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3 06:26 PM

엔비디아, 5000억 달러 AI 데이터센터 베팅…낡은 GPU 가치까지 보증

By 이재경

엔비디아가 최대 5000억 달러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건설 자금을 끌어모으는 계획을 발표했다며, 이번 발표의 진짜 핵심은 천문학적인 액수가 아니라 노후 GPU를 위한 2차 시장을 만들려는 엔비디아의 시도에 있다고 IT전문매체인 테크크런치(TechCrunch)가 13일(목)에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이번 주 아폴로(Apollo), 블랙록(BlackRock), 블랙스톤(Blackstone), 브룩필드(Brookfield),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KKR 등 굴지의 금융사들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최대 5000억 달러까지 투입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이 초대형 금융사들을 설득하기 위해 엔비디아는 자사 자금을 걸고 담보로 잡힌 자사 칩의 가치를 직접 보증하기로 합의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앤비디아
(앤비디아. 자료화면)

구체적으로 엔비디아는 담보로 쓰인 GPU가 예상만큼 가치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그 차액의 최대 25%를 자사가 부담하겠다고 약속했다. 예컨대 데이터센터 운영사가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대주가 담보 칩을 처분해야 하는데, 장부상 예상 가격만큼 팔리지 않으면 엔비디아가 그 차액 일부를 메워준다는 구조다.

테크크런치는 이 방식이 이례적이면서도 영리한 동시에 위험하다는 평가가 이미 여럿 나왔다고 전하며, 실제로 이 세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짚었다. 금융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이른바 '역방향(wrong way)' 리스크가 만들어진다고 지적한다. AI 수요가 약해질수록 엔비디아가 떠안아야 할 의무는 오히려 커지고, 동시에 매출도 함께 줄어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채권 시장이 이 소식에 크게 동요하자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X(옛 트위터)와 경제 방송에 직접 나서 엔비디아가 지는 리스크가 제한적이라는 점을 설명해야 했다.

이번 계획을 둘러싸고 일각에서는 닷컴 버블 붕괴와 함께 몰락한 통신장비업체 루슨트 테크놀로지스(Lucent Technologies)를 떠올린다. 루슨트는 자사 장비를 사려는 고객들에게 직접 돈을 빌려주다 거품이 꺼지면서 함께 무너진 전례가 있다. 테크크런치는 이 비교가 젠슨 황에게 부담스러운 그림자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완전히 부당한 지적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실제 엔비디아는 오픈AI(OpenAI)와 앤트로픽(Anthropic) 같은 프런티어 AI 연구소, 그리고 자사 칩을 담보로 활용하는 방식을 처음 도입한 코어위브(CoreWeave)를 비롯해 네비우스(Nebius), 퍼머스(Firmus), 램다(Lambda) 등 이른바 '네오클라우드' 기업들에 이미 수십억 달러를 투입한 바 있다. 블룸버그(Bloomberg) 집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올여름에만 약 7500억 달러 규모의 순환 거래를 추가로 추진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지적에 젠슨 황은 X에 "이것이 순환 자금 조달(circular financing)이냐"고 스스로 물으며 "이번 계획은 바로 그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설계됐다. 우리는 독립적이고 장기적인 기관 자본을 AI 인프라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테크크런치는 이 발언이 사실과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루슨트와 달리 엔비디아는 미래 칩 가치의 일부만 보증하는 방식으로, 자본과 위험 부담의 대부분을 다른 투자자들에게 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매체는 이번 계획이 성공한다면 엔비디아가 기존 자금 조달 방식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한 새로운 자금원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오라클(Oracle)처럼 이미 막대한 부채를 짊어진 하이퍼스케일러가 있는가 하면, 구글(Google)은 신규 지분을 발행했고 메타(Meta)는 막대한 현금을 소진하는 등 기존 자금 조달 여력이 빠듯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CEO는 최근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철도 시대의 금융공학이 미국 경제를 붕괴시킨 과정을 다룬 책 '1873'을 언급하기도 했다고 테크크런치는 전했다.

테크크런치는 이번 도박의 진짜 위험은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는 지금의 AI 붐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가능성이라고 지적했다. 아직 초기 국면이라는 통념과 달리, 기업과 소비자들이 AI 사용을 줄이거나 기존 인프라를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혹은 아예 무용지물로 만드는) 신기술이 등장한다면 수요는 순식간에 말라붙고 시장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젠슨 황은 AI를 장기적으로 '투자 가능한 인프라'로 규정하며 이런 우려를 정면 반박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AI 팩토리'라 부르는 AI 서버가 PC처럼 빠르게 감가상각되는 자산이 아니라 철도나 항공사에 가까운 자산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필요가 바뀌면 그 팩토리는 다른 고객, 다른 클라우드, 다른 운영사가 사용할 수 있다. 이런 폭넓은 생태계는 엔비디아 컴퓨팅에 잠재적 사용자와 인수자로 이뤄진 깊은 시장을 제공해 잔존 가치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테크크런치는 이런 구상이 현실화되면 엔비디아가 신형 칩 못지않게 노후 아키텍처에도 관심을 쏟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타트업과 기업, 심지어 연구자들도 프런티어급 모델과 함께 저렴한 오픈웨이트(open-weight) 모델을 선택하기 시작한 것처럼, 앞으로는 각기 다른 AI 수요에 맞춰진 더 다양한 하드웨어를 골라 쓰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체는 AI 업계의 왕좌를 차지한 엔비디아에게 이를 실현할 힘과 기회의 창이 지금 열려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