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4 09:57 AM
By 이재경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Paramount Skydance)가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의 반독점 소송에 맞서 본사를 테네시나 텍사스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LA타임스는 14일(월) 보도했다. '선셋 대로', '대부', '베벌리힐스 캅' 등 할리우드 고전 영화의 산실인 파라마운트 스튜디오가 실제로 로스앤젤레스를 떠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지역 경제와 일자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파라마운트는 지난 7월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arner Bros. Discovery) 인수를 둘러싼 로버트 본타(Rob Bonta)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의 소송을 막기 위해 본사 이전 가능성을 처음 흘렸다. 그러나 본타 장관은 이를 "협박(blackmail)"이라고 규정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민주당 소속 다른 11개 주 법무장관들과 공동으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고, 이 소송은 최근 수십 년래 최대 규모인 1110억 달러짜리 할리우드 합병을 멈춰 세운 채 데이비드 엘리슨(David Ellison)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 최고경영자(CEO)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기술 재벌가 출신으로 20년간 할리우드에서 경력을 쌓아온 영화 애호가인 43세의 엘리슨 CEO는 주변인들에게 LA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는 다음 달까지 합병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역사적인 스튜디오 부지를 매각하고 파라마운트와 워너브러더스의 사업 운영을 캘리포니아 밖으로 옮길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파라마운트 측은 이와 관련한 언급을 거부했다.
멜로즈 애비뉴 스튜디오 부지와 버뱅크 워너브러더스 인근 지역을 관할하는 릭 차베스 즈부르(Rick Chavez Zbur)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은 파라마운트의 이전 가능성에 대해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라며 "캘리포니아의 상징적인 산업에서 이 중요한 일자리들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영화 제작 급감과 대규모 실직, 텅 빈 사운드스테이지, 잇따른 소규모 업체 폐업으로 이미 흔들리고 있는 LA 지역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 세계 65개국 규제 승인에도 캘리포니아가 '걸림돌'
엘리슨 CEO는 HBO, CNN, CBS, 코미디센트럴, MTV, TBS 등을 한 지붕 아래 두게 될 이번 거대 합병에 대해 전 세계 65개 이상의 규제 당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낸 상태다. 그럼에도 본타 장관의 소송이 마지막 걸림돌로 남아 있어 그의 좌절감이 크다는 게 매체의 설명이다.
본타 장관실 대변인은 "캘리포니아는 세계 4위 규모의 경제 대국이자 사업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며 "모두가 활력 있는 경제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반독점 법 집행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오클랜드 연방법원 판사는 이 거래를 일시 중단시켰고, 이에 따라 파라마운트는 재판이 끝나거나 내년 6월 1일 중 먼저 도래하는 시점까지 인수를 마무리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지난 8월 말에는 본타 장관 측이 파라마운트가 협상 내용을 유출하고 왜곡했다고 비판하면서 합의 협상이 결렬됐다.
아라셀리 마르티네스-올긴(Araceli Martínez-Olguín) 연방판사는 재판 일정을 내년 3월로 잡았다. 하지만 파라마운트로서는 거대 기술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 워너의 귀중한 자산이 시급히 필요한 상황이다. 게다가 10월 1일부터는 이른바 '티킹 피(ticking fees)'라 불리는 일일 지급액이 하루 700만 달러씩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주주들에게 추가로 돌아가야 해, 이미 과도하게 부채를 진 이번 거래에 빚이 계속 쌓이게 된다.
파라마운트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네바다, 오리건, 뉴욕 등 소송을 제기한 주(州)들과 역시 소송을 낸 미국작가조합(WGA)이 티킹 피 비용을 보전할 수 있도록 18억8000만 달러 규모의 보증금을 예치하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와 관련한 심리는 9월 24일로 예정돼 있다.
■ "게임 오브 치킨"…정치권도 중재 나서
수 주간 파라마운트가 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다름 아닌 LA 이탈 계획이었다고 매체는 짚었다. 로비전도 격화하면서 개빈 뉴섬(Gavin Newsom) 캘리포니아 주지사, 캐런 배스(Karen Bass) LA 시장, 주지사 후보인 사비에르 베세라(Xavier Becerra)까지 나서 양측에 합의를 촉구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멜신 어드바이저리(Melcene Advisory)의 경제학자이자 매니징 디렉터인 케빈 클로든(Kevin Klowden)은 "일종의 '치킨 게임'"이라면서도 "위협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매우 현실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LA를 떠나면 현금이 급한 파라마운트로서는 다른 주가 제공하는 매력적인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엘리슨 CEO가 검토 중인 후보지로는 테네시, 텍사스, 조지아가 꼽힌다. 다만 오랜 터전을 떠나는 데도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 여전히 많은 인재와 거래 관계가 LA 인근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테네시주 경제커뮤니티개발국은 파라마운트와의 협상 내용에 대해 언급을 거부했지만, 성명을 통해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테네시에 투자하고 성장할 기회를 모색하는 기업들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 찬반 진영 팽팽…"할리우드의 심장을 지켜야"
이달 초 합병 지지 단체가 파라마운트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려 했으나, 반대 활동가들이 맞불 시위를 계획하자 몇 블록 떨어진 창고로 장소를 옮겼다. 올해 6월 워싱턴DC에서 설립된 이 단체 '네이버스 포 스트롱 커뮤니티스(Neighbors for Strong Communities)'는 캘리포니아 주민들에게 본타 장관에게 소송 철회를 요구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로비를 벌이고 있다.
이날 발언자들의 관심사는 단 하나, 파라마운트가 정말 떠난다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었다. 약 10년 전 멕시코에서 LA로 건너와 스페인어권 드라마로 경력을 시작한 케일라 우드(Keyla Wood)는 "삶과 여러 세대를 바쳐 무언가를 일궈온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에바 롱고리아와 셀마 헤이엑의 스탠드인으로 일해온 우드는 "팬데믹, 파업, 그리고 화재까지 계속 겹쳤다. 너무 많은 사람이 다시는 일하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브라질에서 20년 전 건너온 배우이자 댄서 다니엘라 켈리(Daniela Kelly)는 LA의 정체성 자체가 위태롭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 모든 사람이 LA와 할리우드를 자신의 꿈을 이룰 무대로 본다"며 "100년 역사를 지닌 거대 스튜디오가 그냥 떠난다면 우리는 무엇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마리나 델 레이에서 영상·팟캐스트 공간을 제공하는 소규모 업체 '크레이션 스튜디오 USA(Kreashen Studios USA)'를 운영하는 켈리는 "지금 재정적으로 문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그래서 나는 파라마운트가 남기를 지지한다. 이곳이 할리우드의 중심이자 심장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합병 자체가 LA 제작 위축 악화시킬 수도"
그러나 합병에 반대하는 이들과 일부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번 합병이 이미 침체된 LA 제작 환경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파라마운트는 60억 달러 규모의 비용 절감을 예고했는데, 이는 티킹 피로 인해 워너 주주들에게 지급하기로 예상했던 810억 달러에 매 분기 6억5000만 달러가 추가되는 비용은 반영하지 않은 수치다.
에이드린 나자리안(Adrin Nazarian) LA 시의원은 최근 시청 행사에서 "과거 합병 사례들을 보면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LA카운티 경제기회국이 지난 8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파라마운트와 워너의 합병으로 3년 안에 약 4500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스튜디오를 지원하는 관련 업체에서도 5865개 일자리가 추가로 위태로워질 수 있다. 켈리 로비앙코(Kelly LoBianco) 해당 부서 국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경제적 영향을 살펴보면 상당히 충격적"이라며 "약 40억 달러의 경제적 산출 손실과 지방·주·연방 차원에서 5억5000만 달러의 세수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는 파라마운트가 LA에 남더라도 이번 합병으로 LA카운티는 7900만 달러의 세수를 잃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클로든 이코노미스트는 파라마운트가 수백 명의 직원을 테네시 등 다른 주로 보낼 경우 주와 카운티의 세수는 더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엘리슨이 경영진과 제작 부문 전체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면 수만 개의 일자리가 걸린 문제가 된다"며 "그것은 단순히 LA에만 치명적인 게 아니라 모두에게 치명적인 일이 된다"고 말했다.
파라마운트가 의뢰해 LA경제개발공사(Los Angeles Economic Development Corp.)가 작성한 보고서(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전달된 초안 기준)는, 스튜디오가 사업 전체를 주 밖으로 옮길 경우 최소 2만8000개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더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다만 그보다 온건한 시나리오로는, 파라마운트가 세제 혜택을 위해 법인 본사만 다른 주로 옮기면서도 LA와 뉴욕(법률상 본사가 있는 곳)에 창작 인력 대부분을 유지하는 방안도 있다.
■ 엘리슨 일가의 '탈캘리포니아' 데자뷔
작년 엘리슨 일가가 섬너 레드스톤(Sumner Redstone) 가문으로부터 파라마운트를 인수했을 때, 엘리슨 CEO는 사업 운영을 LA로 옮기고 자신과 핵심 경영진이 멜로즈 애비뉴 부지에서 근무하도록 했다. 그런 만큼 이번 이전 위협은, 그가 1년 넘게 자신 가문의 확장되는 미디어 자산이 전통적인 할리우드를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해온 것과는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이전 압박 전술은 엘리슨 CEO의 아버지인 억만장자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이 공동 창업한 소프트웨어 대기업 오라클(Oracle Corp.)의 전례와도 닮아 있다. 오라클은 30년간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시티에서 성장했지만, 2020년 캘리포니아의 높은 세금에 항의하며 캘리포니아를 떠나는 다른 기술기업들과 함께 텍사스 오스틴으로 본사를 옮겼다. 래리 엘리슨은 2024년 오라클이 다시 테네시주 내슈빌로 이전한다고 발표했으나, 이 이전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클로든 이코노미스트는 파라마운트가 LA를 떠날 경우 숙련된 제작 인력과 엔터테인먼트 경영진 풀을 남겨두게 되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LA를 떠나는 것이 "인재 유출"을 촉발할 수 있다며 "창작자들은 '내가 그곳으로 옮겨서 편안할까', '거기로 갔다가 일이 잘못되면 다른 갈 곳이 없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 닛산이 LA 사우스베이의 가데나에서 내슈빌 인근으로 미국 본사를 옮겼던 사례를 들며, 당시 남캘리포니아 직원 중 절반도 안 되는 인원만 테네시로 이주해 회사 인력 구성이 크게 재편됐다고 설명했다.
■ 10월 말 합의 협상 재개…"양측 모두 합의 동기 있어"
지난 12일(현지시간) 치안판사는 양측에 10월 말 중 법원이 명령한 합의 협상을 위한 날짜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양측 모두 수년에 걸친 법정 다툼을 피하려는 등 합의에 나설 동기가 있다는 게 매체의 분석이다. 본타 장관은 시장 집중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파라마운트가 일부 자산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밝혀왔다. 이는 '반지의 제왕'과 '컨저링' 시리즈 판권을 보유한 워너의 뉴라인 시네마 매각, 나아가 CNN, 푸드네트워크, 카툰네트워크 등 케이블 채널 매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파라마운트로서는 합의의 일환으로 LA를 떠나려던 계획을 접을 수도 있다. 즈부르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은 "모든 당사자가 이 문제가 노동자들과 소규모 업체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해야 한다"며 "파라마운트와 워너브러더스가 사업 운영을 유지하고 LA에서 여전히 중요한 경제·고용 축으로 남을 수 있는 합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