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5 08:06 AM
By 전재희
스페이스X·알파벳·SK하이닉스 잇단 자금 조달...일부 전문가 "강세장 후반부 신호"
세계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대규모 주식 발행에 나서면서 장기간 이어진 미국 증시 강세장이 부담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스페이스X는 750억달러 규모의 사상 최대 기업공개를 단행했고, 알파벳은 850억달러 규모의 주식 발행에 나섰다. 한국 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도 미국예탁증권(ADR)을 통해 260억달러가 넘는 주식 매각을 진행했다.
S&P500지수는 최근 3년 9개월 동안 두 배 이상 상승하며 강세장을 이어왔다. 그러나 기업들이 높은 주가와 뜨거운 투자심리를 활용해 앞다퉈 자금 조달에 나서면서, 일부 투자자들은 시장이 강세장 후반부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주식시장이 오래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높은 밸류에이션 역시 단독으로 강세장을 끝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새 주식 공급이 투자자 수요를 압도하기 시작하면 시장 상승세가 둔화될 수 있다. 기업들이 대규모로 신주를 발행하면 시장에 풀리는 주식 수가 늘어나고, 투자자들이 이를 모두 흡수하지 못할 경우 주가에는 부담이 된다.
리서치 어필리에이츠(Research Affiliates)의 롭 아노트(Rob Arnott) 회장은 "주식 발행은 강세장 후반부에 급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1999년 말과 2000년 상반기에도 기업들이 잇따라 주식을 발행했고,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공급 증가가 닷컴버블 붕괴에 영향을 줬다고 본다.
딜로직(Dealogic)에 따르면 올해 들어 투자자들에게 매각된 신규 주식 규모는 3,447억달러에 달한다. 여기에는 기업공개, 후속 주식 발행, 전환사채 등이 포함된다.
이는 이미 2025년, 2024년, 2023년, 2022년 각각의 연간 발행 규모를 넘어선 수준이다.
발행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달 스페이스X가 사상 최대 IPO를 진행했고, 지난주에는 SK하이닉스가 외국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의 미국 주식 매각을 성사시켰다. AI 개발업체 앤스로픽(Anthropic)을 비롯한 다른 기업들도 상장을 준비하고 있어 추가 공급은 계속될 전망이다.
신규 주식 발행이 늘어나는 동시에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은 줄고 있다.
자사주 매입은 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여 유통 주식 수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반대로 자사주 매입이 줄어들고 신주 발행이 늘어나면, 전체 주식 공급은 더 빠르게 증가한다.
자문회사 엘름 웰스(Elm Wealth)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앞으로 1년 동안 주식과 채권을 합쳐 순 5,000억달러를 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자사주 매입을 중심으로 주식과 채권 공급이 순 1조달러 줄어들었던 흐름과는 정반대다.
최근 대형 자금 조달의 핵심 배경은 인공지능(AI)이다.
AI 하이퍼스케일러, 즉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AI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역사적인 설비투자 경쟁에 들어갔다. 이들은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 인프라, 네트워크 장비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야누스 헨더슨 인베스터스(Janus Henderson Investors)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올해 총 설비투자는 8,00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4,500억달러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내년에는 1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야누스 헨더슨의 존 로이드(John Lloyd) 글로벌 멀티섹터 크레딧 책임자는 많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수년간 정교하게 관리해온 자본 배분 방식을 되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자사주 매입이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주식 발행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AI 투자 이전의 대형 기술기업들은 막대한 현금을 창출하고 부채가 적었으며, 자사주 매입에 집중하는 기업들이었다.
그러나 AI 인프라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아마존은 올해 상반기에만 850억달러 규모의 주식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오라클은 현재 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상태다.
로이드는 "AI 이전에는 이 기업들이 적은 부채와 강한 현금창출력을 바탕으로 자사주 매입에 집중하던 뛰어난 현금 비즈니스였다"며 "이제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전문가가 대규모 주식 발행을 즉각적인 위험 신호로 보는 것은 아니다.
미국 주식시장 전체 가치는 약 80조달러에 달한다. 이와 비교하면 신규 발행 규모는 시장 전체 수급에 제한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오크트리 캐피털 매니지먼트(Oaktree Capital Management)의 하워드 막스(Howard Marks) 공동회장은 주식 발행 증가와 자사주 매입 둔화가 언제부터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요인만으로 강세장이 끝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전 루톨드그룹 수석투자전략가 제임스 폴슨(James Paulsen)은 최근 주식 발행 러시가 기업 부문의 낙관론과 투자자들의 추격 매수 심리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는 기업들이 낙관적인 환경에 있고, 투자자들은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시장이 과열됐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021년에도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열풍 속에서 대규모 주식 발행이 이뤄졌다. 많은 스팩 거래는 이후 문제를 겪으며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안겼지만, S&P500지수는 그해 27% 상승하며 발행 부담을 이겨냈다.
따라서 주식 발행 증가가 반드시 시장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미국 증시에는 긍정적인 요인도 많다.
기업 실적은 강하고, 미국 경제도 뚜렷한 둔화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AI 투자가 계속된다면 이번 강세장은 과거보다 더 오래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주가 수준은 이미 높다. 리서치 어필리에이츠에 따르면 S&P500의 배당수익률은 1.05%로 사상 최저 수준이다. 이는 주가가 기업 이익과 배당에 비해 상당히 비싸졌음을 보여준다.
다만 시장은 단순히 밸류에이션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하락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역사적으로 강세장을 무너뜨린 것은 금리 급등, 규제 변화, 예상하지 못한 위험 요인인 경우가 많았다.
1987년에는 포트폴리오 보험 전략이 시장 붕괴를 키웠고, 2008년에는 서브프라임 대출이 금융위기의 방아쇠가 됐다.
AQR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안티 일마넨(Antti Ilmanen) 글로벌 포트폴리오 솔루션 공동대표는 자신이 경고론자에 가깝지만, AI 관련 좋은 소식이 계속된다면 현재 랠리가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 과열을 우려하는 투자자들도 대체로 시장 전체에서 빠져나가기보다는 포지션 조정을 권하고 있다.
롭 아노트 회장은 투자자들이 완전히 시장을 떠나기보다 소형주와 신흥시장 가치주를 사는 전략을 제시했다.
이는 대형 기술주와 AI 관련 종목 중심의 강세장이 지나치게 집중됐다고 보는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덜 오른 자산으로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현재로서는 대규모 주식 발행만으로 강세장이 끝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연방준비제도(Fed)가 경제와 시장을 압박할 정도로 금리를 크게 올릴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투자자들이 많다. 또한 하워드 막스 회장은 과거 포트폴리오 보험이나 서브프라임 대출처럼 시장 전체를 무너뜨릴 만한 뚜렷한 위험 요인을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두드러진 과잉은 보이지 않고, 경제는 꽤 괜찮게 느껴진다"며 "가까운 시일 내 경기침체를 예측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최근의 주식 발행 러시는 분명 강세장 후반부에 나타날 수 있는 경고 신호다. 하지만 AI 투자와 기업 실적, 경제 성장세가 이를 흡수할 수 있다면 시장은 당분간 상승 흐름을 이어갈 수도 있다.
문제는 투자자들이 이처럼 쏟아지는 신규 주식과 채권 공급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다. 기업들이 AI 붐을 활용해 자금을 계속 끌어모으는 동안, 시장은 강세장 연장의 에너지와 과열의 부담 사이에서 점점 더 민감하게 움직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