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6 07:26 AM
By 이재경
메타(Meta)와 스냅(Snap)이 지난달 나란히 신형 스마트 안경을 출시하면서, 카메라와 AI 어시스턴트를 사용자 얼굴에 올려놓으려는 업계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이 시장에서 이븐 리얼리티스(Even Realities) 같은 신생 기업들이 거대 기업들의 틈을 파고들고 있다고 IT 전문매체인 테크크런치(TechCrunch)가 보도했다.
중국 선전(深圳)에 본사를 둔 3년 차 스타트업 이븐 리얼리티스는 메이퇀(Meituan)과 기존 투자사 텐센트(Tencent)가 주도하는 프리-시리즈B(Pre-Series B) 라운드에서 1억5000만 달러(약 2070억 원)를 조달했다고 테크크런치가 전했다.
이번 라운드에서 이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는 10억 달러(약 1조3800억 원)로 평가됐다. 윌 왕(Will Wang)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테크크런치에 "경쟁사들이 콘텐츠 촬영과 AI를 중심으로 한 카메라 탑재 기기를 쫓는 반면, 우리 회사는 프라이버시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착용자의 시야에 정보를 직접 띄워주는 디스플레이 우선(display-first) 안경에 베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전 투자자들도 쟁쟁하다. 시쿼이아 차이나(Sequoia China) 등 중국의 유명 투자사들이 이븐의 초기 투자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븐 리얼리티스는 2023년 전직 애플(Apple) 엔지니어들이 설립했다. 왕 CEO는 애플워치(Apple Watch)와 아이폰(iPhone) 개발에 참여했으며, 다른 공동창업자들은 IT 업계 출신으로, 그 중 두 명은 덴마크 럭셔리 안경 브랜드 린드버그(Lindberg)를 포함한 고급 아이웨어 회사 출신이다. 이 스타트업은 빠르게 움직여 2024년 첫 번째 제품인 이븐 G1(Even G1)을 출시했는데, 왕 CEO는 당시 시장에서 가장 가벼운 도파관(waveguide) 스마트 안경이라고 소개했다.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이븐은 자체 목표였던 판매 1만 대를 훌쩍 넘어 이 제품군에서 1만 대 이상을 판매한 최초의 기업이 됐다. 예상보다 빠르게 자금을 조달했고, 2024년 30~40명이었던 임직원 수는 현재 300~400명 규모로 불어났다.
이 스타트업의 최신 플래그십 제품인 이븐 G2(Even G2)는 지난해 11월 출시됐는데, 카메라를 아예 탑재하지 않았다. 대신 안경테에 내장된 헤드업 디스플레이(HUD)가 착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며, 전용 링 액세서리인 이븐 R1(Even R1)을 탭하거나 스와이프해 조작한다.
왕 CEO는 카메라 제거가 이븐의 프라이버시 철학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스마트 안경이 사람들이 착용하는 컴퓨팅 기기 중 가장 개인적인 기기가 될 것이라며, 하루 종일 얼굴에 쓰는 만큼 착용자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편안하게 느껴야 하기 때문에 프라이버시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에 모두 설계돼 있다고 설명했다.
왕 CEO는 번역 등 음성 기능은 녹음 파일을 저장하는 대신 오디오를 텍스트로 변환하며, 사용자 데이터는 암호화되고 인프라는 유럽의 엄격한 개인정보 보호 기준을 충족하도록 구축됐다고 밝혔다.
이븐의 핵심 사용자들은 '컨버세이트(Conversate)'라는 기능을 즐겨 활용한다. 이 코파일럿(copilot) 기능은 대화를 실시간으로 읽어 낯선 전문 용어를 설명하거나 즉석에서 후속 질문거리를 제안한 뒤, 대화 요약본을 사용자의 스마트폰에 동기화해준다.
왕 CEO는 이븐이 가장 많이 투자한 분야는 광학 기술, 즉 디스플레이와 전반적인 광학 성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것이 스마트 안경을 여타 소비자 가전과 차별화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의 디스플레이는 일반적인 OLED나 LCD 화면입니다. 스마트 안경은 광학 디스플레이에 의존하는 최초의 제품군으로, 완전히 다른 기술 스택이 필요합니다. 마이크로칩, 광학계, 도파관을 함께 설계해야 하죠. 우리가 가장 많이 투자한 부분이 바로 거기입니다." 왕 CEO의 말이다.
회사는 이븐 HAO(Even HAO), 즉 '전체론적 적응 광학(Holistic Adaptive Optics)'이라는 독자 광학 기술을 개발했다. 이는 별도로 설계된 부품들을 조합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이크로칩·도파관·처방 렌즈 지원을 처음부터 하나로 통합해 설계하는 엔드투엔드(end-to-end) 방식이다.
이븐 사용자의 절반 이상은 미국에 거주하며, 미국은 이 회사의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기도 하다. 개발자 커뮤니티 역시 미국이 중심이다. 이 회사는 중국 내 여러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아직 판매하지 않는다. 주요 시장은 미국, 일본, 한국, 중동, 유럽이다. 왕 CEO는 "중국 내 수요가 상당하기 때문에 먼저 충분히 준비를 갖춘 뒤 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왕 CEO는 이븐이 이 제품군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가격대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판매량을 올리며 흑자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고객 대부분은 30~50대 남성 전문직 종사자입니다. 설문조사 결과, 사용자의 약 3분의 1이 기업 임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안경테 출고가는 세전 599달러(약 82만 원)이며, 처방 렌즈나 링 액세서리를 추가하면 200~300달러가 더해져 평균 주문 금액은 약 1000달러(약 138만 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