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1 07:40 AM

"당신의 소비 습성을 AI가 감시해 가격 매긴다"…美 캘리포니아, 감시가격제 금지 추진

By 이재경

미국에서 개인 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별로 다른 가격을 매기는 이른바 '감시가격제(surveillance pricing)'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캘리포니아주 의회가 이를 금지하는 법안을 놓고 표결을 앞두고 있다고 LA타임스(LA Times)는 31일(월)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2025년 뉴욕주의 한 주민은 항공사 제트블루(JetBlue Airlines)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는 X(옛 트위터)에 올라온 게시물 캡처가 첨부됐는데, 한 이용자가 "장례식에 참석하려 하는데 하루 만에 항공권 가격이 230달러나 올랐다"고 항의하자 제트블루 계정이 "브라우저 검색 기록을 지우고 다시 시도해보라"고 답한 내용이었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제트블루가 소득, 최근 검색 기록 등 개인 데이터를 이용해 고객의 재산 수준이나 소비 습관, 항공권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인지 등을 파악해 가격을 다르게 매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트블루 측은 이런 관행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연방 및 주 정부 차원에서 관련 규제 논의가 본격화됐다.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 크리스토퍼 M. 워드(Christopher M. Ward, 민주당·샌디에이고)가 발의한 '캘리포니아주 하원법안(Assembly Bill) 2564'는 소매업체가 AI 등 어떤 형태의 기술을 이용하든 개인 데이터를 활용해 가격을 정하는 행위를 감시가격제로 규정하고 이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AI
(인공지능. 자료화면)

이 법안은 5월 하원을 통과했으며, 이번 회기 마감을 하루 앞두고 지난 30일 상원에서 표결이 예정돼 있었다. 법안 지지자들은 상원을 통과하면 다시 하원으로 넘어가 최종 표결까지 하루의 시간이 남아 있어 통과 가능성을 낙관해 왔다.

워드 의원은 이 법안이 소비자들이 느끼는 '불공정함'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정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캘리포니아에 살고 평균 소득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컴퓨터 알고리즘이 애리조나에 사는 사람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외에도 뉴저지주는 이미 관련 규제 법을 통과시켰고, 뉴욕주에서는 감시가격제를 금지하는 법안이 주지사 서명을 기다리고 있다. 연방거래위원회(FTC)도 이달 초 개인화된 가격 책정 사실을 고지하지 않는 기업들을 단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수천 년 된 관행, 데이터로 되살아나다

개인화된 가격 책정 자체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다가올 저서에서 가격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 연구단체 그라운드워크 콜래보러티브(Groundwork Collaborative)의 린지 오언스(Lindsay Owens) 상임이사는 "판매자가 손님을 훑어보고 좋은 샌들을 신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높은 값을 부르곤 했다"며 수천 년 전 시장 상인들도 손님의 옷차림이나 가족 사정 등 시각적·사회적 신호로 가격을 흥정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모든 사람에게 다른 가격을 받는 것이 부도덕하다고 본 퀘이커교도들의 발상에서 유래한 '단일가격제'가 보편화됐지만, 소비자가 정찰가에 익숙해진 지금 기업들은 다시 차등 가격제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시가격제에서는 소매업체나 제3의 업체가 개인 데이터를 이용해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지불 의사(willingness to pay)'를 정밀하게 추정한다. 한 상품을 얼마나 검색했는지는 구매 절실함을, 소득이나 우편번호, 가족 구성은 지불 여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쓰일 수 있다. 인디애나대 켈리경영대학원(Kelley School of Business)의 기업법·윤리학 교수 애비 스템러(Abbey Stemler)는 "페이스북에서 우리 개인에 딱 맞춰진 광고를 계속 받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라며 "기업들이 자체 수집하거나 데이터 브로커에게서 구매한 개인 데이터를 이용해 같은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스템러 교수는 이런 관행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 보여주는 실증 데이터는 많지 않고, 대부분 개별 사례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22년 캘리포니아주는 대형 유통업체 타깃(Target)이 모바일 앱에서 고객의 위치에 따라 동일 상품에 다른 가격을 매겼다는 의혹과 관련해 500만 달러 규모의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지난해 발표된 컨슈머리포트(Consumer Reports)의 조사에서는 식료품 유통업체 크로거(Kroger)가 쇼핑객의 인구통계 프로필을 만들어 개인화된 할인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는데, 한 사례에서는 수집된 정보 중 학력이나 자녀 수 등 상당 부분이 실제와 달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Stanford Institute for Human-Centered Artificial Intelligence)의 프라이버시·데이터 정책 연구원 젠 킹(Jen King)은 "그런 판단이 종종 부정확하기 때문에 극도로 불공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24년 FTC는 마스터카드(Mastercard), JP모건체이스(JPMorgan Chase)와 리테일 가격결정 소프트웨어 업체 등 AI와 실시간 데이터를 이용해 가격을 정한다고 광고한 8개 기업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이들 업체는 소비자의 IP 주소와 언어 설정은 물론, 상품명을 웹페이지에서 드래그해 강조했는지, 쇼핑 중 페이지를 얼마나 스크롤했는지와 같은 매우 세밀한 정보까지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FTC 연구진은 이런 정보가 고객이 가격에 얼마나 민감한지, 더 비싼 값을 치를 의사가 있는지를 추정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밝혔다. 예컨대 한 고객이 '신생아 부모'로 프로필화돼 체온계를 검색하고 있다면 더 비싼 제품이 먼저 노출될 수 있고, 이 고객이 빠른 배송을 선택하면 기업은 이를 '절박함'의 신호로 해석해 이후 더 높은 가격을 매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인 4명 중 3명은 기업과 정부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라운드워크 콜래보러티브의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6%가 소매업체가 개인 데이터에 근거해 상품에 다른 가격을 매기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답했다.

낮은 가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반론

그러나 감시가격제에 관한 몇 안 되는 연구들은 이 관행이 기업의 수익을 높이더라도 반드시 소비자 부담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2022년 발표된 한 연구는 구인구직 사이트 지프리크루터(ZipRecruiter)가 기업 고객에게 자사 서비스 이용료를 매기는 방식을 분석했는데, 개인화된 가격을 적용했을 때 고객의 60% 이상이 연구진이 산출한 '최적 요금'보다 더 낮은 가격을 지불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회사는 더 많은 구매자를 끌어들여 전체 수익도 늘렸다.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University of Chicago Booth School of Business)의 마케팅학 교수 장피에르 뒤베(Jean-Pierre Dubé)는 "개인화된 가격 책정이 나쁘다고 단정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그로 인해 이득을 보고 있는 소비자들을 불리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법안에 반대하는 쪽에서도 이런 논리를 근거로 감시가격제 금지가 기업이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현재 법안에는 고객이 구독 서비스를 해지하려 할 때 등 특정 상황에서의 할인은 예외로 허용하는 조항이 담겨 있다. 콜로라도주에서는 지난 6월 자레드 폴리스(Jared Polis) 주지사가 유사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법안의 문구가 지나치게 광범위해 가격을 낮추는 행위까지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설령 감시가격제가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해도, 전문가들은 이 관행이 소비자로 하여금 '이 물건이 원래 얼마여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 자체를 흐트러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스탠퍼드대 킹 연구원은 "투명성이 부족하면 결국 기준점을 잃게 된다"며 "이게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 원래 값은 얼마여야 하는지, 정말 할인을 받고 있는 건지, 진짜 좋은 거래를 하고 있는 건지 늘 추측만 하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