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2 10:17 AM
By 전재희
의회·기업·가정·종교 모임까지 논쟁 확대..."문명의 위협" 우려 속 과장론 반론도
미국에서 인공지능(AI)에 대한 불안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AI가 문명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경고가 실리콘밸리와 온라인 토론장을 넘어 의회, 직장, 가정, 종교 모임까지 번지면서 미국 사회 전반의 논쟁으로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뉴저지주 민주당 하원의원 조시 고트하이머(Josh Gottheimer)는 11일 딸의 필드하키 경기를 보던 중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AI에 대한 우려를 직접 들었다. 이들은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고트하이머 의원은 AI 감독 강화를 위한 법안을 발의한 인물로, 하원 AI 위원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번 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련 기사를 보내며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고 전했다. 고트하이머 의원은 AI가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는 불안이 이제 일정한 문턱을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이번 불안 확산의 직접적인 계기는 앤트로픽(Anthropic)을 떠난 연구자 제이컵 콕슨(Jacob Coxon)의 공개 경고였다.
콕슨은 WSJ와의 인터뷰와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AI 기업들이 통제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으며 이른바 '위험한 AI'가 문명을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의 글과 동료 연구자의 글은 수억 회 조회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AP통신도 콕슨이 앤트로픽과 오픈AI에서 약 3년 동안 연구했으며, 주요 AI 기업들이 안전보다 더 강력한 모델 개발 경쟁에 집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이 경고는 그동안 일부 AI 연구자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의되던 'AI 실존적 위험' 논쟁을 일반 대중의 관심사로 끌어올렸다.
WSJ는 이번 주 미국 곳곳에서 AI에 대한 대화가 일상으로 파고들었다고 전했다.
성경공부 모임, 가족 식탁, 친구들 단체 채팅방에서 AI가 인류에 어떤 위험을 줄 수 있는지가 논의됐다. 이전까지 추상적 기술 논쟁처럼 여겨졌던 문제가 갑자기 사회 전체의 어두운 위협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이애미 브리켈 지역의 목회자 크리스토퍼 베넥(Christopher Benek)은 수요 성경공부 모임에서 교인들로부터 AI 관련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예배 인도자가 "이번에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라며, AI 문제가 이제 언론 전반에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디트로이트의 정신건강 상담사 패트리스 루카스(Patrece M. Lucas)는 콕슨이 CNN 앤더슨 쿠퍼와 인터뷰한 영상을 지인 단체 채팅방에 공유했다. 그는 사람들이 AI를 지나치게 신뢰하고 있으며,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영상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AI 공포는 대중문화 영역으로도 번졌다.
방송인 지미 키멀(Jimmy Kimmel)은 심야 토크쇼에서 왜 사람들이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배우 맷 데이먼(Matt Damon), 싱어송라이터 매기 로저스(Maggie Rogers), 가수 셰릴 크로(Sheryl Crow) 등도 AI 위험 논의에 반응했다. 크로는 소셜미디어에서 지도자들이 왜 자녀들의 미래보다 막대한 이익을 선택하느냐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AI 실존 위험을 다룬 위키피디아 페이지 조회수도 급증했다. WSJ에 따르면 해당 페이지 조회수는 10배 이상 늘며 기록을 세웠다. AI 위험론을 오래 주장해온 연구자 네이트 소어스(Nate Soares)는 자신이 공동 집필한 책이 평소 일주일 판매량보다 더 많이 하루 만에 팔렸다고 전했다.
소어스는 "이 메시지는 지금까지 바깥으로 퍼져나가지 못했지만, 이제 처음으로 경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다만 AI가 인류 멸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견해는 AI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소수 의견이다.
WSJ는 이번 주 경고에도 불구하고, AI가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라는 시각은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주변적 견해라고 설명했다. AI가 문명을 파괴할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일부 전문가들조차도 그런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으며, 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앤트로픽과 오픈AI도 각각 AI 안전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으며, 정부 규제 요구가 진정성 있는 것이라고 밝혀왔다. 로이터도 앤트로픽 최고경영자가 AI 기업들이 모델 개발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즉 현재의 논쟁은 AI가 실제로 곧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확정적 판단이 아니라, 빠르게 발전하는 AI 시스템을 인간이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업들도 직원과 고객의 AI 불안을 주시하고 있다.
컨설팅회사 섹션(Section)의 AI 책임자 마이클 도매닉(Michael Domanic)은 미국 기업 임원들이 직원들의 AI 공포가 내부 AI 도입에 어떤 영향을 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 미국 성인의 약 절반이 AI 챗봇을 사용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이는 2024년 약 3분의 1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의료기기 제조업체를 위한 규정 준수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케트릭스(Ketryx)의 에레즈 카민스키(Erez Kaminski) 최고경영자는 이번 주 고객 통화의 약 절반에서 AI 불안이 언급됐다고 말했다. 의료기기 분야에서 AI 오류는 잘못된 약물 주입이나 중앙 데이터베이스 해킹 같은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보안 기업 퀘스트소프트웨어의 라케시 샤(Rakesh Shah) 부사장은 앤트로픽 연구자들의 글과 허깅페이스 해킹 사건이 고객들의 대화를 바꿨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자신들이 해킹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고객들이 이제는 침해를 전제로 대응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샤는 80대 부모가 최근 보안 우려를 물었고, 10대 자녀들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영화 '매트릭스' 같은 세상이 곧 오는 것인지 질문했다고 전했다.
AI 안전 연구자들과 비영리단체들도 이번 논란으로 갑작스러운 관심을 받고 있다.
AI 안전 비영리단체 팰리세이드리서치(Palisade Research)의 제프리 래디시(Jeffrey Ladish) 대표는 이번 주 개인 기부가 여러 건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주로 보조금에 의존해왔기 때문에, 개인 기부가 잇따른 것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기부금 가운데 하나는 4만달러였다.
래디시는 바쁜 상황을 따라가던 중 전 여자친구로부터 "네가 몇 년 동안 말해온 바로 그 내용"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는 AI 안전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경고해온 문제가 이제 대중적 관심사로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반면 기술업계 일부는 이번 AI 공포가 과도하다고 보고 있다.
초기 기술기업 투자자이자 경영 코치인 숀 번스(Sean Byrnes)는 많은 최고경영자들이 AI의 실수와 한계를 가까이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AI가 인류를 위협한다는 공포가 현실감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베이 지역의 한 행사에서 여러 CEO들과 대화했지만, AI가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는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기술업계 일부 인사들은 AI 위험을 강조하는 비영리단체들이 콕슨의 퇴사와 경고를 규제 여론 조성에 활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AI 안전단체와 앤트로픽 등 AI 연구소 직원들 사이의 과거 관계를 근거로 들고 있다.
콕슨은 WSJ에 자신이 비슷한 이유로 AI 회사를 떠난 다른 사람들과 상의한 것은 맞지만, 퇴사 결정은 스스로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경고가 이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주 미국에서 벌어진 AI 공포 확산은 AI 논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AI 위험론은 주로 실리콘밸리, 연구자 커뮤니티, 인터넷 토론장에서 다뤄졌다. 그러나 앤트로픽 연구자의 공개 경고 이후, 이 문제는 의회, 기업 회의, 교회 모임, 가족 식탁, 유명인의 소셜미디어 발언까지 번졌다.
물론 AI가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아직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소수 견해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은 이미 바뀌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AI가 일자리, 감시, 사이버보안, 사회적 신뢰, 나아가 인간의 통제 가능성에 어떤 영향을 줄지 묻고 있다.
AI의 위험을 과장해서도 안 되지만, 빠르게 강해지는 기술에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의존하는 것도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논란은 미국 사회가 AI를 더 이상 단순한 편의 기술이나 성장 산업으로만 보지 않기 시작했다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