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3 08:09 AM
By 이재경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출생시민권을 제한하려는 시도에서 연방대법원에 패소했다. 그러나 트럼프 본인이 임명한 대법관이 공화당에 같은 목표를 의회 입법으로 달성할 수 있는 청사진을 제시했다고 폭스뉴스(Fox News)가 보도했다.
6대 3의 다수 의견에 동참한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 대법관은 미국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의 자녀에게만 자동 시민권을 부여하도록 제한한 행정명령 14160호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별도의 보충의견(concurring opinion)을 통해 다른 전진 경로를 제시했다.
캐버노 대법관은 법원이 이 사건을 헌법이 아닌 연방법 차원에서 해결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의회가 출생시민권 변경을 추진할 수 있는 입법적 경로를 설명했다.
의회는 1940년에 처음으로 수정헌법 제14조의 출생시민권 조항 문구를 연방법에 명시했고, 이후 1952년 이민국적법(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에도 이를 이어받아 반영했다.
캐버노 대법관은 의회가 이 문구를 채택한 것이 대법원의 1898년 획기적 판결인 '미국 대 웡 킴 아크(United States v. Wong Kim Ark)' 사건 이후의 일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해당 판결은 미국 내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이 자동으로 미국 시민이 된다는 원칙을 확립했는데, 캐버노 대법관은 의회가 그 후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법원의 해석을 연방 법령에 효과적으로 편입시켰다고 설명했다.
캐버노 대법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가 이미 통과시킨 법을 행정명령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의회가 불법 또는 임시 체류 중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에 대한 출생시민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새로 쓸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보충의견에서 "의회는 수정헌법 제14조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1401(a)를 개정하거나, 불법 또는 임시적으로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 시민의 자녀에 대한 출생시민권 예외를 규정하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캐버노 대법관은 또한 대규모 불법 이민과 현대의 국제 이동이 재건(Reconstruction) 시대 의회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변화가 의회로 하여금 외국 외교관의 자녀, 미국 영토를 점령한 적군 소속 자녀 등 시민권 조항이 역사적으로 인정해 온 예외 사례들에 준하는 새로운 예외 조항을 설정할 여지를 준다고 봤다.
캐버노 대법관은 "불법 또는 임시 체류 외국 시민이라는 두 범주는, 웡 킴 아크 판결이 예외로 인정한 네 범주의 인물들과 관련 측면에서 유사하다"고 적었다.
다수 의견이 캐버노 대법관의 헌법적 논리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공화당 측은 출생시민권 제한을 위한 향후 시도는 백악관이 아닌 의회를 통해야 한다는 발상을 즉각 받아들였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몇 시간 만에 하원의장 마이크 존슨(Mike Johnson, 루이지애나주 공화당) 의원은 출생시민권이 "남용되어 왔다"고 지적하며 의회가 헌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존슨 의장은 기자들에게 "이것은 고귀하고 중요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왜곡되고 과용되고 남용되어 온 것 중 하나"라면서 "이번 결정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켄터키주 공화당 상원의원 랜드 폴(Rand Paul)은 입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출생시민권 폐지를 위한 헌법 개정안 추진을 재차 촉구했다. 폴 의원은 X(구 트위터)에 "사실 몇 달 전에 출생시민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번 대법원 결정 이후 그 개정안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동료 의원들에게 진지하게 검토해 달라고, 그리고 이를 통과시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한다"고 썼다.
유타주 공화당 상원의원 마이크 리(Mike Lee)도 헌법 개정 촉구에 동참했다. 리 의원은 X에 "헌법 개정을 위한 긴 싸움이 이제 시작된다. 우리는 우리의 법을 어기고, 국경을 침범하고, 허점을 이용해 가족을 미국인으로 만들려는 외국 국적자들을 명시적으로 배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헌법 개정이 아닌 입법을 통해 출생시민권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에 "길고 다루기 힘든 헌법 개정은 필요 없다! 의회는 오늘 당장 비용이 많이 들고 나라에 불공평한 출생시민권을 끝내기 위한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나는 완전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것"이라고 썼다.
공화당 의원 다수는 기존 법안들을 즉각 거론했다. 아칸소주 공화당 상원의원 톰 코튼(Tom Cotton)의 '헌법적 시민권 명확화법(Constitutional Citizenship Clarification Act)'을 비롯해, 텍사스주 공화당 상원의원 존 코닌(John Cornyn)과 플로리다주 공화당 상원의원 릭 스콧(Rick Scott)의 출생 관광(birth tourism) 단속 관련 법안들이 언급됐다.
한편 법무부도 전략 전환을 예고했다. 행정명령 14160호를 집행하는 대신, 비자 사기 및 관련 범죄 행위를 겨냥하는 방식으로 출생 관광 단속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캐버노 대법관의 로드맵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 문제와 관련해 5대 4 다수는 시민권 조항 자체가 출생시민권을 보호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는 의회가 일반 입법을 통해 이를 제한하려 할 경우 즉각적인 위헌 소송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트르담 로스쿨(Notre Dame Law School) 헤일리 프록터(Haley Proctor) 교수는 폭스뉴스 디지털에 "토마스 대법관은 반대 의견 마지막 단락에서 이 결정이 시간의 시험을 견뎌낼 것이라고 확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의회가 캐버노 대법관이 설명한 조치를 취한다면 법원이 이를 재검토할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이는 중요한 결정이다. 법원이 이를 가볍게 재검토하지는 않을 것이며, 새로운 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확실한 방법은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캐버노 대법관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관련 사건에서도 유사한 로드맵을 제시한 바 있다. 그 사건에서 대법원은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으로 알려진 연방 긴급법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주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캐버노 대법관은 해당 정책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가 단지 잘못된 법적 근거에 의존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캐버노 대법관은 당시 의견에서 "오늘 법원은 대통령이 이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다른 법령이 아닌 IEEPA에 의존함으로써 잘못된 법적 상자에 체크를 했다고 결론 내린다"고 썼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몇 가지 추가적인 법적 절차를 거치면 기존 여러 무역법을 근거로 동일한 관세의 상당 부분을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2월 관세 결정 관련 캐버노 대법관의 반대 의견을 칭찬하는 트루스 소셜 게시물에서 그를 자신의 "새로운 영웅"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