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3 07:09 AM

미국, 원전 건설에 175억 달러 저금리 대출... AP1000 원자로 10기 추진

By 전재희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가 미국 내 대형 원자로 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전력회사에 총 175억 달러 규모의 저금리 대출을 제공할 계획이다.

미 에너지부는 전력회사들이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의 주력 원자로인 AP1000의 주요 장비를 발주하는 데 정부 자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대출은 원자로 2기로 구성된 사업 5개에 제공되며, 전체적으로 AP1000 원자로 10기의 건설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미국 웨스팅하우스 원전
(미국 웨스팅 하우스 원전. 자료화면)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미 에너지부 장관은 이번 조건부 대출이 미국의 원자력산업을 다시 활성화하려는 트럼프 행정부 계획의 일부라고 밝혔다.

라이트 장관은 정부 대출을 통해 대형 원자로 건설 일정을 최대 3년 앞당기고 공사비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AP1000 신규 원자로, 2035년부터 가동 목표

웨스팅하우스의 댄 섬너(Dan Sumner) 최고경영자는 신규 AP1000 원자로가 이르면 2035년부터 가동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대출계획이 미국에서 여러 원자로를 동시에 건설하는 대규모 원전 개발을 시작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부에 따르면 전력회사 7곳이 현재 제공 가능한 5개 프로젝트 대출에 대해 공식적인 참여 의향서를 제출했다.

에너지부는 해당 전력회사들의 명칭은 공개하지 않았다.

참여 기업들은 웨스팅하우스와 공동사업체를 구성하고, 각자 최소 한 곳 이상의 원자로 후보지를 제시할 예정이다.

후보지는 기존 원자로 또는 대형 발전소가 운영되는 지역이나, 과거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인허가 작업이 진행됐던 부지가 중심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듀크·도미니언 등 신규 원전 검토

듀크에너지(Duke Energy)와 도미니언에너지(Dominion Energy), 퍼시피코프(PacifiCorp) 등 미국 주요 전력회사들은 앞으로 수십 년 안에 대형 또는 소형 원자로를 가동하겠다는 계획을 규제당국과 투자자들에게 밝혀왔다.

뉴욕주와 일리노이주 등 일부 주정부도 원자력 발전량 확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 원자력발전은 전체 전력생산량의 약 20%를 담당하고 있지만, 1990년대 초 이후 새로 건설된 원자로는 많지 않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급격한 증가로 전력수요가 늘어나면서 안정적인 대규모 전력원인 원자력발전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

AP1000 원자로 한 기의 발전용량은 약 1,100메가와트로, 중형 도시나 대규모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보글 원전, 예상 공사비 두 배 넘겨

정부의 금융지원은 미국에서 초기 사업의 비용 초과와 공사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은 AP1000 원자로의 추가 발주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에서 완공된 AP1000 원자로는 조지아주의 보글(Vogtle) 원자력발전소 3·4호기 두 기뿐이다.

두 원자로의 당초 예상 공사비는 140억 달러였지만 최종 비용은 3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당초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실제 상업운전은 2023년과 2024년에 시작됐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유사한 원자로 사업이 진행됐지만 공사비가 90억 달러를 넘은 뒤 2017년 중단됐다.

이후 미국 전력회사와 투자자, 규제당국은 대형 원자로의 비용과 장기 공사 위험을 우려해 신규 AP1000 발주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장비 먼저 주문해 건설기간 단축

에너지부는 정부의 저금리 대출로 여러 원자로의 핵심 장비를 한꺼번에 발주하면 원전 공급망을 다시 활성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자로 사업이 인허가와 규제심사, 최종 투자결정을 거치는 동안 장비 생산을 먼저 시작해 전체 건설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원자로 압력용기와 증기발생기, 원자로 냉각재펌프 등 특수 장비는 제작하는 데 수년이 걸릴 수 있다.

원자로 냉각재펌프는 무게가 약 170톤에 달하며, 밀폐된 상태에서 원자로 노심으로 물을 순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웨스팅하우스에 따르면 AP1000 원자로 한 기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장기 제작품목은 약 160개다.

이 가운데 150개는 미국 내에서 생산할 수 있다고 회사는 밝혔다.

동일 설계 적용해 장비 공유

웨스팅하우스는 건설비를 낮추기 위해 조지아주에서 마지막으로 건설된 원자로를 기준으로 AP1000 설계를 표준화했다.

각 원자로에 동일한 부품과 장비를 사용하면 한 사업이 지연될 경우 이미 제작된 장비를 다른 사업장으로 옮길 수 있다고 에너지부는 설명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원자로 장비 가격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고정가격 계약도 제공할 계획이다.

다만 발전소 부지 조성과 인력, 건설관리 비용은 지역과 사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전체 공사비를 통제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빅테크 장기 전력구매 계약도 필요

원전사업이 실제 건설단계로 진입하려면 대형 기술기업과 약 20년 기간의 장기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하는 방안도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간 전력 판매가격과 수요가 보장되면 전력회사가 부담하는 투자위험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기술기업들은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소형모듈원자로와 폐쇄 원전의 재가동 등 다양한 원자력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에너지부는 위험 분담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기술기업과 엔지니어링 회사, 전력회사 등과 협의해왔다고 밝혔다.

중국에서는 AP1000 기반 원자로 확대

웨스팅하우스는 미국 밖에서 중국에 AP1000 원자로 4기를 건설했다.

중국은 이후 해당 기술의 사용권을 확보하고 설계를 수정해 'CAP1000'이라는 원자로를 건설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자료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서는 AP1000 기술을 바탕으로 한 원자로 11기가 추가로 건설 중이다.

중국이 동일 계열의 원자로를 대규모로 반복 건설하는 동안 미국에서는 보글 원전 완공 이후 추가 AP1000 사업이 시작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러 원자로를 동시에 발주하고 동일한 설계를 반복 적용해 미국에서도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트럼프, 2030년까지 대형 원자로 10기 착공 목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 원자력산업을 활성화하고 2030년까지 대형 원자로 10기의 건설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미 정부는 대형 원자로뿐 아니라 아직 초기 개발단계인 소형 원자로 기술도 지원할 방침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가을 웨스팅하우스와 협력해 800억 달러 규모의 신규 원자로 건설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협력안에 따르면 웨스팅하우스의 이익이 175억 달러를 넘을 경우 초과 이익의 20%가 연방정부에 돌아가도록 돼 있다.

에너지부는 이번에 제공하는 175억 달러의 저금리 대출이 지난해 발표된 협력계획과는 별개의 제도지만, 두 정책이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용 초과 방지가 사업 성패 좌우

정부의 저금리 대출은 전력회사의 금융비용을 줄이고 핵심 장비를 조기에 발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동일한 원자로를 여러 기 연속 건설하면 공급망과 건설인력이 축적한 경험을 활용해 공사비를 낮출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보글 원전에서 공사비가 당초 예상의 두 배를 넘고 완공이 7년 이상 늦어진 만큼, 실제 건설과정에서 비용과 일정을 통제할 수 있을지가 핵심 과제로 남는다.

이번 계획에 참여할 전력회사와 건설부지, 정부 대출의 구체적인 조건은 향후 심사와 협상을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