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1 04:10 AM

트럼프 행정부, 캘리포니아 해안 관리권 박탈 시도…"위험한 선례" 우려

By 이재경

트럼프 행정부가 캘리포니아주의 해안 보호 권한을 무력화하려는 절차에 착수했다고 LA타임스는 7일(금)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해양대기청(NOAA) 산하 해안관리국(Office for Coastal Management)이 캘리포니아의 해안관리법 준수 여부에 대한 재평가를 진행 중이며, 이와 관련한 공개 청문회가 산타모니카에서 열려 수백 명의 규제 당국자, 선출직 공직자, 환경단체, 원주민 지도자, 지역 활동가와 주민들이 발언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절차는 '연안관리법(Coastal Zone Management Act, CZMA)'에 따른 캘리포니아주의 권한 인증을 취소하려는 시도다. CZMA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연안 주들에 연방 해역에서 진행되는 사업이 주(州)의 정책과 충돌할 경우 이를 검토하고 반대할 권리를 부여하는 오랜 연방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검토를 캘리포니아 해안 관리 실적에 대한 정기 평가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캘리포니아의 이른바 '환경 극단주의(environmental extremism)'를 문제 삼는 시각이 깔려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캘리포니아 지도
(캘리포니아 지도. 구글)

LA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수개월간 캘리포니아 해안을 대규모 담수화 시설, 부유식 원자로, 로켓 발사 확대, 연안 석유 시추 확대 등 대규모 산업화가 가능한 공간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이어왔다. 이런 흐름을 막아온 것이 바로 CZMA였고, 캘리포니아주 해안위원회(California Coastal Commission)가 이 법에 따라 주-연방 간 균형을 맡아왔다는 것이다.

CZMA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서명해 발효된 법으로, '세계를 뒤흔든 환경적 총성'으로 불리는 산타바버라 대규모 유출 사고를 계기로 제정됐다. 이 법은 연안 주와 오대호 인접 주들이 자체 해안관리계획을 수립해 연방 정부의 인가를 받으면, 연방 기관이 해안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을 추진할 때 해당 주의 계획을 존중해야 하도록 규정한다.

닉슨 전 대통령은 당시 국정연설에서 "환경 문제에는 지역이나 주의 경계가 없기 때문에 연방정부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만, 워싱턴이 주와 지방의 주도권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며 "토지 이용 정책은 주와 지방정부의 기본 책무"라고 말한 바 있다.

LA타임스는 지난 50년간 이 법이 초당적 협력의 틀로 작동해왔으며, 값비싼 소송 없이 미국 내 가장 논쟁적인 사안들을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1970년대 이후 캘리포니아 해안위원회가 검토한 3700여 건의 연방 조치 가운데 96%는 위원회와 별다른 충돌 없이 진행됐다. 나머지 4%가 이 법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2000년대 초 캘리포니아는 이 법을 근거로 몬터레이만과 채널 아일랜즈 사이 해상 석유 임대 36건을 저지했고, 2007년에는 벤투라부터 말리부까지 수천 명의 주민에게 폭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연안 액화천연가스 항만 건설을 막은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캘리포니아 해안위원회를 반복적으로 겨냥해왔다. 위원회는 밴덴버그 우주군 기지에서의 로켓 발사 빈도를 두고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도 충돌한 바 있다. 갈등은 지난 5월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캘리포니아가 근거 없이 악의적으로 우주기지 개발을 반복적으로 방해했다"고 밝히며 CZMA 준수 여부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지시하면서 본격화됐다.

러트닉 장관은 "환경 극단주의라는 명분으로 핵심 국가 인프라를 지연시키는 방해 정책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이번 평가에서 캘리포니아가 우주기지 개발뿐 아니라 연안 석유 생산, 파이프라인 유지, 담수화 등 다른 경제 개발 및 연방 사업에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살펴보는 "새로운 접근"을 예고했다.

CZMA에 따른 정기 평가 자체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주는 5~10년마다 정기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번 사례가 특이한 것은 캘리포니아가 바이든 행정부 시절 이미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2024년 작성됐지만 정권 교체로 최종 확정되지 않은 초안에서는 CZMA를 시행하는 캘리포니아 3개 기관—해안위원회, 해안보전위원회(coastal conservancy), 샌프란시스코만 보전개발위원회—모두 최고 점수를 받았고,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환경단체 천연자원보호협회(NRDC)의 조엘 레이놀즈 수석변호사는 "이번 절차는 사기극"이라며 캘리포니아의 해안 관리 관행이 오랫동안 미국 내 모범 사례로 꼽혀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례 없는 상황"이라며 "이 조치가 법원에서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CZMA 인증 프로그램을 갖춘 34개 주 및 미국령을 대표하는 연안주기구(Coastal States Organization)의 데릭 브록뱅크 상임이사도 이번 조치가 캘리포니아를 넘어 파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2024년에 거의 마무리된 평가를 다시 여는 것은 이례적일 뿐 아니라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며, 표준 절차를 따르지 않는 것"이라며 "명확한 이유나 정해진 절차 없이 평가가 재개될 수 있다면 모든 연안 주가 이 선례에 대해 우려할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브록뱅크 이사는 월요일 청문회와 이후 45일간의 의무 공개 의견수렴 절차가 끝난 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미지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연방 당국은 이미 9000건 이상의 서면 의견을 접수한 상태다. 그는 평가에서 캘리포니아의 해안관리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내릴 경우 주 측에 제안된 변경안에 대응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주가 이를 수용하는지 여부에 따라 인증 취소로 이어질 수 있지만 법이 규정한 절차에는 여러 단계와 논의 기회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캘리포니아 해안위원회 케이트 허클브리지 상임이사는 절차가 어떻게 전개될지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우리는 우리의 실적을 근거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며 "캘리포니아는 거의 50년간 해안관리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시행해왔고, 연방정부와 그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논의할 준비가 돼 있으며 어떤 검증도 환영한다"고 밝혔다. 평가가 공정하고 실적에 기반해 이뤄진다면 위원회는 두려울 것이 없다는 취지다.

스탠퍼드대 환경천연자원법정책 프로그램을 20년 넘게 이끈 메그 콜드웰은 이번 사안이 전례 없는 법적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행정부는 본질적으로 주와 지방정부의 목소리를 침묵시키려 하고 있으며, 지금 벌어지는 일에는 비교할 만한 전례가 없다"며 "이는 엄청난 권력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고, 다른 연안 주들에도 매우 위험하고 오싹한 파급 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캘리포니아 내에서는 산타바버라 해안을 둘러싼 갈등이 특히 두드러진다. 휴스턴에 본사를 둔 한 석유회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을 동원해 주 정부의 감독을 우회하고, 한동안 가동을 멈췄던 해상 시설을 재가동하려 시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1970년대 주민투표로 설립된 캘리포니아 해안위원회는 그동안 주 내에서 가장 논쟁적인 사안들을 다뤄오며 적잖은 비판도 받아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공세와 해상 석유 시추 확대라는 위협이 오히려 주 전역의 단합을 이끌어냈다고 매체는 전했다. 오렌지카운티의 유명 부동산 중개인이자 '태평양 연안 보호를 위한 비즈니스 연합(Business Alliance for Protecting the Pacific Coast)' 창립 멤버인 그랜트 빅스비는 "이것이 나쁜 생각이라고 여기는 것은 환경단체만이 아니다.

이를 원치 않는 강력한 이해관계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 연합은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주에 걸쳐 825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빅스비는 "해안위원회와 CZMA는 캘리포니아라는 브랜드를 지켜왔다. 전 세계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보고 듣는 것 때문에 이곳을 찾는다"며 "우리가 팔아야 할 것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행정부에 의해 이것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공공정책연구소(Public Policy Institute of California)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민 10명 중 8명 이상(82%)이 해안위원회 설립이 주에 대체로 긍정적인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오랜 환경운동가이자 캘리포니아연안보호네트워크(California Coastal Protection Network) 설립자인 수전 조던은 이번 사태의 유일한 긍정적 측면으로 수만 명의 시민이 결집해 해안위원회의 존재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된 점을 꼽았다. 그는 서프라이더 재단, 원주민 성지연구소, 힐더베이, 아줄 등 수십 개 환경·지역 단체와 협력해 주민들의 의견 제출 절차를 돕고 있다며 "캘리포니아의 집단적 영혼이 깨어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일을 30년째 해왔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 샌디에이고부터 유레카, 훔볼트까지 모두가 무엇이 위기에 처했는지 깨닫고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내각 각료들도 주민들에게 목소리를 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인증 취소 절차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캘리포니아가 순순히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뉴섬 주지사는 "트럼프가 캘리포니아 해안에 의지하고 이를 돌보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 지금이 우리 목소리를 낼 때"라며 "트럼프 행정부에 따끔한 소리를 들려주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