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3 11:04 PM
By 이재경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 출신 연구자들이 설립한 런던 소재 AI 스타트업 인히런트(Inherent)가 자사 AI 에이전트 '패러데이(Faraday)'가 앤스로픽(Anthropic)과 오픈AI(OpenAI)의 훨씬 더 큰 모델들을 특정 과제에서 앞질렀다고 밝혔다고 IT전문매체인 테크크런치(TechCrunch)가 22일(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인히런트는 5000만 달러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하며 스텔스 모드에서 벗어난 지 불과 몇 주 만에 새 AI 에이전트 패러데이를 공개했다. 패러데이는 정답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발표된 과학 논문의 연구 결과를 독립적으로 재현하는 과제에서 더 크고 잘 알려진 모델들을 능가하는 성과를 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구글 딥마인드 출신 창업자들이 세운 여러 스타트업 중에서도 인히런트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아온 곳이지만, 자금력이 훨씬 큰 경쟁사들이 아직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사이 먼저 성과를 공개하고 나선 셈이라고 매체는 짚었다.
논문 재현이라는 과제는 언뜻 보면 인히런트가 내세우는 원대한 목표, 즉 단순히 기존 결과를 검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과학적 지식을 발견하는 AI를 만들겠다는 목표에 비해 다소 소소한 재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공동창업자 겸 최고과학책임자(Chief Scientist) 에드워드 휴스(Edward Hughes)는 논문 재현이 인간 과학자들에게도 표준적인 훈련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많은 박사과정 학생들이 이런 방식으로 연구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휴스는 다른 AI 시스템을 이번 과제에서 앞선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다고 테크크런치에 밝혔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에 도달한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일에서 우리가 가장 흥미롭게 여긴 부분은 최정상급 에이전트들을 이겼다는 결과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이를 만들어낸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대목은 규모의 차이다. 이번 비교 대상은 앤스로픽의 클로드 오퍼스(Claude Opus) 4.8과 오픈AI의 GPT-5.5로, 둘 다 훨씬 크고 최정상급(frontier-scale) 시스템이다. 반면 패러데이는 매개변수(parameter) 270억 개에 불과한 비교적 작은 모델 '큉 3.6(Qwen 3.6)'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매개변수는 대략적으로 모델의 크기, 그리고 통상적으로 학습 비용을 가늠하는 척도로 쓰인다.
인히런트가 세운 성공 기준은 단순한 정확도를 넘어선다. 회사 측은 패러데이가 결과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실험이 해볼 가치가 있는지, 실험을 어떻게 잘 설계할지에 대한 감각, 이른바 '연구 감각(research taste)'을 보여주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무형에 가까운 감각을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은데, 이 지점에서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이 활용된다. 강화학습은 AI 시스템에 규칙을 일일이 정해주는 대신 좋은 결과에 보상을 주는 방식의 학습법이다. 인히런트는 에이전트를 과학 연구 방법론 자체에 대한 학습에 주로 의존해 훈련시키기보다는 이러한 보상 기반 접근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이것이 여러 과학 분야에 걸쳐 기여할 수 있는 에이전트를 만든다는 장기 목표에 더 잘 일반화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휴스는 "우리는 항상 AI 과학자 에이전트를 만들고 우리 에이전트에 연구 감각을 불어넣는다는 북극성 같은 목표에 따라 움직인다"고 말했다. 이런 지향은 인히런트가 무엇을 만들지 않을지도 결정했다. 회사는 자체 코딩 도구를 개발하는 대신 패러데이가 오픈AI의 GPT-5.5 코덱스(Codex)를 활용하도록 했는데, 이는 인간 과학자들이 모든 것을 직접 만들기보다 기존 소프트웨어에 의존하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인히런트는 또한 사용자가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해주는 에이전트를 만들지 않으려 한다. 휴스는 자신이 지향하는 목표는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유형의 동료, 즉 "이 부분이 궁금해져서 직접 실험을 해봤습니다. 이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먼저 돌아와 말해주는 동료를 본떠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협업 지향은 회사 운영 방식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직원 12명 전원이 런던 킹스크로스(King's Cross)에 위치한 사무실에 출근해 대면으로 근무한다. 킹스크로스는 한때 낙후된 지역이었지만 구글 딥마인드가 자리 잡으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AI 허브 중 하나로 탈바꿈한 곳이다. 휴스는 "런던이야말로 있어야 할 곳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휴스는 런던에 밀집한 AI 인재풀에 대해 낙관적인 시각을 보이면서도, 영국에서 흔히 시행되는 '가든리브(garden leave)' 관행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을 보탰다. 가든리브는 퇴사한 직원이 몇 달간 경쟁사에 합류하거나 창업하는 것을 막는 제도로, 미국 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이런 제약을 받지 않아 미국 스타트업들이 이전 직장을 떠난 인재를 채용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고 지적된다. 휴스는 "이는 회사의 입장이 아니라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나 자신도 가든리브 문제로 영향을 받았다"고 테크크런치에 말했다.
휴스는 결국 이런 제약을 극복하고 다른 딥마인드 출신 2명, 그리고 또 다른 공동창업자 1명과 함께 인히런트를 설립했다. 회사의 성장세는 멈추지 않고 있으며, 올해 말까지 직원 수를 '20~25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세계모델(world model) 분야에서도 야심을 품고 있는 데다,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의 새로운 역할 변화로 딥마인드 내부 일부 직원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히런트의 채용 확대는 이직을 저울질하는 딥마인드 직원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매체는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