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7 12:41 AM
By 전재희
빙하 붕괴 따른 '얼음·암석 급류' 가능성...미국인 약 50명 등 외국인 관광객도 연락 두절
네팔과 중국 티베트 국경 지역에서 대규모 돌발 홍수가 발생해 네팔에서만 최소 157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실종됐다. 실종자 가운데는 미국인 약 50명과 인도인 130명 이상을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들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홍수는 히말라야 고지대에서 발생한 대규모 빙하 또는 얼음·암석 붕괴가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초기 위성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경 인근 약 1만6,000피트 고도에 있던 빙하 일부가 떨어져 나와 계곡 아래로 추락했고, 그 충격으로 얼음이 물과 진흙, 암석과 뒤섞이며 거대한 급류를 형성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홍수는 네팔과 중국 국경의 주요 통관 거점인 기롱항(Gyirong Port) 일대를 덮쳤다. 해발 약 6,000피트에 위치한 이 세관 검문소에서는 굉음이 점점 커지자 사람들이 달아나기 시작했고, 곧 거대한 흙탕물이 건물 주변을 휩쓸었다.
공개된 영상에는 진흙과 물이 순식간에 세관 건물을 삼키듯 몰려드는 장면이 담겼다. 국경 양쪽의 마을과 시설들이 홍수에 휩쓸렸고, 상당수 건물은 토사에 묻혔다.
중국은 티베트 피해 지역에 수백 명의 인력과 중장비를 투입했다. 네팔에서는 발렌드라 샤(Balendra Shah) 총리가 군과 경찰, 준군사조직을 동원해 구조 작업에 나섰다.
샤 총리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의 천둥 같은 충격"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정부가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초기에는 빙하호 붕괴나 지진에 따른 산사태 가능성도 거론됐다. 그러나 네팔 기상당국은 중국 기상당국과 회의한 뒤, 중국 측 예비 평가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 의미 있는 강우가 없었고 비로 인한 홍수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 지질조사국은 처음에 이 지역에서 규모 4.4의 지진을 기록했지만, 이후 이를 산사태가 만들어낸 지진파 신호로 수정했다. 즉 지진이 산사태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대규모 붕괴 자체가 지진처럼 감지됐다는 의미다.
현재 과학자들이 가장 유력하게 검토하는 가설은 빙하 일부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나와 계곡으로 추락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로 물과 토사, 얼음 덩어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오하이오주 데이턴대의 지구과학·지속가능성 교수 우메시 하리타샤(Umesh Haritashya)는 "이 정도 규모의 홍수와 잔해가 하류로 내려오려면 거대한 토지 덩어리나 얼음 붕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추가 위성자료가 처리되면 보다 분명한 원인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 지역은 네팔의 랑탕 계곡(Langtang Valley)과 타망 헤리티지 트레일(Tamang Heritage Trail)로 향하는 관문이다. 또 네팔의 고사이쿤다(Gosaikunda) 호수와 티베트의 카일라스 만사로바르(Kailash Mansarovar) 등 힌두교와 불교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경로이기도 하다.
시야프루 베시(Syapru Besi)와 티무레(Timure) 등 마을은 트리슐리강(Trishuli River)과 렌데강(Lhende River)이 만나는 지역 근처에 있어 특히 큰 피해를 입었다.
라수와 지역에서 순례자와 관광객을 위한 홈스테이를 운영하는 67세 누르부 타망(Nurbu Tamang)은 홍수 당시 카트만두에 있었다. 그는 시야프루 베시에 있던 자신의 집 한 채가 홍수에 휩쓸려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내 집은 강 협곡보다 약 500m 높은 곳에 있었지만, 물이 너무 많아 경로에 있던 모든 것을 쓸어갔다"고 말했다.
타망은 구조된 주민 일부를 카트만두 자택에 임시로 머물게 했다. 그는 네팔 보안군이 헬리콥터로 약 130명을 구조했으며, 이 가운데 20명 정도는 카트만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구조된 주민들이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들이 본 것은 보통 홍수와 달랐고,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실종자 가운데는 외국인 관광객도 다수 포함돼 있다. WSJ는 미국인 약 50명과 인도인 130명 이상이 아직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전했다.
해당 지역은 산악 트레킹과 종교 순례가 겹치는 곳이어서 외국인 방문객이 많다. 특히 네팔과 티베트 사이를 오가는 순례객과 트레커들이 국경 마을과 산악 루트를 이용해왔다.
정확한 실종자 규모는 구조와 수색이 진행되면서 계속 바뀔 가능성이 있다. 네팔 당국은 사망자 수 역시 추가 시신 수습에 따라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재난은 히말라야와 아시아 고산지대에서 커지고 있는 새로운 위험을 보여준다. 과거 홍수는 주로 폭우나 몬순과 연결됐지만, 최근에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는데도 빙하와 토사, 고산 호수가 불안정해지면서 거대한 급류가 발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온 상승으로 빙하가 약해지고, 산악 지형의 얼음과 암석 구조가 불안정해지면서 하류 마을들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 네팔·중국 국경 지역에서는 지난해 7월에도 티베트의 빙하호 범람으로 홍수가 발생했다. 2023년에는 인도 북동부 시킴주에서 빙하호가 터져 수력발전 댐이 파괴되고 수십 명이 숨졌다.
스코틀랜드 던디대의 지구과학자 사이먼 쿡(Simon Cook)은 위성자료상 중국 국경 인근 약 1만6,000피트 지점의 빙하 일부가 떨어져 나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해당 빙하가 가파른 기반암 턱 위에 걸쳐 있었고, 빙하의 혀 부분이 그 가장자리에 매달린 상태처럼 보였다고 설명했다.
다만 과학자들은 빙하 붕괴 가설이 맞더라도, 어떻게 그 정도 규모의 물이 만들어졌는지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빙하 안에 숨겨진 물이 있었는지, 계곡 아래의 다른 얼음까지 함께 부서져 물로 변했는지, 토사와 암석이 어떻게 급류의 파괴력을 키웠는지 등을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쿡은 "떨어져 나간 빙하 조각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데, 홍수 규모는 절대적으로 재앙적이었다"며 "그 빙하 조각이 물로 분쇄돼 이 정도 규모의 홍수를 만들 수 있었는지가 핵심 질문"이라고 말했다.
네팔과 티베트 국경을 덮친 이번 홍수는 단순한 국지적 산사태나 계절성 폭우를 넘어, 히말라야 고산지대가 직면한 새로운 재난 위험을 보여준다.
비가 거의 오지 않았는데도 빙하나 얼음·암석 구조가 무너지면, 하류 마을과 관광지, 순례길은 순식간에 대형 홍수에 휩쓸릴 수 있다. 특히 국경 지역과 산악 관광지에는 주민뿐 아니라 외국인 순례자와 트레커가 많아 피해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
현재까지 네팔에서만 최소 157명이 사망했고, 수백 명이 실종됐다. 과학자들은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위성자료와 지형 변화를 분석하고 있다. 이번 재난은 기후변화로 불안정해진 빙하와 고산 지형이 앞으로 남아시아와 티베트 일대에 얼마나 큰 위험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