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2 03:50 PM
By 전재희
트럼프 핵심 우군이자 강경 외교노선 대표 인물...이란·이스라엘·우크라이나 정책에 큰 영향
미국 공화당의 중진 상원의원인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이 향년 71세로 별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출신의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갑작스러운 짧은 질병을 겪은 뒤 토요일 밤 숨졌다. 그의 사무실은 일요일 이 같은 사실을 발표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대표적인 의회 내 우군이자, 미국의 대이란 강경 정책과 이스라엘·우크라이나 지원을 강하게 주장해온 외교안보 분야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사망 하루 전인 금요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대통령을 만난 뒤 워싱턴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그레이엄 의원실 대변인은 워싱턴DC 검시관이 예비 조사에서 그가 동맥경화성 심혈관 질환에 따른 대동맥 파열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만 최종 사망진단서는 독성검사와 현미경 검사가 모두 마무리된 뒤 확정될 예정이다.
WSJ가 검토한 경찰 무전 기록에 따르면 토요일 저녁 그레이엄 의원의 워싱턴DC 의사당 인근 주소지에서 심정지 환자에 대한 응급 신고가 접수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그레이엄 의원을 "내가 알고 지낸 가장 위대한 사람과 상원의원 중 한 명"이라고 추모했다.
그는 그레이엄이 "언제나 일하고 있었고, 진정한 미국 애국자였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토요일 저녁까지 조기를 게양하도록 지시했다.
그레이엄 의원의 죽음은 워싱턴 정치권에 큰 충격을 줬다. 버니 모레노(Bernie Moreno) 공화당 상원의원은 "위대한 미국인을 잃은 데 대해 완전한 충격과 믿을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존 튠(John Thune)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도 "오늘 아침 마음이 무겁다"고 애도했다.
그레이엄 의원의 별세로 공화당의 상원 의석은 일시적으로 52석으로 줄었다. 여기에 미치 매코널(Mitch McConnell) 켄터키주 상원의원도 건강 문제로 의정 활동에서 빠져 있어 공화당 지도부의 운영 부담은 커질 수 있다.
다만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공화당 성향이 강한 주다. 헨리 맥매스터(Henry McMaster)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조만간 그레이엄의 후임으로 공화당 인사를 임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공화당은 특별 예비선거를 통해 새 후보를 선출하고, 올가을 총선을 치르게 된다. 현재로서는 공화당이 해당 의석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레이엄은 1994년 공화당 바람을 타고 연방 하원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이후 2002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돼 2003년부터 상원에서 활동했다.
그는 오랫동안 초당적 인맥을 넓게 유지한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가장 극적인 변화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나타났다.
그레이엄은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트럼프와 맞붙었고, 당시 트럼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를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외국인 혐오적이며, 종교적 편견을 가진 사람"이라고 공격했다. 또 공화당이 트럼프를 후보로 지명하면 "우리는 파괴될 것이고, 그렇게 되어도 싸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공화당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뒤 그레이엄은 점차 태도를 바꿨다. 그는 트럼프의 골프 파트너이자 외교안보 조언자, 의회 내 핵심 지지자로 변신했다.
이후 그레이엄은 트럼프에게 이란에 대한 강경 대응과 이스라엘 지지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그레이엄은 최근 몇 달 동안 이어진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서 의회 내 가장 강력한 지지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이란 정권을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규정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경한 군사 대응을 요구했다.
그는 올해 초 WSJ 인터뷰에서 이란을 두고 "무언가를 부수면 그것을 소유해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위협이라면 부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그레이엄이 '영원한 전쟁'을 피하겠다고 공언했던 트럼프 대통령을 이란전쟁으로 끌어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랜드 폴(Rand Paul) 공화당 상원의원은 그레이엄이 트럼프와 MAGA 진영을 이란 정권교체론에 가깝게 이끌려 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요일 CNN 인터뷰에서 그레이엄을 "매우 강한 군사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자신도 강한 군사력을 중시하지만, 두 사람은 이를 사용하는 방식과 태도에서 약간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또 그레이엄과 사망 몇 시간 전 통화했으며, 그레이엄이 우크라이나 방문으로 피곤하다고 말했지만 특별히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레이엄은 존 매케인(John McCain) 전 상원의원의 가까운 동료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매케인, 조 리버먼(Joe Lieberman) 전 상원의원과 함께 이른바 '세 친구'로 불리며 미국의 적극적 군사개입과 동맹 강화를 주장해왔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스라엘 안보, 우크라이나 지원, 이란 대응 등 거의 모든 주요 외교안보 이슈에서 그레이엄은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공군 예비역으로도 복무했으며, 2015년 60세에 대령으로 전역했다. 군 복무 중 공로를 인정받아 동성훈장(Bronze Star Medal)을 받았다.
그레이엄은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 중 한 명이었다.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는 그레이엄의 별세에 애도를 표하며, 이스라엘에는 그보다 더 좋은 친구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레이엄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중동 지역을 방문한 의회 대표단 활동에도 참여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스라엘 인정, 미국과 사우디 간 방위협정, 팔레스타인의 자치 또는 국가 통제 방안 등을 함께 추진하려 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비교적 일관된 지지 입장을 유지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일부 인사들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서도 러시아에 대한 강한 압박과 우크라이나 방공망 강화를 주장했다.
사망 직전 키이우를 방문한 것도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이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나 방공 지원 강화를 논의했고, 백악관이 자신의 러시아 제재 법안 일부를 지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레이엄은 강경한 외교안보 노선과 달리 일부 국내 정책에서는 중도적 면모도 보였다.
그는 2013년 포괄적 이민개혁 법안에 참여했다. 이 법안은 상원을 통과했지만 보수 성향이 강한 하원에서는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는 어린 시절 불법으로 미국에 들어온 이민자, 이른바 '드리머'들에게 시민권 취득 경로를 열어주는 정책도 여러 차례 추진했다.
민주당 의원들과도 개인적 관계가 좋았다. 크리스 쿤스(Chris Coons) 민주당 상원의원은 "그와 형제처럼 싸웠지만, 우리가 깊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에서는 함께 열심히 일했다"고 회고했다.
조 바이든(Joe Biden) 전 대통령도 그레이엄과 자주 의견이 달랐고 때로는 크게 충돌했지만, 공공봉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뜻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그레이엄은 트럼프 시대에 자신의 외교안보 노선을 유지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트럼프와 밀착했다.
트럼프의 MAGA 운동이 공화당을 장악하면서 그레이엄 역시 더 당파적인 입장을 취하게 됐다는 평가도 받았다.
2018년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 연방대법관 인준 과정에서 그는 캐버노를 강하게 옹호했다. 이 장면은 보수층 사이에서 그레이엄의 입지를 강화한 계기가 됐다.
2021년 1월 6일 의사당 폭동 직후에는 트럼프와 결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당시 상원 연설에서 "나는 빠지겠다. 이제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별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달 뒤 그는 공화당이 트럼프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인정했다.
그레이엄은 이후에도 일부 MAGA 지지자들에게는 의심의 대상이었다. 트럼프 행사에서 야유를 받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행정부 고위 인사들은 여전히 그의 견해를 중요하게 봤다. 그의 입장은 의회 내 강경 공화당 세력의 분위기를 가늠하는 지표였고,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조언의 방향을 보여주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린지 올린 그레이엄은 1955년 7월 9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센트럴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모가 운영하던 술집 뒤편 방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부터 가족 생계를 돕기 위해 일했다. 이 과정에서 당구 실력과 특유의 유머 감각을 키웠다고 한다.
대학 재학 중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는 어린 여동생을 돌보기 위해 자주 집으로 돌아갔고, 결국 여동생의 법적 보호자가 됐다.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대에서 학부와 법학 학위를 받았다. 이후 공군 군법무관으로 복무했고, 잠시 변호사로 일한 뒤 정치에 입문했다.
초기 정치 경력에서 그는 빌 클린턴(Bill Clinton)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의 하원 탄핵소추위원 중 한 명으로 활동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레이엄은 올해 재선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지난달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도전자들을 꺾고 11월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공화당이 강한 주인 만큼, 그는 재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사망 당시 그는 상원 예산위원장을 맡고 있었으며, 일요일 NBC의 '밋 더 프레스(Meet the Press)'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그레이엄의 별세는 공화당의 의회 운영과 외교안보 정책 논의에 즉각적인 공백을 남겼다. 특히 이란전쟁, 우크라이나 지원, 이스라엘 안보 문제에서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회를 연결하는 핵심 통로였다.
그의 정치 인생은 트럼프에 대한 강한 비판에서 출발해 트럼프의 가장 가까운 의회 동맹으로 끝났다. 동시에 그는 미국 보수 진영 내에서 군사력과 동맹을 중시하는 전통적 공화당 외교노선을 마지막까지 대표한 인물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