고 있다.

결국 시장의 다음 관건은 연준의 금리 경로와 AI 관련 기업들의 실적 지속성이다. 5월 고용지표는 미국 경제가 여전히 강하다는 점을 보여줬지만, 동시에 금리 인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 증시는 강한 성장과 높은 금리라는 상반된 신호 사이에서 다시 변동성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