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4 07:09 AM
By 전재희
젤렌스키 "러시아 영공 완전히 불안전해지고 있다"...항공사들 러시아 노선 재검토 압박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공항 주변에 드론 활동을 확대해 러시아 민간항공 운항을 마비시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주고, 전쟁 부담을 러시아 엘리트와 일반 국민에게 직접 체감시키려는 압박전의 일환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일 항공사와 보험사들을 향해 러시아 영공이 "완전히 불안전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공항 인근에 드론을 대량으로 띄워 임시 폐쇄가 반복되는 수준을 넘어, 민간 항공 교통 자체가 사실상 중단되도록 압박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 남부사령부 대변인 세르히 브라추크(Serhiy Bratchuk)는 WSJ에 "이제는 고립적이고 산발적인 비상 경보의 반복이 아니라, 러시아 유럽 지역의 민간 항공 교통을 마비시키기 위한 지속적 압박 단계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민항기를 직접 겨냥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민간 여객기와 민간인 사망을 피하겠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가 추진하는 방식은 이른바 '오퍼레이션 카펫(Operation Carpet)'의 확대다. 이 작전은 드론이 러시아 공항 인근을 비행해 항공교통 관제 당국이 이착륙을 일시 중단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우크라이나 드론은 2023년 여름부터 러시아 공항의 임시 폐쇄를 유발하기 시작했다. 이후 폐쇄 건수는 꾸준히 늘었고, 최근 몇 달 사이 급증했다.
우크라이나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자국 영공을 민간항공에 폐쇄해왔다. 반면 러시아 당국은 전쟁이 격화되고 있음에도 민간 항공 운항을 위한 영공을 계속 열어두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러시아 본토를 겨냥한 장거리 공중전을 크게 확대했다.
항공안보 전문업체 오스프리 플라이트 솔루션스(Osprey Flight Solutions)가 추적한 자료에 따르면, 8월 한 달 동안 약 1만6,000대의 우크라이나 드론이 러시아가 민간항공에 개방해둔 영공으로 넘어갔다.
드론 숫자가 늘어나고, 이를 격추하기 위한 러시아 방공망 활동도 급증하면서 민간항공 위험은 더 커지고 있다. 항공안전 전문가들은 러시아 방공망이 드론을 떨어뜨리는 과정에서 파편이 활주로나 공항 주변에 떨어질 수 있고, GPS 교란이 민간 항공기 항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러시아 방공망은 드론의 경로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가짜 GPS 신호를 보내는 스푸핑(spoofing)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전자전 방식은 민간 항공기에도 혼란을 줄 수 있다.
8월에는 드론 접근으로 러시아 공항들이 하루 평균 32곳씩 임시 폐쇄됐다. 여기에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주변 공항들도 포함됐다.
지난 5월에는 요격된 드론의 파편이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에 떨어졌다. 며칠 전에는 우크라이나가 로스토프 지역의 항공교통 관제 거점을 타격하면서 13개 공항으로 향하는 항공편이 장시간 중단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민간인 위험을 줄이기 위해 영공을 닫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민간항공 자체를 위협하지 않는다. 단 한 대의 민간 항공기도 위협하지 않는다"며 "다만 러시아 하늘에는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규모의 드론이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젤렌스키의 경고를 "테러 선언"이라고 비난했다.
푸틴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가 실제로 이를 실행한다면 러시아가 어떻게 대응할지 보겠다며 "우리는 적절한 수단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전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이것이 러시아 영공의 전면 폐쇄를 강제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목표는 단순히 공항 몇 곳을 일시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민간항공의 운항 위험과 비용을 계속 키워 러시아 경제에 부담을 주는 데 있다.
항공사들도 러시아 영공 위험을 다시 평가하기 시작했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의 직항 노선을 중단했다. 그러나 중동과 아시아 지역의 많은 항공사들은 여전히 러시아 노선을 운항해왔다. 미국·유럽 항공사들이 빠진 자리를 이들 항공사가 채우면서 상업적 이익을 얻은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위험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 국적 항공사 엘알(El Al)은 지난 6월 말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을 이유로 텔아비브-모스크바 노선을 중단했다. 에어인디아(Air India)는 지난 4월 러시아 영공을 지나던 미국발 마지막 노선을 조정해, 샌프란시스코-델리 항공편에 서울 급유 정차를 추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 이후에는 튀르키예 저비용항공사 페가수스(Pegasus)가 러시아행 항공편 여러 편을 취소했다. 아랍에미리트 항공사 플라이두바이(Flydubai)도 "지역 상황 변화"를 이유로 운항 일정과 항로를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항공 추적업체 플라이트레이더24(Flightradar24)에 따르면 9월 1일 이후 국내외 항공사들은 하루 평균 86편을 취소했다.
러시아의 대응 방식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제 민간항공을 규율하는 시카고협약 체계에서는 영공에 안전 위협이 있을 경우 국가가 공역 제한과 조종사·항공사 대상 공식 고지를 신속히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공식적인 전면 영공 폐쇄 대신 제한적 보안 절차를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를 "카펫 제한"이라고 부르며, 정식 공역 폐쇄에 해당하는 "블랭킷 금지"와 구분하고 있다.
러시아 민간항공 당국은 공항 임시 폐쇄 소식을 국제 항공 고시인 노탐(NOTAM) 방식으로 충분히 알리기보다, 텔레그램이나 러시아 국가 지원 메신저 맥스(Max) 같은 플랫폼에 게시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오스프리의 맷 보리(Matt Borie) 최고정보책임자는 러시아 영공 상황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며, 통계적으로 또 다른 대형 참사가 발생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러시아가 지금 하는 방식은 결국 항공기가 격추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민간항공 참사를 낳은 전례가 있다.
2024년 성탄절에는 러시아 방공미사일이 그로즈니 인근에서 아제르바이잔항공 8243편을 실수로 타격했다. 이후 비상착륙 과정에서 탑승자 67명 중 38명이 숨졌고,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 외교 위기가 발생했다.
2014년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에 첫 침공을 시작한 뒤, 러시아 지대공미사일이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을 격추해 탑승자 298명 전원이 사망했다.
이런 전례 때문에 항공안전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민간 영공을 계속 열어두는 것이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도 3일 회원국들에 민간 항공기를 무기로 오인해 공격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ICAO는 각국이 당국 간 조율을 강화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러시아는 민간항공 운항에 중대한 차질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안드레이 니키틴(Andrei Nikitin) 러시아 교통장관은 인테르팍스 통신에 공개된 발언에서 러시아가 항공 안전과 공항 보안 요건을 계속 개선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항공에 중대한 차질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영공을 닫지 않는 한 드론 압박을 계속 확대하겠다는 태도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자국 도시와 에너지 인프라, 주요 산업시설을 계속 공격하고 있는 만큼, 러시아 본토에도 전쟁의 비용을 돌려줘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근 러시아군은 제트 추진 드론과 각종 탄약을 이용해 키이우와 다른 도시들을 거의 중단 없이 공격하고 있다. 러시아의 공습으로 최근 몇 달 동안 수백 명의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의 다음 목표는 러시아 영공을 사실상 닫게 만드는 것이다. 민항기를 직접 공격하지 않더라도, 공항 주변 드론 활동을 대규모로 늘려 이착륙 중단을 반복시키면 항공사와 보험사는 러시아 노선의 위험을 다시 계산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민간항공 운항을 유지하겠다고 하지만, 드론과 방공미사일, GPS 교란이 뒤섞인 영공에서 위험은 계속 커지고 있다. 항공사들은 이미 일부 러시아 노선을 중단하거나 조정하기 시작했다.
이 전략은 러시아 경제를 흔들고 전쟁 부담을 러시아 내부로 끌어들이려는 우크라이나의 압박전이다. 동시에 민간항공 안전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전쟁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위험한 단계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는 민항기를 겨냥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드론이 대량으로 러시아 공항 주변을 비행하고, 러시아 방공망이 이를 요격하는 상황이 반복될수록 민간항공 사고 가능성은 커진다.
러시아가 영공을 계속 열어둘지, 항공사들이 러시아 노선에서 더 빠르게 철수할지,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드론 압박이 러시아 민간항공을 실제로 마비시킬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핵심 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