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1 07:56 AM
By 전재희
정치는 때로 서서히 변한다. 정치권에는 오랫동안 합의된 통념이나 격언이 존재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통념도 바뀌기 마련이다.
때로 그 변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진행된다. 마치 지각판이 서서히 움직이듯 정치 지형이 바뀌지만, 하나의 사건이 그 변화를 뚜렷하게 드러낼 때까지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민주당 내 이스라엘 지지 기류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폭스뉴스(Fox News)가 20일(월) 보도했다.
이스라엘 지지를 둘러싼 정치 지형은 몇 년 전부터 이미 변화하고 있었다. 특히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와 친팔레스타인 세력의 이스라엘 공격, 그리고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 이후 그 흐름은 더욱 두드러졌다.
하지만 모든 것을 뒤바꿔 놓는 것처럼 보이는 결정적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폭스뉴스는 지난주 하원에서 이뤄진 단 한 차례의 호명 투표(roll call vote)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토머스 매시(Thomas Massie, 공화·켄터키) 하원의원은 국무부 예산안에 이스라엘에 대한 30억 달러 규모의 원조를 삭감하는 수정안을 발의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이를 당을 분열시키려는 정치적 시도로 봤다.
이 수정안이 실제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됐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그러나 매시 의원의 수정안은 민주당을 거의 절반으로 갈라놓았다.
하원은 결국 314 대 104로 매시 의원의 수정안을 부결시켰다. 공화당 의원 가운데 이스라엘 원조 삭감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매시 의원이 유일했지만, 민주당에서는 103명이 그와 뜻을 함께해 원조 중단에 찬성했다. 10명은 '참석(present)'으로 표결했고, 매시 의원의 시도를 거부한 민주당 의원은 98명에 그쳤다.
민주당 내 이스라엘을 둘러싼 균열은 한동안 계속 넓어져 왔다. 과거에는 이스라엘 지지에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이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이번 하원 표결은 현재 민주당이 처한 상황을 명확히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번 표결로 당내 균열이 한층 깊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원 진보 코커스(House Progressive Caucus) 의장인 그레그 카사르(Greg Casar, 민주·텍사스) 하원의원은 "이 문제에 관한 한 앞으로 그 어떤 것도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은 중요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과거에는 소수의 하원 민주당 의원만이 이스라엘군에 세금과 무기를 지원하는 데 반대표를 던졌지만, 2년 전에는 37명의 민주당 하원의원이 이스라엘군에 수십억 달러를 지원하지 않는 쪽에 표를 던졌다"고 설명했다.
카사르 의원은 이번 표결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일한 오마르(Ilhan Omar, 민주·미네소타) 하원의원은 "하원의 민주당 의원들이 마침내 우리 유권자, 우리가 대표하는 지역 주민들이 요구해온 것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며 "그들이 마침내 도덕적 원칙에 따라 앞장서기로 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진보 진영에서는 이번 표결이 핵심 지지층의 뜻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줄리 존슨(Julie Johnson, 민주·텍사스) 하원의원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 국민들은 이 전쟁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점점 지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민주·뉴욕) 하원의원은 이번 표결이 당의 '리트머스 테스트'는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또 다른 현상을 짚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미국인들이 국내에서 자신들의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다는 데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자원은 우리의 가치관을 반영하지 않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대변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외에 보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스테니 호이어(Steny Hoyer, 민주·메릴랜드) 하원의원은 내년 초 의원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지난 40년간 여야를 통틀어 호이어 의원만큼 이스라엘 지지 목소리를 높여온 의원은 드물다.
호이어 의원은 "이 수정안은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 세력, 즉 이스라엘의 완전한 소멸을 추구하는 이들과 유대인의 죽음을 바라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며 "이는 미국의 안보에 반하는 표결"이라고 비판했다.
호이어 의원은 2023년 초 민주당 하원 지도부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 지도부 인사들도 당이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하원 민주당 코커스 의장인 피트 아길라(Pete Aguilar, 민주·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이스라엘 총리가 취한 조치들이 우리가 미국·이스라엘 간 굳건한 관계의 지지자로 남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조 지속에 찬성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조차 이스라엘 쪽에서 일어난 변화가 민주당의 시각 재조정을 촉발했다고 언급했다.
톰 수오지(Tom Suozzi, 민주·뉴욕) 하원의원은 "많은 사람이 네타냐후 총리와 지난 몇 년간의 일부 행보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웨슬리 벨(Wesley Bell, 민주·미주리) 하원의원은 이스라엘 원조 중단에 반대표를 던졌다. 초선인 벨 의원은 2년 전 경선에서 진보 성향의 코리 부시(Cori Bush, 민주·미주리) 전 하원의원을 꺾었고, 그해 가을 본선에서도 승리했다. 이스라엘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부시 전 의원은 다음 달 열리는 경선에서 벨 의원에게 다시 도전장을 내밀 예정이다.
벨 의원은 "우리의 맹세한 적들이 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동맹국과 함께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부시 전 의원의 보다 진보적인 입장과 대비되는 벨 의원의 이번 표결이 경선 승패를 좌우할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지켜볼 만한 대목이다.
친이스라엘 성향의 공화당 의원들은 민주당 내 반이스라엘 기류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
랜디 파인(Randy Fine, 공화·플로리다) 하원의원은 "그들은 광신도들에게 장악당한 것 같다. 유대인을 혐오하는 이들이 당선되는 선거 결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친이스라엘 성향의 확고한 지지자인 존 페터먼(John Fetterman, 민주·펜실베이니아) 상원의원 역시 민주당의 새로운 입장을 우려하고 있다. 페터먼 의원은 만약 민주당이 이스라엘을 저버린다면 자신도 민주당을 떠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페터먼 의원은 "그것이 민주당 안에서 내가 그은 레드라인"이라며 "지금 이 경선들에서 이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단순히 '나는 그저 친팔레스타인이다'라는 수준이 아니라 '나는 철저히 반(反)반이스라엘이다'라는 태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페터먼 의원이 자신이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기겠다고까지는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으로서는 페터먼 의원을 붙잡아 두는 것이 절실하다.
현재 상원은 공화당이 53석, 민주당이 45석을 차지하고 있다. 무소속인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버몬트) 상원의원과 앵거스 킹(Angus King, 메인) 상원의원이 민주당과 함께 코커스를 구성하고 있어, 사실상 민주당 계열은 47석이 된다. 따라서 민주당이 내년 상원 주도권을 잡으려면 순증 4석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미시간, 조지아, 뉴햄프셔 의석 수성을 기대하는 한편 메인, 노스캐롤라이나, 오하이오, 텍사스, 아이오와, 알래스카에서 의석을 뒤집으려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어떤 조합으로든 4석만 확보하면 다수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설령 민주당이 4석을 추가로 확보해 51 대 49의 사실상 우위를 점하더라도, 페터먼 의원이 민주당을 떠난다면 상원은 다시 50 대 50 구도가 될 수 있다. 상원은 과거에도 50 대 50 구도가 형성될 때마다 권력 분점 방안을 마련해온 전례가 있지만, 어느 쪽이든 상원의장을 겸하는 JD 밴스(JD Vance) 부통령의 캐스팅보트 덕분에 명목상 다수당은 공화당이 된다.
현재로서는 페터먼 의원이 민주당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민주당이 페터먼 의원을 더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은 어떨까. 이스라엘 역시 민주당이 이스라엘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절실하게 민주당을 필요로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의회 공화당은 현재로서는 여전히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민주당이 하원, 나아가 상원까지 장악하게 된다면, 민주당 내 정치 지형 변화로 인해 내년 이스라엘 지지의 양상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흐름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돼 온 것이지만, 지난주 표결이야말로 민주당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있어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 결정적 분기점으로 꼽을 만하다고 폭스뉴스는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