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5 03:04 PM
By 전재희
이란에 선박 통행 감독 역할 부여하되 통행료는 불허...미·이란 협상 재개 가능성
이란과 오만이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기 위한 합의문 초안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번 합의는 이란에 페르시아만으로 들어가는 선박 통행을 감독하는 역할을 부여하되, 이란이 통행료나 서비스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과 오만은 5일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한 초안의 주요 쟁점에 합의했으며, 이를 미국과 역내 국가들, 이란 최고지도부에 공유했다. 다만 최종 발효를 위해서는 이란 최고지도부의 승인 절차가 남아 있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 에스마일 바가에이(Esmail Baghaei)는 이란이 오만과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통로를 만드는 데 합의했으며, 주요 내용의 윤곽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초안에 따르면 이번 합의는 60일간 적용되는 임시 체계다.
호르무즈 해협으로 들어가는 선박은 이란에 가까운 항로를 이용하고, 이 과정에서 이란 측과 조율하게 된다. 반대로 해협을 빠져나가는 선박은 오만 영해 쪽 항로를 이용하며, 오만 측과 조율하게 된다.
이는 해협 통행을 다시 열기 위한 절충안이다. 이란은 자신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에 대한 실질적 감독권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받으려 하고 있고, 걸프 국가들과 미국은 이란이 해협을 사실상 통제하는 구조가 굳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합의안은 이란이 선박에 통행료나 의무적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을 금지한다. 다만 안보, 수색·구조 등 명목의 자발적 비용 지급까지 완전히 막을지는 불분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의가 실제로 해협 재개방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카젬 가리바바디(Kazem Gharibabadi) 이란 외무차관은 오만과의 합의가 곧바로 해협 개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미국이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과거에도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위한 외교적 시도는 여러 차례 실패했다. 중재자들은 이번 합의 역시 이란 혁명수비대(IRGC) 내 강경파에 의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혁명수비대는 이란 체제 방어와 해협 장악을 집행하는 핵심 조직이다.
그럼에도 미국과 이란 모두 해협 폐쇄를 완화할 경제적 이유가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원유와 천연가스 수송의 핵심 통로다. 해협이 열리면 원유와 가스 운송이 늘어나고, 세계경제와 에너지 시장에 가해진 압박도 줄어들 수 있다.
이란 역시 원유 수출 대부분을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한다. 해협 폐쇄가 장기화되면 미국과 걸프 동맹국뿐 아니라 이란 경제에도 타격이 커진다.
또 해협 재개방은 미·이란 협상 재개의 길을 열 수 있다. 합의가 발표될 경우 미국과 이란은 이란 핵 프로그램과 금융제재 완화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갈 것으로 전해졌다.
걸프 국가들은 이번 합의가 단기적으로는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장기적으로 이란의 해협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 등 걸프 산유국들의 생명선과 같은 항로다. 이란이 입항 선박 통행을 감독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경우, 걸프 국가들은 에너지 수출 때마다 이란의 승인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애틀랜틱카운슬 글로벌에너지센터의 엘런 월드(Ellen Wald) 선임연구원은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 합의가 사실상 이란에 통행 통제권을 넘겨주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걸프 산유국들이 이란 승인을 필요로 하는 항로를 사용하게 된다면,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이란 정권에 넘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이란이 해협을 통제하고 있다는 주장이나 앞으로 통제하도록 허용한다는 해석을 반복적으로 부인해왔다.
오만과 카타르는 이번 합의에 이란이 받아들일 만한 인센티브를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이란 원유 판매를 허용하는 제재 면제다. 일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오만과 카타르는 이란이 합의를 지킬 수 있도록 제재 완화 요소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인센티브는 합의를 더 견고하게 만들 수 있지만, 동시에 세부 조율 과정에서 발표를 늦출 수도 있다. 미국 내에서는 이란에 대한 제재 완화가 정치적 논란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이란과 전쟁을 일시 중단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여는 내용의 양해각서에 서명한 바 있다.
당시 양해각서는 해협 재개방과 더 깊은 협상, 궁극적인 전쟁 종식을 위한 출발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후 이란이 해협 통제권을 주장하기 위해 선박 공격을 벌이면서 합의는 무너졌다. 그 결과 이란과 미국, 그리고 미국의 걸프 동맹국들 사이에서 무력 충돌이 이어졌다.
이번 합의 시도는 그 실패 이후 다시 마련된 임시 해법이다. 다만 과거 합의가 빠르게 붕괴한 만큼, 이번에도 실제 이행 여부가 관건이다.
런던 채텀하우스의 중동 책임자 사남 바킬(Sanam Vakil)은 호르무즈 합의가 이뤄질 경우 새로운 전투 중단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그는 최종 합의까지는 여전히 긴 길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테헤란과 워싱턴 모두 시간을 벌고 평화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 보려는 분명한 유인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며, 양측 모두 11월 선거 전후에 또 다른 충돌이 있을 가능성을 계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걸프 국가들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미국의 전략이 분명하지 않다고 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국가는 이란의 반복적인 공격에 자국 영토가 노출되는 상황에서 미국에 더 많은 방공 요격미사일과 확실한 안보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걸프 동맹국들은 미국에 충돌이 재점화될 경우 미군이 자신들을 보호하겠다는 보장을 계속 요구해왔다.
걸프 국가들은 이란과의 합의를 믿기 어렵고, 동시에 미국이 다음에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걸프 관리들은 이번 60일 임시 합의가 현재로서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이란 혁명수비대가 미국의 보복에도 불구하고 확전 의지를 보였고, 전쟁 비용을 미국과 역내 동맹국들에게 최대한 높이려 한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란과 오만의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합의는 중동 전쟁의 확산을 막기 위한 중요한 시험대다.
합의안은 이란에 입항 선박 조율 역할을 부여하면서도 통행료 부과는 막는 절충안을 담고 있다. 이는 해협을 열어 에너지 수송을 회복하려는 현실적 조치지만, 동시에 이란의 해협 영향력을 제도화할 수 있다는 위험도 갖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모두 경제적 압박을 줄이고 협상 시간을 벌 필요가 있다. 걸프 국가들도 이란 통제권 확대를 우려하면서도, 당장의 전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임시 합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핵심은 이 합의가 실제로 선박 통행을 회복시킬 수 있느냐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60일 뒤에도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전쟁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만들 수 있느냐다.
이번 합의가 성공하면 미·이란 협상 재개와 에너지 시장 안정의 길이 열릴 수 있다. 그러나 이란 혁명수비대 강경파나 추가 선박 공격이 다시 등장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은 또다시 중동전쟁의 중심 전선으로 돌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