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31 05:24 AM

월가 '모멘텀 트레이드' 급반전...AI 상승주 베팅이 손실로

By 전재희

S&P500 모멘텀 지수, 7월 이후 9% 넘게 하락...바이오 급등·AI주 변동성에 헤지펀드 타격

월가에서 가장 뜨거웠던 투자 전략이 갑자기 손실 거래로 바뀌고 있다. 그동안 상승하는 주식을 사고 부진한 주식에 베팅하는 이른바 모멘텀 트레이드가 큰 수익을 안겨줬지만, 최근 시장 흐름이 급변하면서 이 전략을 따른 투자자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S&P500 모멘텀 지수는 7월 1일 이후 9% 넘게 하락했다. 같은 기간 S&P500 지수가 2.8%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이 지수는 S&P500 구성 종목 가운데 가격 상승세가 강한 주식들을 추적하는데, 현재 25년 만에 가장 큰 분기 상대 부진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뉴욕 증권 거래소
(뉴욕 증권거래소. 자료화면)

뱅크오브아메리카 추정에 따르면 7월은 약 40년 만에 두 번째로 나쁜 모멘텀 트레이드의 달이었다. 더 나빴던 달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4월뿐이었다.

잘나가던 AI주 매수 전략이 흔들리다

모멘텀 트레이드는 단순한 원리에 기반한다. 이미 오르고 있는 주식은 계속 오르고, 부진한 주식은 계속 부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가정이다.

올해 이 전략은 특히 AI 열풍 속에서 큰 성과를 냈다. 투자자들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Micron Technology), 엔비디아(Nvidia), 어드밴스트 마이크로 디바이시스(AMD) 등 AI 수혜주를 집중 매수했다. 반대로 AI 확산으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주식에는 하락 베팅을 했다.

그 결과 S&P500 모멘텀 지수는 2분기에 44% 급등하며 사상 최고의 분기 성과를 기록했다. 최근 5년 동안은 133% 상승해 S&P500 전체 수익률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대형 펀드와 개인 투자자들이 이 흐름에 몰렸고, 일부는 레버리지와 옵션을 활용해 수익률을 키우려 했다. 매수세가 다시 주가를 끌어올리면서 모멘텀 전략은 한동안 자기실현적 예언처럼 작동했다.

캔터 피츠제럴드의 매슈 팀(Matthew Tym) 매니징디렉터는 이 거래를 두고 "자기실현적 예언"이라고 말했다.

바이오주 급등이 모멘텀 전략을 뒤흔들어

최근 모멘텀 트레이드의 급반전에는 바이오주 급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

모더나(Moderna)를 비롯한 바이오주들은 최근 몇 년간 공매도 비중이 높은 종목이었다. 그러나 모더나와 머크(Merck)의 암 백신 관련 긍정적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들 주식이 급등했다. 모더나는 이달 들어 약 150% 올랐다.

이는 부진주에 하락 베팅하고 상승주를 매수했던 퀀트펀드와 헤지펀드에 큰 손실을 안겼다. 하락할 것으로 보고 공매도했던 종목들이 급등하면서 숏 포지션이 손실로 돌아섰고, 동시에 기존 인기 상승주들도 흔들리면서 양쪽에서 타격을 받은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8월 19일이 "시스템형 롱숏 매니저"들에게 2년여 만에 최악의 하루였다고 고객들에게 전했다. 손실의 약 절반은 모멘텀 거래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됐다.

헤지펀드 인기주도 20년 만의 부진

헤지펀드들이 선호하던 인기 종목들도 흔들렸다.

골드만삭스가 추적하는 헤지펀드 보유 인기주 바스켓은 7월 S&P500 대비 20년 넘게 보지 못한 수준의 월간 부진을 기록했다. 이는 단순히 특정 종목 문제가 아니라, 많은 펀드들이 비슷한 포지션을 잡고 있었던 거래 자체가 동시에 풀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부 투자자들은 올해 모멘텀 트레이드를 이끌었던 기술주와 AI주에 대해 오히려 하락 베팅을 시작했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자료에 따르면 투기적 투자자들의 나스닥100 지수 선물 순매도 포지션은 최근 20년 내 높은 수준까지 늘었다.

이는 시장 지수는 여전히 오르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투자자들이 훨씬 더 조심스러워지고 있다는 신호다.

모멘텀 전략은 왜 오래 통했나

모멘텀 투자는 단순해 보이지만 오랫동안 효과를 보여온 전략이다.

투자자들이 새로운 기업 정보나 산업 변화를 동시에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소식이 나온 주식은 시간이 지나며 더 많은 투자자들의 매수 대상이 된다. 대형 연기금이나 기관투자자는 하루아침에 포지션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매수세가 천천히 쌓이고, 이것이 추가 상승을 만든다.

트레이딩업체 이퀼리브르(EquiLibre)의 선임연구원 아구스틴 르브론(Agustin Lebron)은 "수십 년 동안 모멘텀 전략을 운용하는 데 대단한 정교함이 필요하지 않았고, 그럭저럭 괜찮은 수익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연기금이 하루 만에 포지션을 뒤집을 수 없다는 점, 또 투자자들이 이익이 난 주식은 너무 빨리 팔고 손실이 난 주식은 너무 오래 보유하는 행동 편향이 모멘텀 효과를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신봉자들은 남아 있다

모멘텀 전략의 지지자들은 이번 부진이 전략 자체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본다. 오랜 기간 성과가 좋았던 전략도 중간중간 급격한 손실 구간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AQR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안티 일마넨(Antti Ilmanen) 포트폴리오 솔루션 공동대표는 "어떤 전략에도 실망스러운 기간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모멘텀 전략은 특정 업종 안에서 가장 강한 종목을 사고 가장 약한 종목을 공매도하거나, 상승하는 시장과 자산군에 올라타는 방식, 또는 퀀트 모델을 활용한 팩터 투자 방식 등 다양한 형태로 운용돼왔다.

문제는 최근 몇 년간 너무 많은 투자자들이 비슷한 방향으로 몰렸다는 점이다. 같은 거래에 많은 자금이 쏠리면 수익이 날 때는 상승이 더 커지지만, 방향이 바뀔 때는 손실도 빠르게 확대된다.

AI 열풍과 닷컴버블의 그림자

일부 투자자들은 최근 기술주 상승세가 2000년대 초 닷컴버블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샌프란시스코 소재 오그본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마이크 오그본(Mike Ogborne)은 기술주에 대해 더 신중해졌으며, 평소보다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기술기업들의 자본지출이 계속 늘어나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 인프라 투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언젠가 그 투자 사이클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오그본은 이를 신데렐라의 시계가 자정을 치는 순간에 비유했다. 그는 "자정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다"며 "자본지출 사이클이 끝났다고 미리 알려주는 메모는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엔비디아 반등은 변동성의 또 다른 신호

시장의 변동성은 여전히 크다. 한때 모멘텀 거래에 대한 불안이 커졌지만, 엔비디아는 실적 발표 후 거의 9% 급등했다. 이는 AI 대표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얼마나 빠르게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최근에는 모멘텀 인기주에 몰렸던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Situational Awareness)의 급격한 붕괴 위기도 투자자들의 불안을 키웠다. 이 펀드는 반도체주를 포함한 인기 모멘텀 종목에 대거 투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한쪽에서는 AI 대장주가 다시 급등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같은 거래에 몰렸던 펀드들이 손실을 보는 상황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상승주 추격의 자기실현 구조가 깨졌다

월가의 모멘텀 트레이드는 오랫동안 단순하지만 강력한 전략으로 통했다. 오르는 주식을 사고, 부진한 주식에 하락 베팅하는 방식은 AI 열풍 속에서 올해 특히 큰 수익을 냈다.

그러나 7월 이후 흐름은 달라졌다. 바이오주 급등으로 공매도 포지션이 손실을 냈고, AI 인기주 변동성이 커지면서 상승주 매수 전략도 흔들렸다. 헤지펀드 인기주는 20년 만의 상대 부진을 기록했고, 모멘텀 지수는 S&P500을 크게 밑돌고 있다.

이번 급반전은 시장 지수가 오르고 있다고 해서 내부 위험이 낮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많은 투자자가 같은 주식, 같은 테마, 같은 전략에 몰려 있을 때 방향 전환은 더 거칠게 나타날 수 있다.

AI 투자 붐이 계속되는 한 모멘텀 전략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손실은 투자자들에게 한 가지 경고를 던진다. 상승주를 따라 사는 거래가 자기실현적 예언처럼 보일 때일수록, 그 예언이 깨지는 순간 손실도 빠르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