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9 04:55 PM
By 전재희
네타냐후 "하마스 완전 무장해제 전 철군 없다"...미국 압박에도 공개 반기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의 가자지구 영구 평화 구상을 거부했다. 하마스(Hamas)의 무장해제와 이스라엘군의 단계적 철수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미국 측 구상에 대해,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가 완전히 무장해제되기 전까지 철군은 없다고 못 박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9일 이스라엘 각료회의와 영상 성명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해온 가자 평화안 2단계 문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은 15개 항목 문서를 거부한다"며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무장해제되기 전까지 어떤 철수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마스의 무장해제라고 할 때, 나는 중화기, 덜 무거운 무기, 경화기, 모든 무기를 뜻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 사이의 드문 공개 충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몇 주 전 하마스 무장해제를 위한 "역사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핵심 이행 방식에 반대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2기 외교 성과로 내세워온 가자 평화 프로세스는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됐다.
가자 평화안은 2025년 10월 시작된 트럼프 행정부의 단계적 구상이다. 1단계는 이스라엘 인질과 팔레스타인 수감자의 교환, 그리고 가자지구 내 대규모 교전 중단이었다. 2단계는 훨씬 더 어려운 문제를 다룬다. 하마스 무장해제, 이스라엘군 철수, 가자지구 통치 구조가 핵심이다.
이번에 네타냐후 총리가 거부한 문서는 이 2단계에 해당한다.
미국이 추진한 안은 하마스가 무기를 내려놓는 과정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점진적으로 철수하는 과정을 병행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순서가 잘못됐다고 본다. 하마스가 먼저 완전히 무장해제돼야 하며, 그 전에는 이스라엘군이 철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서로를 깊이 불신하고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철수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고 보고,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철수 이후 다시 무장하거나 통치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결국 평화안의 핵심은 같은 목표가 아니라 누가 먼저 양보하느냐의 문제로 좁혀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2단계 평화안에는 하마스 무장해제와 이스라엘군 철수 외에도 가자지구 전후 통치 방안이 포함돼 있다.
계획에 따르면 국제 안정화군이 가자지구에 들어가 치안과 안정화 임무를 맡고, 팔레스타인 기술관료 위원회가 가자지구 통치를 담당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는 가자지구의 전후 전환 과정을 감독하는 기구로 설정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마스와 이 평화위원회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히며, 당시 이스라엘도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주부터 이스라엘이 이 계획에 유보적 입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9일에는 이를 공식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결정에는 국내 정치도 작용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올가을 총선을 앞두고 있으며, 여론조사상 네타냐후 총리가 안정적 집권 다수를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자지구 철수는 그의 우파 지지층과 강경파 연정 파트너들에게 큰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이스라엘 우파 유권자들은 가자지구와 레바논의 완충지대에 이스라엘군이 주둔하는 것을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본다. 미국은 이스라엘군이 가자와 레바논의 완충지대에서 철수하기를 원하지만, 네타냐후 총리 입장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네타냐후 연정의 강경파 각료들은 이미 평화안 조건에 강하게 반발해왔다. 일부는 네타냐후가 합의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며 분노를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WSJ는 사안에 정통한 인사들을 인용해 미국이 이스라엘에 이 계획을 수용하라고 강하게 압박해왔다고 전했다.
미국 당국자들은 지난 7월 말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의 회동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했다. 가자 평화위원회의 고위대표인 니콜라이 믈라데노프(Nickolay Mladenov)는 최근 두 달 동안 네타냐후 총리를 세 차례 만났고, 이달 초 이스라엘에서 열린 회동에서는 가자 공습 중단과 2025년 10월 합의 이행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가자지구 표적 살해 승인 절차를 강화했다. 하급 지휘관이 아니라 참모총장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이다. 다만 이스라엘은 자국 군인이나 민간인에 대한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위협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계속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9일에도 이스라엘군과 가자 민간인에 대한 위협에는 계속 타격을 가하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최근 6일 동안 가자지구 공습은 없었다. 이는 그 이전 거의 매일 이어지던 폭격과 대비된다.
2025년 10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 휴전이 이뤄진 뒤에도 가자지구에서는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가자 현지 보건당국에 따르면 휴전 이후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1,200명 이상이 숨졌다. 다만 보건당국은 사망자 가운데 전투원이 얼마나 포함됐는지는 구분하지 않고 있다.
이는 공식적인 대규모 전투가 줄었더라도, 가자지구의 폭력과 군사 충돌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네타냐후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는 최근 몇 달 동안 이란 전쟁을 거치며 악화돼왔다.
두 정상은 공개적으로는 긴밀한 동맹 관계를 강조해왔지만, 비공개적으로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목표가 점점 달라지면서 긴장이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은 여러 차례 날 선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네타냐후 총리에게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동을 허용하기 전, 레바논과 가자지구에서 미국이 중재하는 평화 협상을 진전시키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중 하나가 수개월간 교착상태였던 평화위원회의 가자 진입 허용이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견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 우리는 미국인들과 이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며 "그들에게는 아이디어가 있다. 일부는 우리에게 받아들일 수 있고, 일부는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이 문제에서 어떻게 굳건히 설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거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부담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가자 평화안을 2기 외교정책의 주요 성과로 설명해왔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가 2단계 안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면서, 가자 평화 프로세스가 무너질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시에 이란전에도 깊이 얽혀 있다.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협상과 이란 핵 문제, 걸프 지역 확전 위험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가자 평화안까지 흔들리면 중동 외교 전반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하마스 무장해제 합의를 자신의 외교 성과로 내세웠지만, 이스라엘이 철수와 병행하는 방식에 반대하면서 미국의 중재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스라엘의 거부는 가자 평화안이 가장 어려운 단계에 들어서자마자 좌초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단계는 인질과 수감자 교환, 대규모 교전 중단이라는 비교적 명확한 목표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2단계는 하마스 무장해제, 이스라엘군 철수, 국제 안정화군 배치, 가자 통치 구조라는 훨씬 복잡한 문제를 다룬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가 모든 무기를 내려놓기 전에는 이스라엘군이 철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의 계획은 무장해제와 철수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이다.
결국 쟁점은 평화의 원칙이 아니라 이행 순서다. 하마스를 먼저 완전히 무장해제할 것인가, 아니면 이스라엘 철수와 맞물려 단계적으로 진행할 것인가.
네타냐후 총리의 공개 거부로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 평화 구상은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다시 설득할지, 계획을 수정할지, 또는 가자 평화 프로세스가 다시 교착상태에 빠질지가 앞으로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