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6 08:37 AM

전기차 주행거리 해법으로 다시 등장한 가솔린 엔진 추가한 EREV

By 전재희

현대차·포드·스텔란티스, 'EREV' 출시 추진...배터리로 달리고 엔진은 발전기로만 사용

자동차 업계가 전기차 주행거리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절충형 기술을 내세우고 있다. 전기모터로 달리되, 배터리가 부족할 때 가솔린 엔진이 발전기 역할을 해 전기를 공급하는 주행거리 연장 전기차(Extended-Range Electric Vehicle·EREV)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현대차, 포드, 지프 모회사 스텔란티스(Stellantis)는 미국 시장에 EREV 차량을 도입할 계획이다. 이 차량은 플러그를 꽂아 충전하는 전기차이지만, 필요할 경우 가솔린 엔진이 배터리를 충전해 주행거리를 늘려준다. 가까운 곳에 주유소만 있다면 충전 인프라 부족으로 길에 멈춰 설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스텔란티스의 추진 시스템 책임자 미키 블라이(Micky Bly)는 EREV에 대해 "단순히 좋은 해답"이라고 말했다. 스텔란티스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지프 그랜드 왜고니어(Jeep Grand Wagoneer) SUV로 미국 EREV 시장을 열 계획이다. 이후 램 1500 REV 픽업트럭도 출시할 예정이다.

지프 그랜드 왜고니어(Jeep Grand Wagoneer)
(지프 그랜드 왜고니어(Jeep Grand Wagoneer). 위키)

전기차처럼 달리고, 엔진은 충전만 한다

EREV는 일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다르다.

대부분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기본적으로 가솔린 차량에 작은 배터리를 추가한 구조다. 짧은 거리만 전기로 달리다가 배터리가 떨어지면 가솔린 엔진이 직접 바퀴를 움직인다.

반면 EREV는 처음부터 전기차로 설계된다. 바퀴를 움직이는 것은 전기모터이고, 가솔린 엔진은 바퀴와 기계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엔진은 발전기를 돌려 배터리에 전기를 공급하는 역할만 한다.

이 구조는 전기차의 즉각적인 가속감과 주행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장거리 운전과 견인 상황에서 배터리 부족 불안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변속기 같은 일부 내연기관 차량 부품도 필요하지 않다.

램 1500 REV, 최대 690마일 주행 목표

스텔란티스가 준비 중인 램 1500 REV는 대형 배터리와 가솔린 V6 엔진 발전기를 결합한다. 회사는 이 차량이 최대 690마일을 주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미국에서 일반적인 전기차 주행거리의 두 배 이상이다.

현대차도 지난 8월 차세대 싼타페 SUV에 EREV 버전을 추가하겠다고 발표했다. 출시 시점은 2027년으로, 현대차는 약 600마일 주행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도 유사한 차량을 내놓을 예정이다.

포드 역시 지난해 12월 수익성이 낮았던 전기 픽업 F-150 라이트닝을 중단한 뒤, 해당 트럭을 EREV 방식으로 되살리겠다고 밝혔다.

이는 완전 전기차만으로 대형 SUV와 픽업트럭 수요를 끌어안기 어렵다는 업계 판단을 보여준다.

전기차 시장 둔화 속 절충안 부상

EREV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전기차 시장의 둔화가 있다.

자동차 업계는 한때 2030년대까지 시장 대부분이 전기차로 전환될 것으로 보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그러나 실제 소비자 전환 속도는 예상보다 느렸다. 그 결과 업체들은 수십억달러 규모의 투자 부담과 생산전략 조정에 직면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전기차 구매에 제공되던 7,500달러 인센티브를 폐지하고, 전기차 전환을 촉진하던 규제를 완화한 이후 전기차 판매는 부진한 상태다.

미국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높은 차량 가격이고, 다른 하나는 주행거리와 충전 인프라에 대한 불안이다. 특히 대형 SUV와 픽업트럭은 배터리가 커야 하고 충전 시간이 길어질 수 있어 소비자 부담이 더 크다.

EREV는 이 가운데 주행거리와 충전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인기 있는 방식

EREV 구조는 중국의 첨단 자동차 시장에서 이미 인기를 얻고 있다.

중국 소비자들은 전기차 주행감과 첨단 기능을 원하면서도 장거리 주행 안정성을 중시한다. 이에 따라 전기모터 중심 차량에 가솔린 발전기를 결합한 모델들이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도 중국에서는 EREV 차량을 제공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아직 판매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현대차, 포드, 스텔란티스가 미국 시장에 EREV를 들고나오려는 것은 중국에서 검증된 절충형 기술을 미국 소비자에게도 적용하려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소비자 이해가 관건

다만 소비자들이 이 새로운 구조를 쉽게 받아들일지는 별개의 문제다.

자동차 구매 사이트 에드먼즈(Edmunds)의 아이반 드루리(Ivan Drury) 인사이트 담당 이사는 EREV가 또 다른 복잡성을 추가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비자들에게 이 기술을 이해시키는 데 상당한 교육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신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두 퍼센트 수준을 넘지 못했다. 일부 소비자들은 캘리포니아의 다인승 전용차로 이용 같은 혜택 때문에 구매했고, 실제로는 충전을 거의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오토퍼시픽(AutoPacific)의 에드 김(Ed Kim) 대표는 소비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제품을 사지 않는다며, 이것이 북미에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보급이 제한적이었던 핵심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보다 긴 전기 주행거리

자동차 엔지니어들은 EREV가 기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보다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기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순수 전기 주행거리가 짧은 경우가 많았다. 2023년 단종된 스바루 크로스트렉 플러그인은 전기만으로 17마일을 달릴 수 있었고, 2025년 단종된 지프 랭글러 플러그인은 약 20마일 수준이었다.

미국에서 처음 대중화된 EREV에 가까운 모델은 GM의 쉐보레 볼트(Chevrolet Volt)였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생산된 이 차량은 배터리만으로 약 50마일을 달릴 수 있었다.

새로운 EREV 모델들은 이보다 훨씬 긴 순수 전기 주행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트로이트 리서치업체 텔레메트리(Telemetry)의 엔지니어 겸 산업분석가 샘 아부엘사미드(Sam Abuelsamid)는 새 EREV 차량들이 100마일 이상의 전기 주행거리를 갖게 될 것이라며,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평소에는 거의 주유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견인 수요가 핵심 변수

대형 픽업트럭과 SUV에서 EREV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견인 능력이다.

전기 픽업트럭은 무거운 짐을 끌 때 주행거리가 급격히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 이는 포드 F-150 라이트닝과 쉐보레 실버라도 EV 같은 대형 전기트럭 판매가 기대만큼 늘지 못한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EREV는 배터리가 부족해져도 가솔린 발전기를 통해 계속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을 끌고 장거리 주행을 해야 하는 픽업트럭 사용자에게 더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아부엘사미드는 가솔린 발전기가 있으면 얼마나 멀리, 얼마나 오래 견인할 수 있는지 측면에서 큰 희생이 없다고 설명했다.

가격은 여전히 부담

문제는 가격이다.

EREV는 완전 전기차보다 배터리 비용을 일부 줄일 수 있지만, 동시에 배터리와 전기모터, 가솔린 엔진, 발전기 시스템을 모두 갖춰야 한다. 분석가들과 엔지니어들은 EREV가 비슷한 가솔린 차량보다 비쌀 가능성이 크고, 경우에 따라 완전 전기차보다도 더 비쌀 수 있다고 보고 있다.

GM 전 부사장 출신 컨설턴트 댄 니컬슨(Dan Nicholson)은 소비자들이 EREV를 거부하지는 않겠지만, 추가 비용을 지불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즉 EREV가 주행거리 불안을 줄이는 기술적 해법이 될 수는 있지만,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해야 대중시장에 안착할 수 있다.

전기차 전환의 현실적 중간지대

자동차 업계의 EREV 전략은 전기차 전환이 당초 예상만큼 빠르게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비자들은 전기차의 조용한 주행감과 즉각적인 가속, 낮은 유지비에는 관심을 보이지만, 충전 인프라와 장거리 주행, 견인 성능, 가격 문제 앞에서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현대차, 포드, 스텔란티스가 EREV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EREV는 전기차처럼 달리면서도 가솔린 발전기로 주행거리 불안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대형 SUV와 픽업트럭처럼 완전 전기차 전환이 어려운 차급에서는 현실적인 절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성공 여부는 소비자 이해와 가격에 달려 있다. 미국 소비자들은 이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EREV는 그보다 더 설명이 필요한 기술이다.

그럼에도 EREV의 등장은 자동차 업계가 "완전 전기차냐, 내연기관차냐"라는 양자택일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 속에서, 가솔린 엔진을 발전기로 되살린 전기차가 미국 소비자의 주행거리 불안을 해결할 새로운 중간지대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