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9 08:37 AM

냉전시대 '국방물자생산법', 12월 시효 만료 앞두고 AI 통제 수단으로 재조명

By 이재경

냉전시대에 제정된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DPA)이 인공지능(AI)이 국가안보 위협으로 비화할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통제 수단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폭스뉴스가 18일() 보도했다. 이 법은 오는 12월 11일 시효 만료를 앞두고 있어, 향후 재승인을 둘러싼 논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DPA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국 산업을 총동원하기 위해 제정된 법으로, 그동안 군수 생산 확대와 정부 계약 우선순위 지정, 국가 비상사태 대응 등에 활용돼왔다. 전문가들은 프런티어 AI 기업의 시스템이 파국적 수준의 국가안보 위험을 초래할 경우, 이 법의 권한이 행정부에 상당한 지렛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DPA의 권한이 실제로 위험한 AI 시스템에 어떻게 적용될지는 아직 검증된 바 없다. 다만 폭스뉴스 디지털과 인터뷰한 국가안보·법률 전문가들은 사이버 공격, 수출 통제, 연방 계약, 민사 책임 등을 포괄하는 기존 법 조항들이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제임스 루이스(James Lewis) 전략기술프로그램 국장은 "권한이 좀 더 명확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 있는 법적 권한들을 조합하면 어느 정도 해법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논의는 최근 미국의 주요 AI 기업 수장들이 갈수록 성능이 강력해지는 모델에 대해 잇따라 경고를 내놓고, 안전장치 마련을 위해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실으면서 새삼 시급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업계 지도자들의 추가 안전장치 요구에 반박하며 행정부가 이미 AI 기업들에 대해 "막강한 형사·규제 권한"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발언이 나올 수 있는 배경에는 의회가 지난 9월 30일 만료 예정이었던 DPA의 대부분 권한을 2026년 12월 11일까지 연장했다는 사실이 있다. 이는 올해 말 또 한 차례의 재승인 공방을 예고하는 것으로, 특히 11월 중간선거 이후 의회 권력 구도가 바뀌기 직전에 이뤄질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루이스 국장은 사이버 위협의 양상이 이미 크게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과거 몇 달이 걸리던 취약점 발견 작업이 이제는 며칠, 심지어 몇 시간 만에 가능해졌고, AI가 여러 작은 취약점들을 연결해 더 파괴적인 공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파이브아이즈(Five Eyes) 정보동맹 소속 한 고위 관료와 나눈 대화를 소개하며 "위협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를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AI가 "판도를 극적으로 바꿔놓았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AI의 위험한 능력이 언제 발현되는지를 식별하기 위한 체계 구축에 착수한 상태다. 지난 6월 발표된 행정명령은 국가안보국(NSA)과 사이버보안·인프라보안국(CISA) 등 연방기관들에 첨단 사이버 역량에 대한 기밀 등급 벤치마크를 마련하고, 어떤 AI 시스템을 '적용대상 프런티어 모델(covered frontier model)'로 지정할지 결정하도록 지시했다.

이 행정명령은 또한 개발사들이 모델 출시 전 정부에 조기 접근권을 제공할 수 있는 자발적 프레임워크 마련을 요구하면서도, 프런티어 AI에 대한 의무적 연방 인허가나 사전 승인 제도는 명시적으로 배제했다.

문제는 위험한 능력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데 있다. 다음 과제는 워싱턴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

DPA가 강력하게 활용될 수 있는 지점 중 하나는 AI 시스템이 실제 피해를 일으키기 전 단계, 즉 기업들에게 무엇을 개발하고 있는지 정부에 보고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미 군사항소법원(U.S. Court of Appeals for the Armed Forces) 수석판사를 지냈고 국가안보회의(NSC) 법률고문으로도 일했던 제임스 E. 베이커(James E. Baker)는 DPA가 지닌 광범위한 정보 수집 권한에 주목했다.

베이커 전 판사는 "DPA를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보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며, 이것이 건전한 정책을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규제를 해야 하는지, 한다면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것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다"며 "먼저 상황을 파악한 뒤에 정책적 처방이든 법적 처방이든, 아니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든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DPA의 한계 역시 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안보부(DHS) 정책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변호사 폴 로젠츠바이크(Paul Rosenzweig)는 이 법이 본래 국방에 필요한 물자와 서비스를 정부가 확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계됐을 뿐, 민간 기업의 생산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워싱턴에 부여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로젠츠바이크는 "국방물자생산법은 민간 대상 생산을 막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미국을 위해 물자 생산을 강제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법이 특히 유용할 수 있는 지점은 정부의 정보 접근권 확보라는 데 동의하며 "이 법의 가장 좋은 점은, 국방과 밀접히 연관된 제품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상당히 확실한 수단을 정부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프런티어 AI 역시 합리적으로 그런 제품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DPA가 워싱턴으로 하여금 AI 기업들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파악하도록 돕는다면, 위협의 성격에 따라 다른 기존 권한들도 함께 작동할 수 있다. 수출 통제는 민감한 기술이 적대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정부 조달 규정은 연방 사업을 원하는 기업들에 조건을 부과할 수 있으며, 형사법은 AI가 범죄에 악용될 경우 여전히 적용된다.

실제로 지난 6월 행정명령은 법무장관에게 AI를 이용해 컴퓨터 시스템에 불법 접근하거나 손상을 가하는 이들에 대한 기존 연방 형사법 집행을 우선시하도록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별도로 국가안보 기관들에 프런티어 AI 활용을 확대하도록 지시하면서도, 군과 정보당국이 사용하는 시스템은 통제 가능성을 유지하고 명확한 인간 책임 소재를 보존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로젠츠바이크는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법률에서 AI가 광범위하게 예외를 인정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모두 불법행위 책임, 프라이버시 규정, 소비자보호법, 형사법 등 프런티어 AI에 잠재적으로 적용 가능한 "다양한 법적 권한"을 이미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이런 여러 법 조항들의 조합이 실제 AI 비상사태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할지는 한 번도 검증된 적이 없어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경고했다.

특히 AI 시스템이 스스로 피해를 일으킨 경우 불확실성은 더 커진다. 만약 어떤 모델이 자율적으로 병원이나 기업, 핵심 기반시설 네트워크를 해킹했다면, 법원은 개발사에 과실이 있었는지, 더 엄격한 제조물책임 기준이 적용돼야 하는지, 그리고 그 피해가 특정 AI 시스템으로 신뢰성 있게 추적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로젠츠바이크는 설명했다.

그는 "초기 단계에서는 책임 소재를 입증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지금 시점에서 그것을 억지력 모델의 근거로 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불확실성은 결국 정부가 보유한 기존 수단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미 성문화된 법률들은 연방 및 주 당국에 위험한 AI 사용에 대응할 여러 경로를 제공하지만, 그 상당수는 갈수록 자율성이 커지는 시스템을 상대로 한 번도 시험된 적이 없다. 로젠츠바이크는 결국 지금으로서는 정책 입안자들이 법 체계보다 더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에 다른 위협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법률을 적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