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9 04:50 PM
By 전재희
이란 "미군 철수·제재 해제·전쟁배상금 지급" 요구...백악관의 출구전략 다시 좁아져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이란전 승리 선언의 출구로 삼으려 했지만, 이란이 새롭고 강경한 요구 조건을 내걸면서 협상이 다시 난항에 빠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몇 주 동안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다시 열 경우 이를 전쟁의 성과로 내세우는 방안을 준비해왔다. 미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고위 참모들에게 핵 합의 없이도 이란전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생각을 사적으로 언급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란은 지난 8일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상업 통행을 허용하는 대가로 지금까지 가장 높은 수준의 조건을 제시했다. 이란은 미국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지급, 중동 주둔 미군 철수, 미국의 해상 봉쇄 종료 등을 요구했다.
이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전에서 체면을 유지하며 빠져나올 수 있는 선택지는 다시 좁아졌다.
워싱턴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모나 야쿠비안(Mona Yacoubian) 중동 프로그램 국장은 "이란의 최근 강경한 호르무즈 재개방 요구는 대통령이 체면을 지킬 수 있는 분쟁 출구를 만들어내는 일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유라시아그룹의 이란 전문가 그레고리 브루(Gregory Brew)는 "이란은 트럼프가 전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며,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 집중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며 "그래서 강경하게 나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 이후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해서는 안 된다는 최후통첩을 외교 협상의 중심에 둬왔다. 그러나 핵 문제 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않자, 최근 백악관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더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통로다. 이란은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산발적으로 벌이며 이 해협의 상업 통행을 사실상 위협해왔다. 그 결과 선박 운항이 지연되고, 국제유가가 출렁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몇 주 동안 여러 차례 호르무즈 해협이 이미 완전히 열렸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그때마다 발표가 너무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란은 2월 전쟁이 시작된 뒤 해협을 닫았고, 이후 미국 군함이 해협을 통과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해왔다. 또 상업 선박으로부터 수입을 거두려는 구상도 추진했다.
반면 미국은 이란의 통행 제한이나 통행료 부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협상 전망은 주말 사이 더 어두워졌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이란이 자국 선박 한 척을 미사일로 공격했다고 밝혔다. 같은 시점에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의 모하마드 바게르 졸가드르(Mohammad Bagher Zolghadr) 사무총장은 호르무즈 해협 통행 허용 조건으로 강경한 요구 사항을 공개했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에 따르면 졸가드르는 미국이 전쟁을 영구적으로 끝내고, 해상 봉쇄를 해제하며, 중동 주둔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모든 제재 해제, 해외 동결자산 해제, 전쟁배상금 지급, 위협과 모욕 중단, 역내 이란 연계 민병대에 대한 군사행동 중단도 요구했다.
이는 단순한 해협 재개방 조건을 넘어, 미국의 대이란 압박 체계 전체를 해체하라는 요구에 가깝다.
미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장 협상 결렬에 반응하기보다 최신 외교 교착을 견뎌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휘발유 가격이 지금 수준에 머무는 한 백악관이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8일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02달러였다. 1년 전 3.16달러보다 높지만, 일주일 전보다는 소폭 낮아졌다.
백악관 관계자는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한 군사 목표를 모두 달성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재 초점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세계 에너지 흐름을 확보하는 데 있으며, 이란이 선박을 추가로 공격할 경우 군사 옵션도 계속 테이블 위에 둘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몇 주 동안 참모들에게 이란 핵 프로그램이 자신의 임기 중 다시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당국자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지난해 이란의 주요 핵시설 3곳을 파괴했기 때문에 테헤란이 단기간에 핵 작업을 재개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는 또 미국 정보기관이 이란의 핵시설 재건이나 비밀 핵무기 개발 시도를 포착할 수 있으며, 추가 미군 공격 위협이 장기적 억지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판단은 백악관이 완전한 핵 합의 없이도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만으로 전쟁의 출구를 찾으려는 배경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소셜미디어에 "도널드 트럼프가 이란전에서 승리했다"는 제목의 글을 공유하며, 핵 합의 없이도 이미 승리를 거뒀다는 메시지를 내비쳤다.
JD 밴스(JD Vance) 부통령은 Fox News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란에 장기적 변화를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괜찮다"며, 미국은 계속 압박을 가하고 중동에서 가능한 한 많은 원유와 가스를 확보해 미국인들이 낮은 휘발유와 에너지 가격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밴스 부통령은 "우리는 아직 경기 중간에 있다"고 말했다.
이는 백악관이 전쟁 종료 선언을 원하면서도, 이란에 대한 군사·경제 압박을 계속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는 돈이다.
이란은 전쟁배상금 명목으로 수십억 달러를 요구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 묶여 있는 이란 자산의 동결 해제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납세자의 돈이 이란에 흘러가도록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협상이 성사되려면 미국이 일부 이란 동결자산을 조건부로 풀어주는 방식의 타협이 필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이란 원유 판매를 허용하는 제재 면제 여부도 쟁점이다. 미국은 지난 6월 이란과의 임시 평화 합의에서 이란 원유 판매에 대한 제재 면제를 허용한 바 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을 공격하면서 무너졌고, 미국은 이란 원유 거래 제재를 다시 적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발언에서 전쟁 출구를 찾고 있다는 신호를 여러 차례 보냈다.
그는 최근 기자들에게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 공격을 감행할 준비가 돼 있었지만, 미국 동맹국들이 만류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합의가 "임박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 합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란은 오히려 더 높은 가격을 부르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도 이란의 지하 우라늄 비축분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이미 핵물질을 갖고 있다. 그것은 너무 깊은 지하에 있기 때문에 우리 말고는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핵 문제보다 호르무즈 해협과 에너지 가격 문제를 더 시급한 정치적 과제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협상 난항은 미국 중간선거를 3개월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나왔다.
2월 말 전쟁이 시작되기 전보다 휘발유 가격은 여전히 훨씬 높다. 에너지 가격은 미국 유권자들이 체감하는 핵심 경제 지표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통해 유가와 휘발유 가격을 안정시키고, 이를 전쟁 승리와 경제 성과로 연결하려는 유인이 크다.
그러나 이란이 해협을 협상 지렛대로 계속 활용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은 복잡해진다. 군사적으로 더 세게 밀어붙이면 확전 위험이 커지고, 양보하면 이란에 끌려간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이란전의 출구로 삼으려 했다. 핵 합의 없이도 해협이 열리고 에너지 흐름이 회복된다면, 미국이 군사 목표를 달성했다고 선언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열어주는 대가로 미국에 훨씬 큰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미군 철수, 제재 해제, 동결자산 해제, 전쟁배상금, 해상 봉쇄 종료는 모두 트럼프 행정부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이란의 전략은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한다고 보고, 호르무즈 해협을 최대한 비싼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것이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은 전쟁을 끝내는 통로가 아니라, 미국과 이란이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새로운 협상 전장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압박을 다시 키울지, 일부 제재 완화와 동결자산 해제로 타협할지, 아니면 불안정한 현 상태를 더 끌고 갈지가 다음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