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31 06:04 AM
By 이재경
LA타임스(LA Times)는 31일(금)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 강화로 이민 관련 소송이 폭증하면서 최근 1년 반 사이 이민법 관련 사기가 크게 늘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최근에는 실제 활동 중인 변호사의 신원을 도용하는 수법까지 등장해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오렌지카운티의 변호사 사브리나 리베라(Sabrina Rivera)에게 콜로라도에 사는 한 남성으로부터 다급한 이메일이 왔다. 자신의 이민 사건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되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는 리베라가 자신의 변호사라고 했지만, 리베라는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그를 대리한 적도 없었다.
남성이 보내온 문자 대화 캡처화면에는 리베라를 사칭한 인물과의 대화가 담겨 있었다. 사기범은 리베라의 이름은 물론 주 변호사 자격증 번호까지 도용해 그의 강제추방 심리를 대리하고 있는 것처럼 속였다. 이 남성은 지난 2월 이후 최소 700달러를 사기범에게 지불한 것으로 전해졌다.
◇ AI로 가짜 변호사 프로필 제작…실제 변호사 영상에 다른 음성 덧입히기도
LA타임스에 따르면 이민법 분야는 원래부터 사기에 취약한 영역이었지만, 최근 1년 새 수법이 한층 정교해졌다. 일부 사기범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실제와 흡사한 변호사 사진과 웹사이트를 만들어낸다.
또 다른 사기범들은 실제 활동 중인 변호사의 영상과 사진을 가져다 전혀 다른 음성을 덧입혀 이민자들이 돈을 보내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변호사 자격을 실제로 보유한 이들이 시스템을 편법으로 빠르게 통과시키려고 의뢰인 모르게 무효한 망명 신청이나 영주권 신청서를 제출하는 사례도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이민업무국(Office of Immigrant Affairs)의 대니얼 샤프(Daniel Sharp) 국장은 “이 분야에서 활동해 온 이들이 볼 때 사람들을 착취하기에 지금이 최악의 환경일 것”이라며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절박하게 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변호사 자격 반납한 사례도…60명 넘는 LA 이민자 피해 확인
워싱턴주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 커머스(Commerce)에 사무실을 두고 활동하던 알렉산드라 로자노(Alexandra Lozano)는 지난 6월 변호사 자격을 반납하고 법률사무소 문을 닫았다. 의뢰인들은 로자노가 인도적 비자 신청을 위해 가정폭력이나 인신매매 피해 이야기를 의뢰인 모르게 조작해 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변호사와 비영리단체들은 로자노의 의뢰인이었던 LA 지역 이민자를 최소 60명 확인했다고 밝혔다. 로욜라 이민정의클리닉(Loyola Immigrant Justice Clinic)의 임상 감독 변호사 루세로 오르티스(Lucero Ortiz)는 실제 피해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170여 개 종교 기관을 대변하는 캐서릭 채리티스(Catholic Charities USA)의 케빈 브레넌(Kevin Brennan) 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은 “이들은 규정을 지키며 매우 복잡한 법 체계를 헤쳐나가려는 사람들”이라며 “선의를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단체 산하 법률서비스 제공 기관 60여 곳이 사기범들에게 사칭당했으며, 지난 1년간 처리한 관련 사기 사건만 1000건이 넘는다고 한다.
캐서릭 채리티스 LA 지부 산하 에스페란자 이민권리 프로젝트(Esperanza Immigrant Rights Project)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취임한 이후 소속 변호사를 사칭하는 사례에 대한 문의 전화가 최소 주 1회 이상 걸려왔다. 호세 루이스 가르시아(Jose Luis Garcia) 임시 프로그램 국장은 최근에는 이런 문의가 매일 들어온다고 전했다.
◇ 통계상 급증 확인…처벌받은 변호사도 늘어
이 같은 사기 피해 규모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통계는 부족하다고 매체는 지적했다. 신고가 수십 개 기관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접수한 이민 서비스 사기 신고는 2025년 1626건으로, 전년도 1315건, 2023년 623건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이민심사행정처(Executive Office for Immigration Review)가 공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6월 말 기준 전국적으로 26명의 이민 전문 변호사가 징계 조치를 받았다. 이 가운데 8명은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자격 보유자로, 2025년 한 해 전체 6건보다 이미 많은 수치다.
캘리포니아주 변호사협회(State Bar of California)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비변호사 관련 민원은 1637건 접수됐다. 이 가운데 전부가 이민 사건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전년도 1223건, 그 전년도 908건에 비해 꾸준히 늘고 있다.
◇ 수백 달러에서 수만 달러까지…차 팔아 사기 비용 마련하기도
사기 피해액은 수백 달러에서 수만 달러까지 다양하다. 변호사들에 따르면 한 가족은 최대 3만 달러를 지불한 사례도 있었다. 캐서릭 채리티스 USA에서 이민·난민 정착 서비스를 총괄하는 크리스토퍼 로스(Christopher Ross)는 사람들이 결국 가짜로 드러난 서비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동차 같은 개인 소지품을 팔기도 한다고 말했다.
캐서릭 채리티스 LA 지부 이민난민정착 프로그램 국장 조엘 로드리게스(Joel Rodriguez)에 따르면, LA의 한 남성은 지난 6월 영주권 신청을 위해 변호사 행세를 하는 사람에게 6000달러를 지불했다. 그는 가짜 영주권 승인서를 받았지만, 사기범은 공식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주겠다며 젤(Zelle)을 통해 4000달러를 추가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남성은 돈을 보냈지만 이후 그 사람과 다시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오르티스 변호사는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진짜 대리인을 구할 돈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허위 신청서가 제출된 상태라면 사건이 더 복잡해져 향후 법률 대응 비용이 커지고, 즉각적인 추방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기는 이미 과부하 상태인 이민 심사 체계에 부담을 더하고 있다. 수천 명의 이민자가 새 대리인을 찾고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지역 내 대부분의 비영리·무료 법률서비스 기관은 이미 포화 상태다.
◇ "변호사 자격증 번호 검색했더니 아무것도 안 나와"
옥스나드(Oxnard)의 한 사무실 로비에서 지난해 12월 어느 오후, 마르타(Martha·가명)는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사무실 안에는 3년여 전 자신의 시민권 신청 사건을 맡긴 남성이 그를 피하듯 숨어 있었다. 수개월째 질문에 답을 듣지 못한 마르타는 이날만큼은 답을 듣겠다고 마음먹었다.
2023년 초, 지인의 소개로 마르타 부부는 이 남성을 소개받았다. 이미 여러 변호사를 만나 “사건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부부는 한 번 더 시도해보기로 하고 그와 약속을 잡았다. 그는 부부에게 꿈같은 이야기를 팔았다. 마르타는 “그는 우리 사건을 반드시 성공시킬 수 있다고 장담했다”며 “그가 우리에게 희망을 줘서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3년간 사건은 제자리걸음이었지만 부부는 그에게 1만4000달러를 지불했다. 그런데 그날, 남성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날 밤 마르타의 며느리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인터넷을 뒤졌다. 그의 주 변호사 자격증 번호를 검색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변호사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마침내 검색 결과가 하나 나왔다. 그 남성은 변호사가 아니라 '이민 컨설턴트(immigration consultant)'였다.
이민 컨설턴트는 변호사가 아니지만 캘리포니아주에서 이민 서류 작성 등 일부 업무를 수행하도록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직군이다. 퍼블릭카운슬(Public Counsel) 이민권리 프로젝트의 감독 변호사 캐슬린 리바스(Kathleen Rivas)는 이 직업 자체는 합법이지만, 변호사 행세를 하며 취약한 이민자를 노리는 악성 행위자들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이 사람을 진짜로 막을 방법이 없다"
로욜라 이민정의클리닉의 마리사 몬테스(Marissa Montes) 국장 역시 페이스북과 왓츠앱을 통해 이민자들에게 접근한 누군가로부터 사칭 피해를 당했다. 그는 이를 신고하려 했지만 벽에 부딪혔다. 주 변호사협회는 지역 경찰에 신고하라고 안내했지만, 사기범이 유타주 소재라고 주장했고 피해자는 콜로라도에 거주해 LA 경찰은 관할권이 없었다. 사기범이 이용하던 은행에도 연락했지만, 은행 측은 경찰 신고서 없이는 조치할 수 없다고 답했다. 몬테스는 “이 사람을 진짜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게 무서운 점”이라고 말했다.
오렌지카운티의 리베라 변호사도 자신을 사칭한 인물을 주 변호사협회에 신고했고, 협회는 현재 조사를 진행 중이다. 리베라는 “변호사들이 이런 일을 신고해야 한다”며 “강제추방 심리를 앞두고 이미 감당할 일이 산더미인 지역 주민들에게 주 변호사협회 신고까지 의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 변호사협회는 대리인을 구하려는 모든 이민자에게 해당 변호사의 연락처가 협회 웹사이트에 등록된 정보와 일치하는지 반드시 확인하라고 권고했다. 또 대면 상담과 유효한 사무실 주소를 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협회는 캘리포니아주 자격 변호사에 대해서만 징계 조치를 취할 수 있고 사칭범에게는 권한이 없어 중지 명령(cease-and-desist) 통지를 보내거나 지역 법 집행기관에 사건을 이관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 수십 년 묵은 구조적 문제…1986년 이후 포괄적 이민개혁 없어
변호사들은 오늘날의 이민 사기 실태가 수십 년에 걸쳐 누적된 결과라고 말한다. 오르티스 변호사는 수십 년간 미국에 거주했지만 합법 신분을 취득할 경로가 없는 이민자들이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포괄적 이민개혁은 1986년 이민개혁통제법(Immigration Reform and Control Act)으로, 당시 수백만 명의 미등록 이민자가 합법 신분을 얻었다.
반면 최근 입국한 이민자들은 특정 임시 체류나 인도적 구제 경로에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편이다. 예컨대 정치적 망명 신청은 최초 입국 후 1년 이내에 제출해야 한다.
마르타 사건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이민 컨설턴트가 그의 대리인 자격으로 정치적 망명 신청을 제출했다는 점이다. 마르타는 망명 자격 요건에 해당하지 않았고 본인도 원치 않은 신청이었다. 망명 신청은 입국 후 1년 이내에 제출해야 하며, 무효한 신청은 추방 절차로 이어질 수 있다. 마르타는 “그는 우리 돈을 챙기고 이 엄청난 혼란만 남겨놓았다”며 “이제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망명 사건 관련 이민 출석 통보를 받게 될까 봐 늘 두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