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7 11:49 AM

베센트 국채 매입 확대, 재무부와 연준의 경계 흔든다

By 전재희

장기금리 낮추려는 재무부 조치에 연준 독립성 논란...잭슨홀 회의서 핵심 쟁점 부상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미국 재무장관의 잇단 시장 개입이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사이의 경계를 시험하고 있다. 장기 국채 수익률을 낮추기 위한 재무부의 국채 바이백 확대 계획이 통화정책 영역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논란이 커지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번 논란은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리는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연례 심포지엄에서도 주요 화두가 될 전망이다. 케빈 워시(Kevin Warsh) 연준 의장이 28일 연설에 나설 예정인 가운데, 중앙은행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재무부가 연준이 전통적으로 담당해온 금융여건 조절 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스콧 베센트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자료화면)

연준은 물가 안정과 고용을 위해 통화정책을 운용한다. 반면 재무부는 정부 자금을 조달하고 국가부채를 관리한다. 두 기관의 역할이 지나치게 겹치면, 통화정책이 정부의 차입 비용을 낮추는 데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장기 국채 바이백 확대가 촉발한 논란

베센트 장관은 지난주 시장을 놀라게 했다. 그는 재무부가 장기 국채 바이백 규모를 최소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목표는 19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오른 장기 국채 수익률을 낮추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조치가 연준의 정책 방향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목표치를 웃도는 상황에서 금리가 충분히 높은지 논의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 재무부가 장기금리를 낮추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금융여건이 완화될 수 있다. 이는 연준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긴축을 강화하려는 흐름과 반대로 작용할 수 있다.

전직 연준 의장 세 명에게 조언했던 존 파우스트(Jon Faust)는 베센트의 발언과 행동이 워시 의장에게 "실질적인 골칫거리"라고 말했다. 그는 고물가 상황에서 통화정책이 정부 재정 조달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잭슨홀 회의를 앞두고 이런 조치를 내놓은 것은 "사려 깊지 못하거나, 심지어 모욕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재무부 "권한 회복일 뿐, 통화정책 개입 아니다"

재무부는 이런 비판을 일축하고 있다.

재무부 대변인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부채관리 결정이 전적으로 재무부의 재량이었다며, 베센트 장관 아래 재무부는 장기적으로 미국 납세자에게 가장 낮은 비용으로 연방정부 자금을 조달한다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권한을 회복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센트 장관도 국채 바이백이 통화정책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연준의 대차대조표에 변화가 있을 경우 재무부와 연준이 함께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은 공식 논평을 거부했다.

FOMC 내 금리 인상론 더 강해질 수도

연준 내부는 이미 금리 수준을 둘러싸고 갈라져 있다.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세 명의 위원이 금리 인상을 주장하며 반대표를 던졌다.

파우스트는 베센트의 국채시장 개입이 장기금리와 차입비용을 실제로 낮춘다면, FOMC 위원 다수가 오히려 금리 인상 쪽으로 더 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재무부가 장기금리를 낮추면 연준은 물가 억제를 위해 단기 기준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재무부의 개입이 의도와 달리 연준의 긴축 압력을 키울 수도 있다.

'정례적이고 예측 가능한' 부채관리 원칙 흔들려

이번 발표가 특히 주목받은 이유는 시점 때문이다. 재무부는 통상 분기별 차입계획 발표 때 국채 발행과 부채관리 변경사항을 공개해왔다. 투자자들에게 "정례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국채시장을 운영하겠다고 약속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장기 국채 바이백 확대 발표는 정례 발표 2주 뒤에 나왔다. 시장에서는 재무부가 기회주의적으로 금리를 관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현재 국채 바이백 프로그램은 2024년 시작됐다. 원래 목적은 거래가 덜 활발한 오래된 국채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주 시장에는 뚜렷한 기능장애 조짐이 없었다. 베센트 장관은 대신 장기금리 수준이 경제 기초여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는 바이백 프로그램의 초점이 시장 기능 개선에서 장기금리 상승 억제로 옮겨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장기채 발행 축소 가능성에도 시장 촉각

베센트 장관의 조치는 다른 가능성에 대한 추측도 불러왔다. 예컨대 재무부가 장기 국채 발행 규모를 줄이면 장기금리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베센트는 취임 전에는 이런 식의 부채관리가 위험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장기금리가 오르고 정부 차입 비용이 부담으로 떠오르면서, 재무부가 점점 더 적극적인 시장관리 수단을 검토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바이백 확대는 차입비용을 낮추기 위한 첫 번째 시도도 아니다. 베센트는 최근 일본 엔화 방어를 지원하기 위해 연준이 외국 중앙은행에 더 많은 달러를 공급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는 일본이 엔화를 방어하기 위해 미 국채를 팔아야 하는 상황을 피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일본이 대규모로 미 국채를 매각하면 미국 장기금리에 상승 압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초에도 정부 통제 아래 있는 패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에 주택담보증권 매입을 늘리도록 지시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낮추려 했다.

워시의 시장 소통 방식과도 충돌

이번 논란은 워시 의장의 연준 운영 방식과도 연결된다.

워시는 연준이 앞으로 무엇을 할지 지나치게 자세히 말하기보다, 시장 가격에서 투자자들의 판단을 더 직접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연준이 말을 줄이면 국채금리와 금융시장 가격이 경제 상황과 정책 기대를 더 순수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지난달 장기 국채금리 상승을 시장이 스스로 금융여건을 긴축하고 있다는 증거로 언급했다.

하지만 재무부가 장기금리에 직접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 국채금리가 투자자들의 판단을 반영하는 것인지, 재무부의 개입을 반영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워시가 추구하는 시장 신호 활용 방식에도 부담이 된다.

드러켄밀러도 비판

베센트와 워시는 모두 유명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Stanley Druckenmiller)와 가까운 인연이 있다. 두 사람은 정부에 들어오기 전 드러켄밀러와 긴밀히 일했다.

그러나 드러켄밀러는 이번 주 WSJ 기고문에서 베센트의 바이백 계획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를 "가격 관리"라고 부르며, 40억달러라는 규모가 시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이는 보수적 시장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재무부가 장기금리를 직접 관리하려는 듯한 움직임에 대한 경계감이 있음을 보여준다.

연준 독립성의 역사적 기억

연준이 항상 재무부와 독립적으로 움직였던 것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준은 전쟁 비용 조달을 돕기 위해 국채 수익률을 낮게 유지하는 데 동의했다. 이 arrangement는 한국전쟁 비용 조달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1951년 재무부-연준 합의로 끝났다. 이 합의는 오늘날 연준 독립성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1965년에는 린든 존슨(Lyndon Johnson) 대통령이 베트남전 중 금리를 올린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William McChesney Martin Jr.) 당시 연준 의장을 텍사스 목장으로 불러 강하게 질책한 사건도 있었다.

워시는 지난해 1951년 합의의 현대판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또 다른 전쟁이 물가 압력을 키우는 상황에서, 그 전쟁을 끝내기 위한 경제전략을 담당하는 베센트 장관의 시장 개입과 마주하게 됐다.

차입비용 관리인가, 통화정책 침범인가

베센트 장관의 장기 국채 바이백 확대는 표면적으로는 부채관리 조치다. 재무부는 정부 자금을 더 낮은 비용으로 조달하기 위해 정당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장이 보는 쟁점은 더 크다. 장기금리를 낮추려는 재무부의 움직임이 연준의 통화정책 효과를 약화시키고, 국채금리라는 시장 신호를 왜곡하며, 중앙은행 독립성의 경계를 흐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이 아직 완전히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재무부가 차입비용을 낮추려 하고, 연준은 물가 억제를 위해 금융여건을 긴축해야 할 수 있다면 두 기관은 같은 시장을 두고 서로 다른 방향의 힘을 가하게 된다.

잭슨홀 회의에서 워시 의장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는 그래서 더 중요해졌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국채 바이백 문제가 아니다. 미국 경제정책의 두 축인 재무부와 연준이 어디까지 협력하고, 어디서부터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