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2 09:29 AM

미 하원 보고서 "한국 정부, 쿠팡 등 미국 기업 상대로 규제 권한 무기화"

By 전재희

미국 연방 하원 법사위원회가 한국 정부가 쿠팡을 비롯한 미국계 기업을 상대로 조사와 규제 권한을 차별적으로 행사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지난 1일 발표했다.

하원 법사위원회는 1일 공개한 35쪽 분량의 중간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공정거래·개인정보·디지털 규제를 이용해 미국 기업의 한국 시장 내 경쟁을 제한해 왔다고 주장했다.

보고서 제목은 '경쟁을 차단하다: 한국의 미국계 기업에 대한 차별적 공격'으로, 공화당 소속 짐 조던(Jim Jordan) 법사위원장과 행정국가·규제개혁·반독점 소위원회가 주도해 작성했다. 보고서는 하원 전체가 표결로 채택한 최종 보고서는 아니지만, 의회 조사 과정에서 쿠팡에 소환장을 발부해 확보한 문서와 회사 관계자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한국 기업 보호 위해 미국 기업 압박"

보고서는 한국이 강압적인 현장조사, 과도한 자료 제출 요구, 대규모 과징금과 형사고발 위협을 통해 미국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와 앱마켓·클라우드 정책이 외국 기업보다 국내 기업에 유리하게 설계됐으며, 구글·애플·메타·넷플릭스 등 미국 기업들이 반복적으로 조사와 규제 대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법사위원회는 이를 개별 사건이 아니라 미국 기업의 한국 시장 진출과 경쟁을 어렵게 만드는 장기적인 규제 관행으로 규정했다.

보고서는 특히 한국 정부의 쿠팡 조치를 두고 미국 기업을 상대로 한 '범정부적 공격'이라고 표현했다.

개인정보 유출 이후 11개 기관서 40건 조사

쿠팡은 미국에서 설립돼 시애틀에 본사를 두고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미국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은 한국에서 발생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후 한국의 11개 기관이 쿠팡을 상대로 총 40건의 조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4,229건의 자료 제출 요구와 652차례의 임직원 조사가 이뤄졌다고 법사위는 밝혔다.

쿠팡
(쿠팡. 자료화면)

법사위는 이들 조사 가운데 33건은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며, 한국 정부가 개인정보 사건을 계기로 세무·공정거래·노동·형사 분야까지 조사를 확대했다고 주장했다.

한국 개인정보보호 당국은 지난 6월 쿠팡에 6,250억원, 약 4억 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는 한국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 부과된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다.

한국 당국은 전직 직원이 퇴사 후에도 내부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었고, 3,700만명 이상의 개인정보가 노출될 위험에 놓였다는 점을 처벌 근거로 들었다. 쿠팡은 보안 사고에 책임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실제로 외부에 저장된 정보 규모와 회사의 후속 조치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과징금에 불복하겠다는 입장이다.

"국정원 지시로 중국에서 노트북 회수"

보고서에서 가장 논란이 된 내용은 한국 국가정보원이 쿠팡의 내부 조사에 직접 관여했다는 주장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쿠팡에 개인정보 유출 혐의를 받는 전직 직원이 머물던 중국으로 직원을 보내 컴퓨터와 저장장치, 진술서와 지문을 확보하도록 요구했다.

전직 직원이 노트북 한 대를 중국의 강에 버렸다고 진술하자 쿠팡은 잠수부를 고용해 해당 노트북을 회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사위는 국가정보원과 쿠팡 사이에 2025년 12월 한 달 동안 230차례가 넘는 통화와 여러 차례의 대면 회의가 있었으며, 국가정보원이 쿠팡의 장비 회수 계획을 구체적으로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쿠팡 직원이 회수한 장비와 진술서 등을 상하이 주재 한국 영사관 인근에서 국가정보원 관계자에게 전달했고, 전달 과정이 폐쇄회로 카메라에 촬영되지 않도록 확인하라는 요구도 받았다고 적었다.

쿠팡의 해럴드 로저스(Harold Rogers) 임시 최고경영자는 법사위 조사에서 한국 정부기관의 법적 요구라고 판단하지 않았다면 직원을 중국에 보내거나 잠수부를 고용하는 일을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은 쿠팡에 중국에서 장비를 회수하도록 지시하거나 회사의 자체 조사를 통제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도 강제나 압박은 없었다고 밝혔다.

쿠팡 경영진에 위증·형사처벌 위협 주장

보고서는 쿠팡 경영진이 한국 국회에서 국가정보원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고 증언한 이후 위증 혐의와 출국금지, 형사처벌 가능성을 경고받았다고 주장했다.

법사위는 한국 정부가 국가정보원의 개입을 부인하면서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미국인 경영진에게 형사책임을 묻겠다고 한 것은 조사 권한을 이용한 보복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조치가 쿠팡 한 회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 기술기업을 규제해 한국 경쟁업체를 보호하려는 광범위한 정책의 일부라고 결론 내렸다.

한국 정부 "쿠팡의 일방적 주장"

한국 외교부는 보고서가 쿠팡 측의 주장을 중심으로 작성됐으며, 한국 정부가 수개월 동안 법사위에 전달한 설명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외교부는 쿠팡을 포함한 미국 기업을 국적 때문에 차별한 사실이 없으며, 개인정보 유출과 소비자 피해에 대한 조사는 한국 법률에 따라 진행됐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 역시 중국 내 장비 회수와 관련해 쿠팡에 강제적인 지시를 내렸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한국 정부는 앞서 미국 의원들이 미국 기술기업에 대한 차별 문제를 제기하자 미국 기업에 차별적 조치나 불필요한 시장 장벽이 적용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한미 통상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

이번 보고서는 한국 정부에 직접적인 법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 의회가 한국의 플랫폼·개인정보·공정거래 규제를 국내법 집행 문제가 아니라 미국 기업에 대한 경제적 차별과 통상 문제로 공식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법사위는 한국 정부의 조치가 최근 체결된 한미 무역합의에 위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쿠팡 투자자들도 한국 정부의 조치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상 투자자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며 미국 정부에 무역구제 조치를 요구하고 국제중재 절차를 시작했다.

다만 현재까지 미국 정부나 법원, 국제중재기구가 한국 정부의 조치를 차별이나 협정 위반으로 최종 판정한 것은 아니다.

이번 논란은 한국 정부의 조사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정당한 법 집행이었는지, 아니면 한 기업에 여러 정부기관이 동시에 압박을 가한 과도하고 차별적인 대응이었는지를 둘러싼 문제다.

한국 정부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적법한 조사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 하원 법사위는 조사 건수와 범위, 국가정보원의 개입 정황, 미국인 경영진에 대한 형사처벌 위협 등을 근거로 한국 정부의 조치가 정상적인 규제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