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5 07:51 AM
By 전재희
연기금 이탈한 자리 헤지펀드가 메워...2조달러 보유·고레버리지 거래 확대로 변동성 우려
이란 전쟁과 인플레이션, 급증하는 미국 국가부채 우려로 미 국채시장이 흔들리는 가운데, 헤지펀드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미국 정부는 연기금이나 보험사처럼 장기간 국채를 보유하는 안정적인 투자자들에게 상당 부분 의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연기금과 장기 투자자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사모대출, 부동산, 인프라 등으로 자금을 옮기면서 국채시장에서 이들의 비중이 줄고 있다.
그 빈자리를 빠르게 채우고 있는 것이 헤지펀드다.
미 재무부 산하 금융연구국(OFR)에 따르면 헤지펀드의 현물 미 국채 보유액은 2025년 말 약 2조달러에 달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세 배로 늘어난 규모다. 전체 시장성 미 국채 가운데 헤지펀드가 차지하는 비중도 사상 최고인 약 7%에 이르렀다.
헤지펀드는 전통적인 연기금과 투자 방식이 크게 다르다.
연기금이 만기까지 국채를 보유하는 장기 투자자인 데 비해, 헤지펀드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가격 차이를 이용해 수익을 추구한다. 여기에 차입을 이용한 레버리지까지 적극 활용한다.
특히 최근 헤지펀드의 국채 보유 증가에는 이른바 '베이시스 트레이드(basis trade)'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베이시스 트레이드는 현물 국채를 매수하면서 동시에 같은 만기의 국채 선물을 매도해 두 가격 사이의 작은 차이에서 이익을 얻는 전략이다.
문제는 가격 차이가 매우 작기 때문에 의미 있는 수익을 내려면 상당한 레버리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OFR는 헤지펀드들이 레포(repo) 시장에서 돈을 빌려 현물 국채를 매입하고, 선물시장에서는 증거금만을 이용해 대규모 포지션을 구축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는 평상시에는 시장 유동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 금융시장이 흔들릴 경우 빠른 포지션 청산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헤지펀드의 영향력이 커지자 뉴욕 연방준비은행도 상황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WSJ에 따르면 뉴욕 연은 시장 담당 직원들은 최근 투자자와 트레이더들에게 헤지펀드의 국채시장 역할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질문하고 있다. 특히 '상대가치(relative value)' 전략과 레버리지 거래가 국채시장의 변동성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가 주요 관심사다.
뉴욕 연은의 관심이 커지는 이유는 미 국채시장의 규모와 중요성 때문이다.
현재 미 국채시장에서는 하루 약 1조2,000억달러의 증권이 거래된다. 이 시장은 단순히 미국 정부의 자금 조달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사실상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미국 국채금리가 흔들리면 주택담보대출, 기업대출, 자동차대출, 주식시장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이미 국채시장은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다.
WSJ에 따르면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최근 장중 5%를 넘어섰다. 이는 주식시장과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30년물 국채금리도 약 19년 만의 최고 수준 부근에서 움직이고 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장기 국채 수십억달러를 추가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장 안정에 나섰지만, 전체 국채시장 금리를 진정시키는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국채금리가 상승하면 미국 정부가 새 부채를 발행하거나 기존 부채를 차환할 때 부담하는 이자비용도 늘어난다.
국채 수요 구조 자체도 변하고 있다.
WSJ가 인용한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자료에 따르면 미국 연기금은 과거 전체 자산의 약 40%를 채권에 투자했지만, 최근에는 그 비중이 10~15% 수준까지 낮아졌다.
유럽 주요 선진국의 연기금도 세기 초 약 35%였던 채권 비중을 현재 약 20%로 줄였다.
이유는 수익률이다.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시대를 거치면서 국채만으로 연금 지급에 필요한 목표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연기금들은 사모대출, 부동산, 인프라, 사모펀드 등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자산으로 투자를 확대했다.
퇴직연금 자문회사 캘런(Callan)의 데이비드 지(David Zee)는 "환경이 달라졌다"며 과거라면 정부채권으로 갔을 추가 자금이 이제 다른 투자기회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누가 미국 국채를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기금은 금리가 조금 움직이더라도 장기간 채권을 보유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헤지펀드는 가격과 수익률 변화에 훨씬 민감하다.
국채금리가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으면 매수를 줄이거나 다른 거래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시장 충격이 발생할 경우 차입금 상환이나 증거금 요구 때문에 국채를 급하게 매도할 수도 있다.
즉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예전보다 국채 투자자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정부채권 전문 헤지펀드 바네갓펀드(Barnegat Fund)의 밥 트루(Bob Treue)는 중국과 일본의 미 국채 보유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국채 발행 비용 상승을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 연은이 특히 주시하는 곳 가운데 하나는 밀레니엄(Millennium), 포인트72(Point72), 시타델(Citadel) 같은 대형 멀티매니저 헤지펀드다.
이들 회사는 여러 독립 트레이딩 팀을 두고 국채, 금리, 통화 등 다양한 시장에서 동시에 거래한다.
이 과정에서 레버리지를 활용해 비교적 작은 가격 차이를 대규모 수익으로 확대한다.
시장 상황이 안정적일 때는 이런 거래가 가격 차이를 줄이고 거래량을 늘리며 시장 효율성을 높인다. 그러나 여러 펀드가 비슷한 전략을 동시에 사용하다가 시장 충격이 발생하면 같은 방향으로 한꺼번에 포지션을 정리할 위험이 있다.
OFR 역시 베이시스 트레이드의 핵심 위험으로 레버리지를 꼽고 있다.
헤지펀드들은 국채를 담보로 단기자금을 빌리는 레포 시장을 활용한다. 특히 비용이 낮은 하루짜리 오버나이트 레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장 불안으로 레포 금리가 갑자기 오르거나 국채 선물의 증거금 요구가 높아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펀드는 추가 현금을 마련하거나 포지션을 줄여야 한다. 여러 펀드가 동시에 같은 행동을 하면 국채 매도가 급증하면서 채권가격이 떨어지고 금리는 더 오를 수 있다.
OFR는 고레버리지 베이시스 트레이드가 무질서하게 청산될 경우 현물 국채와 선물시장 모두에서 변동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헤지펀드의 국채시장 참여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헤지펀드는 국채시장에 상당한 유동성을 제공한다. 매수자와 매도자가 쉽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하고, 현물 국채와 선물 사이의 가격 차이를 줄여 시장 효율성을 높인다.
PGIM 글로벌채권 책임자인 로버트 팁(Robert Tipp)은 "헤지펀드들이 유용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헤지펀드의 수요가 정부채권 입찰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ECB는 동시에 위기 상황에서는 단기 투자자인 헤지펀드가 시장 스트레스를 증폭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채권 시장에서 헤지펀드 영향력이 커지는 현상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WSJ에 따르면 ECB는 2024년 유럽 채권시장 거래량의 절반 이상을 헤지펀드가 차지한 것으로 분석했다. 2018년 약 25%에서 크게 증가한 수준이다.
일본에서는 헤지펀드를 포함한 해외 투자자들이 일본 국채 전체 보유량의 약 10%만 갖고 있지만, 하루 현물 거래의 약 60%, 국채 선물 거래의 약 90%를 차지한다고 일본은행은 분석했다.
즉 채권을 실제로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보다 거래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헤지펀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따로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미국 정부가 너무 많은 국채를 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 재정적자는 이번 회계연도 GDP의 약 6%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규모 적자를 충당하려면 정부는 계속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 연기금 같은 전통적인 장기 투자자들이 국채 비중을 낮추면 새로운 투자자를 끌어오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알리안츠 글로벌 인베스터스의 란지브 만(Ranjiv Mann)은 "시장의 가장 큰 질문은 재정정책"이라며 미국의 재정기조가 지나치게 느슨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 국채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핵심은 단순한 금리 상승이 아니다.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의 주요 구매자 구성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연기금과 보험사, 해외 중앙은행 같은 장기 투자자가 미국 국채를 안정적으로 보유했다. 지금은 이들 가운데 일부가 비중을 줄이고 있고, 그 빈자리를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헤지펀드가 빠르게 채우고 있다.
헤지펀드는 국채시장에 필요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들이 가격 변화에 민감하고 높은 레버리지를 사용하는 만큼, 위기 상황에서는 오히려 시장 변동성을 증폭시킬 가능성도 있다.
특히 10년물 국채금리가 5%에 접근하고 미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적자로 국채 발행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이 변화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결국 앞으로 미국 국채시장의 핵심 질문은 단순히 "미국 정부가 얼마나 많은 국채를 발행하느냐"뿐 아니라 "그 국채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사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