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30 07:29 AM
By 전재희
로스앤젤레스(LA) 도심의 노후 오피스 단지가 저렴한 임대 아파트로 전환된다. 지역 부동산 기업들이 LA에 저소득층 주택 4,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내놓은 것으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 Times)가 이 같은 내용을 30일 보도했다.
첫 번째 사업은 LA 세계무역센터(L.A. World Trade Center)를 개조하는 2억 달러(약 2,70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다.
피게로아 스트리트(Figueroa Street)에 위치한 이 10층짜리 오피스 단지는 1970년대에 지어진 골칫거리 건물로, 개조 후에는 512가구의 아파트로 탈바꿈하게 된다. 도심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저렴한 주택 전환 사업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 중 하나다.
향후 5년 안에 도심 일대에서 추진될 후속 사업으로는 추가적인 오피스 주택 전환 프로젝트와 신규 주택 건설이 포함될 예정이라고 보도에 따르면 전해졌다.
이번 사업을 이끄는 주체는 지역 최대 부동산 기업으로 꼽히는 재미슨(Jamison)과 케네디 윌슨(Kennedy Wilson)이다. 재미슨은 LA에서 오피스 건물을 시세에 맞는 임대 아파트로 전환하는 사업을 가장 활발하게 벌여온 회사로, 현재도 도심 오피스 고층 빌딩을 고급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대규모 공사를 진행 중이다.
케네디 윌슨은 비벌리힐스(Beverly Hills)에 본사를 둔 부동산 투자 회사로, 비영리 법인 빈티지 하우징(Vintage Housing)을 산하에 두고 있다. 빈티지 하우징은 세금 공제 혜택과 주·연방 정부의 재원을 활용해 저렴한 주택을 건설·운영하는 기관이다.
빈티지 하우징과 재미슨의 신설 저렴 주택 사업 부문인 아든 레지덴셜(Arden Residential)이 공동으로 사업을 이끌며, 자격을 갖춘 입주자에게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로 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세계무역센터는 2028년 초 개장 시 '스카이 캐슬(Sky Castle)'로 이름이 바뀔 예정이다. 개발사 측에 따르면 임대료는 원룸(1베드룸) 기준 월 937달러부터 시작되며, 2베드룸과 3베드룸은 각각 월 1,100달러, 1,300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카이 캐슬에는 고급 현대 아파트에서 볼 수 있는 공유 편의시설도 갖춰질 예정이다. 피트니스 센터, 입주민 라운지, 코워킹 공간 등이 마련되며, 이미 옥상에 테니스 코트 6면이 설치돼 있다. 재미슨 최고경영자(CEO) 개럿 리(Garrett Lee)는 이 테니스 코트를 피클볼 코트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리 CEO는 "재미슨이 그동안 8,000가구 이상의 시세 임대 아파트를 지으며 습득한 효율적인 공법을 활용해 더 높은 품질의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번 세계무역센터 개조는 재미슨이 진행하는 15번째 오피스 주택 전환 프로젝트다.
세계무역센터는 1970년대 중반 국제 기업들의 거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개장했다. 1976년 LA 타임스는 이 건물을 해외여행 준비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소개하며, 여권과 비자 발급은 물론 달러를 프랑, 마르크, 루블 등 외화로 환전하는 서비스도 제공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건물 내에는 어학원과 미국·스위스·일본계 은행 지점도 입주해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피게로아 스트리트와 포스 스트리트(Fourth Street) 교차로 한 블록을 차지하는 이 4만㎡(약 40만 평방피트) 규모의 오피스 단지는 국제적 색채를 잃어갔고, 번커힐(Bunker Hill) 등지의 번쩍이는 신규 고층 빌딩으로 기업 임차인들이 빠져나가면서 외면받기 시작했다.
현재 이 건물의 잔류 오피스 임차인들은 이미 모두 퇴거한 상태이며, 개조 공사는 오는 8월 착공될 예정이라고 리 CEO는 전했다.
케네디 윌슨의 글로벌 자본시장 총괄 니콜라스 브리지스(Nicholas Bridges)는 케네디 윌슨이 전국 단위의 시세 임대 아파트 운영사이자 지난 10여 년간 저렴한 주택 건설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해 온 회사라고 소개했다. 그는 "저렴한 서민 주택 건설에는 사실상 모든 경우에 공공 보조금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케네디 윌슨이 저소득층 주택 세금 공제와 세금 면제 채권 등 '공공 재원의 칵테일'을 엮어내는 전문성을 키워왔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많은 주택 개발업자들이 저렴한 주택 건설에 소극적이었다. 공사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보조금을 한데 모으는 과정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브리지스는 이에 대해 "복잡하고 심약한 사람이 도전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표현했다.
저렴한 주택의 입주 자격은 해당 주택이 건설된 지역의 중위 소득 30~80% 사이를 버는 가구에게 주어진다.
재미슨과 케네디 윌슨은 도심에서 405번 고속도로(405 Freeway) 사이에 걸쳐 약 15개의 저렴 주택 프로젝트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브리지스는 밝혔다. 대부분은 세계무역센터처럼 재미슨이 이미 보유하고 있고 대중교통과 가까운 노후 오피스 건물들이 대상이 될 예정이다.
그는 LA의 사용률이 낮은 오피스 빌딩들이 저렴한 주택으로 전환될 상당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 세상에서 사람들이 오피스 빌딩, 특히 오래된 오피스 빌딩을 활용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그는 말했다.
리 CEO는 일반 다가구 주택 개발사들이 저렴한 주택 건설로 방향을 틀 이유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보조금과 용도지역(조닝) 규제 개혁, 건설 허가 신속 처리 등을 통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LA시 역시 최근 오피스 건물을 주택으로 전환하는 용도 변경(adaptive reuse) 규정을 간소화해 전환이 더 쉬워졌다. 리 CEO는 "우리를 이 방향으로 밀어주는 인센티브가 많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