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3 11:24 PM
By 전재희
국가부채 40조달러 돌파·GDP 대비 부채 100%...AI 생산성·제조업 회귀 기대에도 지속 성장 가능성은 불확실
미국의 국가부채가 40조달러를 넘고, 일반 국민이 보유한 연방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00%에 도달하면서 재정위기 논쟁이 커지고 있다.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재무장관은 증세나 대규모 지출 삭감보다 강한 경제성장을 통해 부채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베센트 장관은 최근 서던메서디스트대학 연설에서 "3% 성장이면 우리는 성장으로 이 문제를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AI 인프라 투자, 제조업의 미국 회귀, 소비자 감세가 미국 경제를 다시 가속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주장은 정치적으로 매력적이다. 세금을 올리거나 사회보장·메디케어 같은 지출을 줄이는 방식은 유권자 반발이 크지만,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 부채 규모가 커져도 GDP 대비 부담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베센트 장관의 논리는 단순하다. 미국 경제가 부채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면, 부채의 절대액이 늘어나더라도 GDP 대비 부채비율은 안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WSJ는 예측기관들의 분석을 인용해, 베센트 장관의 대략적인 "3% 성장" 계산은 일정한 가정 아래 작동할 수 있다고 전했다. 펜와튼예산모델(Penn Wharton Budget Model)은 향후 10년 동안 평균 3.5~4% 성장률이 유지되면 GDP 대비 부채비율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추정했다.
문제는 그런 성장률을 실제로 달성하고 오래 유지하는 일이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2026년 연방 재정적자가 1조9,000억달러에 달하고, 일반 국민 보유 연방부채가 2036년 GDP의 120%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즉 미국이 지금의 부채 경로를 바꾸려면 단순한 경기 반등이 아니라, 장기간 이어지는 높은 성장률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폭스뉴스에서 미국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40조달러 부채를 성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WSJ는 실제 미국 성장률이 기록적 수준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 동안 미국 경제는 연율 1.9% 성장했다. 4분기 대비 4분기 기준으로 미국 GDP 성장률이 3%를 넘은 마지막 해는 2023년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연간 성장률이 3% 이상을 기록한 해는 다섯 차례에 그쳤다. 지속적인 3% 성장률은 1990년대 이후 사실상 나타나지 않았다.
1990년대 미국은 컴퓨터 보급에 따른 생산성 향상과 베이비붐 세대의 전성기 고용이라는 강한 순풍을 누렸다. 당시에는 재정환경도 지금보다 나았다. GDP 대비 부채비율은 1995년 48%에서 2001년 32%로 떨어졌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생산성 향상은 둔화했고,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하기 시작했다. 고령화로 사회보장과 의료 지출은 늘었고, 감세와 9·11 테러, 금융위기, 팬데믹 대응 지출이 부채를 키웠다.
미국 부채 문제의 핵심은 일시적 경기침체가 아니라 구조적 적자다.
WSJ는 미국이 현재 GDP의 약 6%에 달하는 연간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역사적 기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CBO도 현행 법이 유지될 경우 향후 10년 동안 재정적자가 역사적으로 큰 수준에 머물고, 그 결과 연방부채가 매년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부채비율이 100%나 106%, 120%를 넘는다고 곧바로 위기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달러가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 통화이고, 미국 국채가 여전히 글로벌 안전자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채 이자비용이 계속 커지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들은 부채 이자 부담이 커질수록 연준이 금리를 너무 낮게 유지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고, 이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부채 부담은 경기침체 때 정부가 재정지출로 대응할 여력을 줄일 수 있다.
미국이 1990년대식 고성장을 되풀이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인구 구조다.
경제성장은 크게 노동력 증가와 생산성 향상으로 구성된다. 노동자가 많아지면 경제가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고령화로 노동력 증가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WSJ는 CBO 추정을 인용해 25~64세 인구가 향후 10년 동안 3%, 연평균 약 0.3%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1990년대에는 이 연령대 인구가 연평균 1.1% 증가했다.
따라서 앞으로의 고성장은 노동력 증가보다 생산성 향상에 더 크게 의존해야 한다. 이것이 베센트 장관과 행정부가 AI와 제조업 투자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AI는 미국이 기대하는 가장 유력한 생산성 상승 요인이다.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 AI 반도체 투자, 소프트웨어 자동화, 화이트칼라 업무 효율화가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예일 Budget Lab은 AI 도입이 재정과 경제 전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분석하면서, AI가 복잡한 사무직 업무를 상당 부분 수행할 경우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최근 기준보다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분석은 예측이라기보다 특정 가정이 경제·재정 변수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시뮬레이션이라고 밝혔다.
WSJ에 따르면 CBO의 기본 가정에 연간 0.5%포인트의 생산성 증가를 추가하면 GDP 성장률은 2.4%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는 1990년대식 생산성 개선과 비슷한 효과를 내며, 세율을 올리지 않아도 세수가 증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부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 빠른 성장률은 임금 상승을 통해 사회보장 급여 부담을 키울 수 있고, 투자 수요 증가로 금리가 오르면 정부의 이자비용도 함께 늘어난다. WSJ는 CBO의 분석 도구를 기준으로, 추가 세수의 3분의 1 이상이 높아진 이자비용으로 소모될 수 있다고 전했다.
성장이 부채 문제를 완화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WSJ는 1990년대식 생산성 향상이 나타나도 10년 뒤 GDP 대비 부채비율은 기본 시나리오의 120%보다 낮은 109% 수준이 되지만, 여전히 상승세는 멈추지 않는다고 전했다.
예일 Budget Lab도 빠른 AI 도입 시나리오에서 성장률이 2%를 넘고 재정적자가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지만, 2035년까지 GDP 대비 부채비율은 여전히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WSJ는 전했다.
더구나 AI 생산성의 결실이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에 더 많이 돌아갈 경우, 정부 세수 증대 효과는 제한될 수 있다. 미국 세제에서는 자본소득이 노동소득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AI가 대규모 노동 대체를 일으킬 경우 실업 증가와 정부 지출 확대라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하버드대 더글러스 엘멘도프 교수는 WSJ에 AI로 인한 생산성 성장이 빠를수록, 정부 대응이 필요한 경제·사회적 혼란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재정 전문가들은 성장만으로 미국의 장기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
스탠퍼드대 조슈아 라우 교수는 향후 10년과 30년, 장기 재정적자를 주도하는 항목이 사회보장과 메디케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장만으로는 이런 entitlement, 즉 법정복지 지출 개혁 없이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보장과 메디케어 급여 삭감을 배제해왔다. 공화당은 지난해 세법에서 메디케이드와 영양지원 지출을 줄였지만, 동시에 감세도 추진해 전체 부채 경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WSJ는 분석했다.
세입 측면에서도 논란은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인상을 통해 세수를 늘리려 했지만, 연방대법원은 많은 관세 조치가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장비 구매와 공장 건설에 대한 빠른 비용처리 같은 일부 감세는 투자를 촉진할 수 있지만, 노동자 대상 감세는 장기 성장 효과가 더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베센트 장관은 AI 투자, 제조업 회귀, 감세, 규제완화가 미국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란 전쟁이 에너지 흐름을 흔들기 전에는 미국 경제가 이미 3% 성장 경로로 가고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많은 경제학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갈등, 이란 전쟁, 정책 불확실성이 오히려 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고유가와 높은 국채금리, 관세 갈등, 재정적자 확대가 동시에 나타나면 기업 투자와 소비를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베센트 장관의 주장은 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높은 조건을 필요로 한다. 미국은 3% 안팎의 실질성장을 장기간 유지해야 하고, 경기침체를 피해야 하며, AI 생산성 향상이 실제 경제 전반으로 확산돼야 한다. 동시에 금리 상승과 복지지출 확대가 성장의 재정효과를 갉아먹지 않아야 한다.
베센트 장관의 "성장으로 부채 위기 탈출"론은 미국 재정 논쟁에서 가장 낙관적인 해법이다. 경제가 빠르게 커지면 부채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세율 인상 없이도 세수가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부채 문제는 단순한 경기순환 문제가 아니다. 고령화, 사회보장·메디케어 지출 증가, 반복된 감세, 높은 이자비용, 구조적 적자가 겹친 장기 문제다.
AI가 생산성을 끌어올릴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AI 성장이 부채비율을 낮추려면 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세수 증가로 연결되며, 금리와 사회적 비용 상승을 상쇄해야 한다. 현재 분석들은 AI가 재정 부담을 완화할 수는 있어도, 성장만으로 부채 증가세를 완전히 멈추기는 어렵다는 쪽에 가깝다.
따라서 미국이 부채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성장만으로는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 강한 성장에 더해 세입과 지출 구조를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한 정치적 결단이 함께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