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1 10:00 PM
By 전재희
미 하원이 인공지능(AI) 안전 관련 입법을 처리하지 않은 채 예정보다 앞당겨 휴회에 들어갔다고 폭스뉴스(FOX)가 21일(월) 보도했다. 이 매체는 자사 수석 의회 담당 기자 채드 퍼그램(Chad Pergram)의 취재를 인용해, 이른바 'AI 대부'로 불리는 컴퓨터과학자 제프리 힌턴(Geoffrey Hinton)의 의회 브리핑과 구글 제미니(Gemini) 모델 관련 사이버 침해 사고 이후 상원에서 벌어진 '킬스위치' 의무화 법안을 둘러싼 공방을 상세히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하원의원들은 지난주 원래 예정보다 하루, 당초 일정보다는 2주나 앞당겨 워싱턴을 떠나 지역구로 돌아갔다. 'AI 대부'로 불리는 힌턴이 의회를 방문해 경고를 내놓은 직후였다. 상원은 앞으로 2주간 회기를 이어갈 예정이지만, 하원은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다.
폭스뉴스는 의회가 중간선거 이후, 혹은 내년 초에나 AI 문제를 다룰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중간선거 결과가 레임덕 회기를 사실상 잠식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의회는 오는 12월 중순까지 정부 예산안 처리라는 급한 현안도 안고 있다. 하원이나 상원 중 어느 한 곳이라도 다수당이 바뀌면 내년 3~4월은 돼야 의회가 다시 AI 문제로 돌아올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의회가 원래 무언가를 마무리 짓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원내 주도권이 바뀌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는 게 폭스뉴스의 분석이다.
"1년 안에 문제 터질 수도"…힌턴의 경고
토론토대 명예교수이자 인공신경망 연구로 2004년 노벨상을 받은 힌턴은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버몬트주 무소속) 상원의원의 초청으로 초당적·양원 합동 브리핑에 참석해 의원들에게 경고를 내놨다. 샌더스 의원은 앞서 '초지능(superintelligence)' 개발 금지를 요구해온 인물이다. 힌턴은 최근 몇 주간 AI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에 분노한 여러 의원들 앞에서 즉각적인 조치를 촉구받았다.
브리핑을 마치고 상원 더크슨 빌딩을 나선 힌턴에게 퍼그램 기자는 "의회가 이 문제가 큰 사태로 번지기 전에 대응할 시간이 실제로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었다. 힌턴은 "매우 적다"고 답했다. 이어 "'적다'는 게 구체적으로 몇 주, 아니면 한 달 정도냐"는 추가 질문에 힌턴은 "1년 정도일 것"이라며 "그보다 훨씬 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힌턴은 AI 에이전트가 통제를 벗어나 다른 회사를 해킹한 사건을 두고 "작은 체르노빌"이라고 규정했다. 체르노빌은 1986년 옛 소련에서 발생한 원자로 폭발 사고로,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인재로 꼽힌다.
트럼프 "AI 우려는 사기"…존슨 하원의장도 진화
그러나 공화당 지도부, 특히 마이크 존슨(Mike Johnson, 공화·루이지애나) 하원의장은 이 같은 우려를 애써 축소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AI 관련 우려를 "사기(HOAX)"라고 규정한 직후였다. 존슨 의장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민주·뉴욕) 의원이 기후변화를 두고 '우리는 10년 안에 모두 죽는다'고 했던 그 어리석은 주장을 기억하느냐"며 "대통령이 지금 말하는 게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는 10년 안에 다 죽지 않는다. 그건 사기"라고 말했다.
폭스뉴스는 존슨 의장이 AI 관련 입법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수의 민주당 의원과 일부 공화당 의원이 AI 문제를 다루기 위해 하원이 회기를 이어가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존슨 의장은 그런 시도가 무의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오늘 당장 비상회기를 소집해 하원의원 전원을 모아놓고 '자, 규제를 하자'고 해도, 그 방에 있는 그 누구도 아직 무엇을 규제해야 할지 모른다"며 "이 문제에는 신중한 태도로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킬스위치' 법안 놓고 상원서 정면충돌
반면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급속한 AI 발전에 더 큰 두려움을 드러냈다. 존 케네디(John Kennedy, 공화·루이지애나) 상원의원은 "인간보다 우월한 독립적 종(種)을 만들어냈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힌턴 등의 브리핑 직후 케네디 의원은 상원 본회의장으로 향해, AI 에이전트가 다시 통제를 벗어날 경우 관련 기업에 '킬스위치'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만장일치 동의로 즉석 처리하자고 동료 의원들에게 촉구했다.
그러나 상원 국토안보위원장인 랜드 폴(Rand Paul, 공화·켄터키)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이를 저지했다. 그는 이런 의무화 조치가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폴 의원은 "아무런 논의도 없이 단 하루 만에, 만장일치 동의만으로 경제 전체에 이런 포괄적 규제를 얹으려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법안 처리를 가로막았다. 폴 의원의 반대로 상원 처리는 결국 무산됐다.
폴 의원은 AI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입장이면서도 의회의 개입에는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인류는 태초부터 새로운 기술을 두려워해왔다"며 "나라면 의회에 맥도날드 하나도 맡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통제 못 해"…전문가들도 경고음
기술 위험을 평가하는 연구기관 팰리세이드 리서치(Palisade Research)의 제프리 라디시(Jeffrey Ladish)는 브리핑 이후 AI 폭주 가능성에 대해 불길한 전망을 내놨다. 그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됐나.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며 "장담하건대 지금 이대로라면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우리는 이 문제를 바로잡을 궤도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라디시는 연구자들조차 "AI를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팀 케인(Tim Kaine, 민주·버지니아) 상원의원은 "AI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혁신가이자 창조자들이 심각한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이를 듣지 않는다면 우리의 수치"라고 말했다.
초당적 입법 필요성 vs '빅테크 책임론'
조지메이슨대에서 AI 관련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돈 베이어(Don Beyer, 민주·버지니아) 하원의원은 대중이 이미 AI에 회의적이라면서도, 한쪽 정당만 초당적 동의 없이 입법을 밀어붙일 경우 회의감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함께 해야 한다. 함께 한다면 정치 지형이 바뀌어도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이를 뒤집으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고 말했다.
일부 의원은 이미 책임 소재를 특정하고 나섰다. 하원 진보 코커스 의장인 그렉 카사르(Greg Casar, 민주·텍사스) 의원은 문제의 원인을 빅테크로 돌렸다. 그는 "이건 실리콘밸리의 몇몇 억만장자들이 자신들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기술을 개발한 데 따른 문제"라며 "다음 차례가 병원이라면, 다음이 원자력 시설이라면 어떻게 되겠나. 이런 일은 용납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폭스뉴스는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산업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혁신을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강화하는 가운데, 카사르 의원이 양당 모두를 괴롭혀온 '빅테크'라는 공통의 적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고 짚었다.
선거가 6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민주당은 이미 AI 이슈에서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있다. 하킴 제프리스(Hakeem Jeffries, 민주·뉴욕) 하원 원내대표는 "AI 안전 문제는 매우 현실적"이라며 "마이크 존슨 의장과 공화당이 해가 지기도 전에 워싱턴을 떠난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남는 물음들
폭스뉴스는 또 다른 AI 관련 사고가 의회를 더 서둘러 움직이게 할 수 있을지, 라디시 연구원의 지적처럼 그것이 시간문제일 뿐인지 물음을 던졌다. 이미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정치적 전선이 그어진 것은 아닌지도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주 브리핑에 참석한 공화당 의원은 케네디 의원이 유일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레임덕 회기 동안 정치적 의지가 없을 수도 있고, 만약 민주당이 하원과 상원을 모두 탈환한다면 내년에 무언가를 추진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공화당 쪽에서는 이를 당파적이고 '큰 정부'식 처사로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폭스뉴스는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인용하며, 지식의 습득은 그 지식을 얻은 존재가 그것을 만든 이보다 갑자기 더 강력해질 때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켄슈타인이 통제되지 않은 오만과 윤리, 야망에 관한 이야기이듯, 의회는 200년 넘게 그런 인간의 결함에 대한 안전장치를 입법해왔다. 하지만 그 법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위한 것이며, 의회가 무엇을 만들어내든 AI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고 폭스뉴스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