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4 10:59 PM

미 연방대법원, 트럼프 우편투표 제한 행정명령에 길 열어

By 전재희

"주들의 소송은 너무 이르다" 절차상 판단...합법성 최종 결론은 아니어서 추가 소송 불가피

미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우편투표 제한 행정명령을 막았던 하급심 판단에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우편투표 관련 새 규정을 추진할 수 있도록 법적 장애물 일부를 제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대법원은 24일 보수 성향 다수 의견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내린 우편투표 관련 행정명령의 핵심 조항을 차단한 1심 법원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결정했다. 다만 이번 결정은 행정명령의 합헌성이나 최종 적법성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주도하는 주들이 제기한 소송이 절차적으로 너무 이르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대법원도 정부가 행정명령을 실제 집행하기 위해 취하는 모든 조치가 반드시 적법하다는 뜻은 아니라고 밝혔다.

대법원 "소송 제기 시점이 너무 빨랐다"

이번 사건은 약 24개 민주당 주도 주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행정명령이 주가 관리하는 선거 절차에 연방 행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 다수 의견은 주들의 도전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고 봤다. 행정명령 자체만으로 주들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고, 실제 집행 규칙이 확정되기 전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연방 대법원
(연방 대법원. 자료화면)

대법원은 "이번 결정이 정부가 행정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취하는 어떤 조치도 반드시 합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그 문제는 시간이 지나야 판단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앞으로 우정공사(USPS)나 다른 연방기관이 실제 규정을 집행할 경우, 새로운 소송이 다시 제기될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명령의 핵심 내용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31일 연방선거의 시민권 확인과 선거 무결성 강화를 명분으로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랫동안 우편투표에 불신을 제기해왔고, 이번 명령도 선거 신뢰를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행정명령은 국토안보부(DHS)에 각 주에 거주하며 선거일까지 만 18세가 되는 미국 시민 명단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또 우정공사가 새 규칙을 마련해, 우편투표 자격이 확인된 명단에 없는 사람의 투표용지는 배달하지 못하도록 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투표용지 봉투에는 바코드 등 의무적 디자인 요소를 넣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법무부에는 불법 투표용지 배포와 관련된 사건을 우선적으로 기소하라는 지시도 담겼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선거 무결성 확보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민주당 주들과 투표권 단체들은 유권자 박탈과 연방정부의 선거 개입 위험을 우려하고 있다.

USPS, 새 우편투표 규정 확정

대법원 심리 과정에서 미국 우정공사는 트럼프 행정명령의 일부를 이행하는 95쪽 분량의 최종 규정을 발표했다. 새 규정은 주 정부가 우편투표용지를 받는 유권자의 이름과 주소를 우정공사에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또 우편투표 봉투에 고유 바코드를 부착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행정부는 법원이 허용할 경우 올해 중간선거에서 이 규정을 적용하려 하고 있다. 다만 현재 별도의 하급심 가처분 명령들이 남아 있어, 당장 모든 조항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AP통신은 대법원의 이번 결정이 트럼프 행정명령의 헌법적 정당성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 주들이 너무 이른 시점에 소송을 냈는지를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실제 선거 절차가 즉시 바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진보 성향 대법관들 반대

대법원의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다수 의견에 반대했다.

소니아 소토마요르(Sonia Sotomayor) 대법관은 엘레나 케이건(Elena Kagan) 대법관이 동참한 반대의견에서, 이번 결정은 관련 쟁점에 대한 판단을 뒤로 미룬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커탄지 브라운 잭슨(Ketanji Brown Jackson) 대법관은 별도 반대의견에서 다수 의견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혼란과 불확실성"을 불필요하게 주입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선거 관련 사건에서 대법원의 절차 기준이 어떤 도전은 너무 이르다고 하고, 어떤 도전은 너무 늦었다고 하는 식의 "카프카적 악몽"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급심 판단은 엇갈려

트럼프 행정명령을 둘러싼 소송은 여러 관할 법원에서 제기됐고, 하급심 판단은 엇갈렸다.

이번 대법원 사건의 직접 대상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인디라 탈와니(Indira Talwani) 연방지방법원 판사의 결정이었다. 탈와니 판사는 헌법이 선거 관리 권한을 주와 의회에 부여하고 있으며, 대통령이나 연방기관에 선거 운영을 직접 관리할 명시적 권한을 주지 않는다고 보고 행정명령을 "법적으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에 그 판단을 절차상 이유로 뒤집었다. 핵심은 행정명령의 내용이 옳으냐가 아니라, 주들이 아직 실제 집행 이전에 법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수 있느냐였다.

대부분 조항은 아직 별도 가처분에 묶여

대법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명령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별도 하급심 가처분으로 전국적 시행이 중단된 상태다. 대법원은 이번 결정에서 그 별도 가처분을 직접 다루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법원이 자신들의 손을 들어준 만큼, 해당 가처분을 내린 하급심 판사도 이를 신속히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로이터는 이번 대법원 결정이 트럼프 행정부의 우편투표 제한 구상에 일단 힘을 실어줬지만, 행정명령과 USPS 규정의 실제 집행 여부는 추가 소송과 하급심 판단에 달려 있다고 전했다.

중간선거 앞두고 다시 대법원으로 갈 가능성

이번 사건은 11월 3일 중간선거 전 다시 대법원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USPS 규정이 이미 확정됐고, 행정부가 올해 선거에 적용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주들과 투표권 단체들은 실제 규정이 유권자의 우편투표 이용을 제한하거나 주 선거 운영 권한을 침해한다고 판단할 경우, 추가 소송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우편투표의 신뢰성을 높이고 부정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할 전망이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연방정부가 주의 선거 관리 영역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둘째, 우편투표를 규제하는 새 연방 규정이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주는가다.

법적 장애물은 일부 제거됐지만 최종전은 남았다

연방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트럼프 행정부에 중요한 절차적 승리를 안겼다. 행정부는 우편투표 제한 행정명령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일부 열었고, USPS도 관련 최종 규정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번 결정이 행정명령의 합헌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주들의 소송이 너무 이르다고 판단했을 뿐, 정부가 실제로 우편투표 규정을 집행할 때 그 조치가 합법적인지는 별도 판단 대상이라고 선을 그었다.

따라서 우편투표를 둘러싼 법적 다툼은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단계로 넘어갔다. 중간선거가 다가오는 가운데, 연방정부의 선거 개입 권한과 주의 선거 관리 권한, 그리고 유권자의 우편투표 접근성을 둘러싼 충돌은 다시 대법원 앞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