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6 08:04 AM
By 이재경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2027년 미국 기업들의 건강보험료가 16년 만에 최대폭으로 오를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캘리포니아주의 평균 가족 보험료가 소형 신차 한 대 가격에 해당하는 3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컨설팅업체 PwC의 최신 설문조사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2027년 의료 서비스와 처방약 비용이 9% 급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조사가 시작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보험사들은 이렇게 예상되는 의료비 상승분을 바탕으로 내년도 보험료를 산정하며, 많은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이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보험료 부담이 커지면서 근로자의 임금과 실수령액이 줄어들고, 동시에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전역의 상품과 서비스 가격도 함께 오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던캘리포니아대(USC)의 의료금융학 교수 글렌 멜닉(Glenn Melnick)은 "이는 수많은 캘리포니아 가정의 생활 수준을 갉아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건강보험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할 경우 임금으로 돌릴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다며, 치솟는 보험료는 사실상 근로자 가정에 대한 '숨겨진 임금 삭감'과 같다고 설명했다.
보험료 상승은 소규모 사업주들에게도 직원 의료보험 유지 여부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헤이트 스트리트의 독립서점 북스미스(Booksmith)의 소유주 크리스틴 에번스(Christin Evans)에 따르면, 올해 직원 보험료가 17% 뛰었고 2027년에는 더 큰 부담이 예상된다. 현재 직원 4명에 대한 월 보험료는 3250달러에 달한다. 에번스는 이를 감당하기 위해 영업시간을 줄여 직원 근무시간을 축소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비용을 우리가 떠안아야 한다"며 "원하는 만큼 임금을 지급하지도, 원하는 수준의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1700만명이 고용주를 통해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으며, 이곳의 보험료 상승률은 전국 평균을 웃돌고 있다. 카이저패밀리재단(KFF)과 캘리포니아헬스케어재단(California Healthcare Foundation)의 조사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5년 사이 주 내 기업의 평균 가족 보험료는 24% 올라 2만8397달러에 달했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12.2%)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다.
병원비, 약값 등 의료비 상승세는 2025년 이후 더욱 가속화됐다. PwC가 지난해 실시한 보험사 연례 설문조사에서는 2026년 의료비가 8.5% 오를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후 조사진은 이를 9%로 상향 조정했다.
전문가들은 의료비 상승의 핵심 요인으로 병원들이 책정하는 진료비를 꼽는다. 최근 몇 년간 UCLA 헬스와 시더스-사이나이(Cedars-Sinai) 등 일부 의료시스템은 인근 병원을 인수하고 클리닉을 확장하며 규모를 키워왔고, 이 과정에서 지역 내 지배력을 강화하고 경쟁을 줄였다. 멜닉 교수는 이렇게 거대 조직으로 성장한 일부 의료시스템이 이제는 "보험사에 가격을 통보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더스-사이나이 측 대변인은 영리 의료시스템의 가격이 시더스와 같은 비영리 시스템보다 더 빠르게 올랐다는 내용을 담은 2022년 논문을 근거로 제시했다. 다만 이 논문은 시더스 측이 일부 자금을 지원한 연구였다. 대변인은 "시더스-사이나이 헬스시스템의 최근 성장은 로스앤젤레스 지역 전반에 걸쳐 최고 수준의 환자 진료와 의료 혁신에 대한 접근성을 넓혀왔다"고 밝혔다. UCLA 측은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처방약 가격 상승도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PwC 조사에 따르면 가장 비용이 큰 항목인 항암제 지출은 2025년 1430억달러에 달해 연간 12% 늘었다. 오젬픽(Ozempic), 위고비(Wegovy) 등 GLP-1 계열 비만치료제를 포함한 미국의 비만약 지출은 지난해 81% 폭증했다고 PwC는 밝혔다. 이들 약물은 30일분 기준 정가가 1000달러를 넘는다.
여론조사기관 갤럽(Gallup)은 이달 발표한 조사에서 미국 성인의 11%가 현재 체중 감량을 위해 GLP-1 계열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만치료제 제조사들은 이 약들이 당뇨병이나 심장질환 등 더 비용이 큰 질환을 예방해 결과적으로 의료비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PwC에 따르면 아직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는 나오지 않았다.
캘리포니아헬스케어재단 연구진은 문제의 상당 부분이 병원 운영비, 처방약 가격, 의사 진료비가 수십 년간 별다른 견제 없이 계속 늘어난 데 있다고 지적한다. 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에서 지출되는 의료비 1달러 중 25센트, 연간 730억달러 이상이 환자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곳에 쓰이고 있다. 이는 의료 제공자들의 과도한 이익, 행정적 비효율, 기타 낭비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기업 보험료가 내년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개빈 뉴섬(Gavin Newsom) 주지사와 주 의회는 지난 6월 저소득층 의료비를 지원하는 메디칼(Medi-Cal) 재원 마련과 주 예산 균형을 위해 민간 보험 플랜에 대한 세금을 올리기로 합의했다. 캘리포니아 건강보험협회(California Assn. of Health Plans)는 보험사들이 이 세금을 내년도 보험료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협회 추산에 따르면 이번 세금 인상으로 보험 가입자 1인당 내년에 100달러, 4인 가족 기준으로는 400달러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 세금 인상안은 아직 트럼프 행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주 하원의 공화당 의원들은 이달 행정부에 서한을 보내 승인 거부를 요청했다.
연구진은 코버드캘리포니아(Covered California) 같은 주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개별적으로 보험을 구매하는, 고용주 보험이 없는 가정의 보험료도 큰 폭으로 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 가정 중 일부는 의료비 상승과 함께, 의회가 팬데믹 기간 한시적으로 승인했던 연방 보조금 확대 조치가 종료되면서 올해 이미 두 자릿수 인상을 겪었다. 가격이 치솟으면서 캘리포니아에서는 거의 40만명이 올해 오바마케어 플랜을 해지했다.
이처럼 늘어난 보험료에 대응하기 위해 일부 기업은 공제액(deductible)과 본인부담금(co-pay)을 올려 비용 부담을 더 많이 직원에게 넘기는 방향으로 보험 설계를 바꾸고 있다.
이러한 본인부담 증가는 파장의 시작일 뿐이다. 컨설팅업체 머서(Mercer)가 지난 2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의 22%는 높은 건강보험 비용 때문에 신규 채용을 중단했거나 정리해고를 해야 했다고 답했다. 또 36%는 보험료 상승이 직원 임금과 임금 인상에 타격을 줬다고 밝혔다.
산타크루즈의 인사(HR) 컨설턴트 캔디스 엘리엇(Candice Elliott)은 식당 등 소규모 사업체들이 늘어난 비용을 감당할 방법을 찾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많은 식당이 이미 수익과 지출 사이의 여유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보험료가 오르면 일부 식당은 직원 의료비 충당을 위해 고객 계산서에 별도 수수료를 추가하거나 메뉴 가격을 올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는 소비자의 구매력에 영향을 미친다"며 "물가 상승을 더 키우는 셈"이라고 말했다.
엘리엇에 따르면 일부 소규모 사업체는 이른바 '실버' 플랜에서 더 저렴한 '브론즈' 플랜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이 경우 직원의 월 보험료 중 회사가 부담하는 비중이 줄어든다. 그는 "이는 사실상 직원 임금 삭감과 같은 효과"라고 말했다. 또한 일부 기업은 해외 인력 채용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고 엘리엇은 전했다. 그는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 지역 근로자에게는 미국인 임금의 절반만 줘도 좋은 생활 수준과, 미국에서라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복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USC의 멜닉 교수는 많은 근로자가 자신들이 얼마나 손해를 보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지난해 받은 W-2 세금 신고서를 확인해보라고 권한다. 고용주는 이 서식 12번 항목 'Code DD'에 직원 보험료 비용을 의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4인 가족을 대상으로 한 USC의 보험료가 4만5000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는 "기준액이 이미 너무 높기 때문에 작은 인상률조차 큰 충격으로 이어진다"며, 계속되는 연간 보험료 인상은 "모두에게 나쁜 소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