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7 10:07 AM
By 전재희
유럽 방위비 확대 성과 강조했지만 이란전쟁·그린란드 문제로 갈등 지속...튀르키예 제재 해제도 발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이 튀르키예 앙카라 정상회의에서 최소 500억달러 규모의 무기 구매와 방산 협력 계획을 공개하며 미국이 요구해온 유럽의 방위비 확대에 부응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이 미국의 이란전쟁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았다며 NATO 동맹국들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를 미국이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꺼내면서 정상회의 시작부터 동맹 내부의 갈등이 표면화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7일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앙카라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튀르키예 대통령과 회담한 자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과의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었다면 NATO 정상회의 참석을 거부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추가적인 유럽 주둔군 감축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NATO에 매우 실망했다"며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지목해 미국이 이란과 벌인 전쟁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동맹국들이 미국의 요청을 받기도 전에 이란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면서, 미국은 그동안 NATO에 수조달러를 투자했지만 동맹국들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이란전쟁에서 유럽 동맹국의 지원을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미국이 지난 2월 이란을 공격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유럽 NATO 회원국들의 관계는 더욱 악화했다.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군사작전에 사전 협의 없이 끌려들어 갈 수 있다는 점과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과 경제적 부담이 커진 데 불만을 표시해왔다.
유럽 관리들은 미국이 요청한 영공과 군사기지 사용을 대부분 허용했지만, 자국 내에서 반대 여론이 강한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동맹국들이 미국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았다며 NATO 탈퇴 가능성까지 거론해왔다.
미국은 유럽 주둔 병력 일부를 철수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유럽 내 미군 배치 전반에 대한 6개월간의 검토도 진행하고 있다. 이에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안보 공약이 약화할 가능성에 대비하면서도 동맹의 단결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의에서 그린란드를 미국이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반복했다.
그는 "그린란드는 덴마크가 아니라 미국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며 그린란드 문제가 자신과 NATO의 관계를 악화시킨 원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덴마크가 그린란드의 방위와 개발을 위해 충분한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 있으며, 그린란드는 미국의 안보에 중요한 지역이라고 주장했다.
메테 프레데릭센(Mette Frederiksen) 덴마크 총리는 정상회의에서 동맹국들이 덴마크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린란드는 판매 대상이 아니며, 덴마크와 그린란드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미래가 결정돼야 한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통제 주장은 NATO 회원국의 영토와 주권을 또 다른 동맹국이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유럽 국가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NATO 회원국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에 대응하듯 정상회의와 함께 열린 방위산업 포럼에서 대규모 무기 구매와 공동조달 계획을 발표했다.
한 NATO 관계자는 이날 공개된 방산 계약과 협력 사업의 전체 규모가 최소 500억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계약에는 유럽 국가들이 미국 노스럽그러먼(Northrop Grumman)의 고고도 감시용 무인기를 구매하는 사업과 NATO가 스웨덴 방산업체 사브(Saab)의 조기경보·감시 항공기를 도입하는 계획 등이 포함됐다.
NATO 회원국들은 방공과 장거리 타격체계 등 핵심 군사 장비를 공동 구매하는 다국적 조달 연합도 구성했다. 각국의 수요를 모아 대규모 계약을 체결하고 생산과 장비 인도 속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사브 주가는 방산 계약 발표 이후 장중 한때 5% 넘게 상승했다. 투자자들이 유럽의 재무장과 NATO의 무기 구매 확대에 따라 사브가 수혜를 볼 것으로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방산기업들의 수주가 급증하더라도 생산시설과 숙련 인력 부족으로 실제 무기 인도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르크 뤼터(Mark Rutte) NATO 사무총장은 유럽과 캐나다의 방위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회원국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뤼터 사무총장은 러시아의 대규모 군비 지출과 중국, 북한, 이란의 군사력 확대에 대응하려면 NATO 전역에서 방위산업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며 현재의 안보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무기와 군사역량을 즉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뤼터 사무총장은 방산공장의 기계가 내는 소리가 단순한 웅성거림을 넘어 굉음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생산량의 대폭적인 확대를 주문했다.
NATO는 2025년 헤이그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이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과 안보 분야에 투자한다는 계획에 합의했다. NATO는 올해 앙카라 정상회의에서 각국이 해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계획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의 방위산업은 국가별 규정과 기업 간 경쟁, 복잡한 행정절차로 분열돼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유럽 국가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전차와 전투기, 미사일체계를 운용하면서 공동 생산과 유지보수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긴급한 무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미국산 장비에 의존하는 현상도 계속되고 있다.
유럽은 경제성장 둔화와 복지예산 유지 부담 때문에 국방비 확대에 대한 정치적 저항도 크다. 일부 NATO 회원국은 GDP의 5%를 국방과 안보에 지출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NATO는 이번 공동조달 계획을 통해 각국의 수요를 통합하고 방산업체의 생산 불확실성을 줄여 무기 공급 속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주요 동맹국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튀르키예와의 관계 개선 방침을 밝혔다.
그는 튀르키예가 러시아산 S-400 방공미사일 체계를 구매한 데 대응해 미국이 2020년 부과한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튀르키예에 미국산 F-35 스텔스 전투기를 판매하는 방안에도 긍정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미국은 튀르키예가 러시아산 S-400을 도입하자 F-35 전투기 개발·생산 사업에서 튀르키예를 제외했다. 미국은 러시아 방공체계가 F-35의 군사기밀과 성능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제재 해제와 F-35 판매가 현실화하면 미국과 튀르키예 사이의 오랜 갈등 요인이 해소될 수 있다. 다만 기존 미국법과 의회의 반대 등 해결해야 할 절차적 문제가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앙카라 정상회의에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우크라이나 대통령 모두와 통화했다고 밝혔다.
그는 두 정상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합의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협상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나 협상 일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NATO 회원국들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재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방공미사일과 관련 장비를 긴급히 추가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정상회의 선언문 초안에는 NATO 회원국들이 2026년 우크라이나에 700억유로 규모의 군사 지원을 제공하고, 2027년에도 최소한 비슷한 수준의 지원을 유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NATO 회원국들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대규모 무기 구매와 방위비 증액을 제시하며 미국이 요구해온 안보 부담 분담에 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방산 계약 발표에도 불구하고 유럽 주요 동맹국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추가 주둔군 철수 가능성과 그린란드 통제 주장도 철회하지 않았다.
유럽 관리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NATO 탈퇴 위협을 다시 제기하거나, 회원국이 공격받았을 때 공동 대응하도록 규정한 북대서양조약 제5조의 이행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앙카라 정상회의의 성과는 방산 계약의 규모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이 집단방위에 대한 정치적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따라 평가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