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5 08:03 AM
By 전재희
미국 경제가 인플레이션과 관세, 높은 에너지 가격, 금리 인상이라는 여러 악재에도 예상보다 강한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채권시장이 긴장하고 있다.
통상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고 국채금리가 상승하면 주택과 기업투자, 소비가 둔화하면서 경제의 열기가 식는다.
그러나 현재 미국에서는 이러한 전통적인 '경제의 브레이크'가 기대만큼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시설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높은 금리에도 계속되면서 미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시장에서는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강한 상태를 유지할 경우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더 올려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이 같은 전망이 국채 매도를 부추기면서 장기금리는 약 20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다.
미국 채권시장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10년 만기 국채금리의 급등이다.
10년물 미 국채금리는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기업대출과 각종 장기금리의 기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미국 경제 전체의 금융비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WSJ에 따르면 24일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5.2%에 근접했다.
이후 로이터는 미국의 강한 경기지표와 높은 에너지 가격, 부진한 국채 입찰 등이 겹치면서 10년물 금리가 5.2%를 넘어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다고 전했다.
30년물 국채금리도 5.46%를 넘어 약 22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채권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투자자들이 미 국채를 팔면 채권가격은 떨어지고, 신규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시장금리는 올라간다.
현재 시장에서는 미국 경제가 금리 인상에도 쉽게 둔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국채 매도 압력을 키우고 있다.
최근 경제지표는 미국 경제가 단순히 침체를 피하고 있는 수준을 넘어 다시 가속할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S&P Global이 발표한 9월 미국 종합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8.4로 8월의 56.0에서 크게 상승했다.
이는 2021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PMI는 50을 넘으면 경기 확장을 의미한다.
특히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동시에 개선됐으며 신규 주문도 크게 증가했다.
신규 주문 지수는 58.2로 2022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S&P Global은 이 같은 PMI 수준이 유지된다면 미국 경제가 연율 기준 약 5% 수준의 성장 속도를 보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GDP 추정치 역시 현재 연율 5.1% 성장을 가리키고 있다.
S&P Global의 크리스 윌리엄슨(Chris Williamson) 수석 비즈니스 이코노미스트는 제조업과 서비스업 모두에서 기업활동이 매우 강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경제에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치는 영역 가운데 하나는 고용시장이다.
기업의 차입비용이 올라가면 투자와 고용을 줄이고 해고가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에서는 고용시장도 예상보다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8월 고용 증가세가 다시 개선됐고 해고 수준도 낮게 유지되고 있다.
최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 역시 예상과 달리 감소하면서 노동시장이 여전히 안정적이라는 신호를 보였다.
기업들은 오히려 늘어난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직원을 추가로 채용하고 있으며 일부 업종에서는 적절한 인력을 찾기 어렵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S&P Global 조사에서는 미처 처리하지 못한 주문 잔액이 2022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증가했다.
현재 미국 경제의 강한 성장세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AI 투자 붐이다.
통상 금리가 올라가면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를 연기하거나 줄인다.
하지만 AI 시장에서는 이러한 원리가 상대적으로 약하게 나타나고 있다.
AI가 향후 가져올 수익과 시장 지배력이 현재의 높은 차입비용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기술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망 투자 등을 계속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데이터센터 한 곳을 건설하려면 서버와 AI 반도체뿐 아니라 콘크리트, 철강, 변압기, 발전설비, 냉각장치, 건설인력 등 다양한 산업이 필요하다.
얼라이언스번스타인의 이코노미스트 에릭 위노그라드(Eric Winograd)는 AI 데이터센터 건설에 들어가는 모든 것이 결국 미국 경제 어딘가에서 생산돼야 한다면서 이 같은 투자가 공급망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AI 투자 붐이 기술산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제조업과 건설, 전력, 물류 등 미국 경제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AI 투자 붐은 또 다른 방식으로도 미 국채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회사채를 대규모로 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안전한 미 국채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주는 우량기업 회사채에도 투자할 수 있다.
회사채 공급이 크게 늘어나면 국채는 투자자의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해야 하는 압력을 받는다.
WSJ은 최근 AI 인프라 구축과 관련된 기업들의 채권 발행 폭증이 미 국채와 투자자 자금을 놓고 경쟁하면서 국채금리 상승의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즉 AI 붐은 한쪽에서는 미국 경제성장을 끌어올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막대한 자금수요를 만들어 장기금리를 올리는 구조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강하다는 것은 주식시장과 기업에는 긍정적인 뉴스다.
하지만 현재 채권시장에서는 반대다.
경제가 너무 강하면 기업들이 가격을 올릴 여력이 생기고 임금도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9월 S&P Global 조사에서 기업들이 지불한 원재료와 서비스 가격지수는 66.4로 8월 59.9에서 급등하며 2022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업의 주문이 늘어나면서 공급망 병목도 다시 심해지고 있다.
공급업체의 배송기간 지연은 2022년 7월 이후 가장 광범위한 수준을 기록했다.
강한 수요가 공급능력을 넘어설 경우 기업들이 가격을 올리기 쉬워지고 결국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준은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3.75~4.00%**로 조정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약 3년 만에 처음이었다.
연준은 높은 에너지 가격과 관세뿐 아니라 예상보다 강한 경제수요가 물가상승 압력을 만들고 있다고 판단했다.
18명의 정책위원 가운데 16명은 올해 안에 적어도 한 차례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문제는 금리를 올렸음에도 경제가 쉽게 둔화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연준이 금리를 올렸는데도 기업투자와 고용, 소비가 계속 강하다면 같은 수준의 긴축효과를 얻기 위해 금리를 더 높여야 할 수 있다.
채권시장은 이런 가능성을 빠르게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강한 PMI 지표가 발표된 23일 10년물 국채금리는 하루에 약 14bp 급등해 5.106%까지 상승했다.
이는 2025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Liberation Day' 관세 발표 이후 가장 큰 하루 상승폭이었다.
금리선물 시장에서는 연준이 10월에도 금리를 추가로 올릴 가능성을 66% 정도로 반영했다. 강한 경기지표가 발표되기 전 53%에서 크게 높아진 것이다.
시장에서는 2027년 말까지 연준 기준금리가 현재보다 약 1%포인트 추가 상승할 가능성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케빈 워시(Kevin Warsh) 연준 의장 역시 최근 기자회견에서 이번 금리 인상이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한 단계 줄이는 조치였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이 표현을 연준이 현재 금리를 아직 충분히 긴축적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했다.
경제가 계속 강한 상태에서 인플레이션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연준이 추가적인 금리 인상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특히 현재 인플레이션이 단순히 국제유가 상승이라는 공급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미국 내 강한 소비와 투자수요가 함께 물가를 밀어올리고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다.
최근 국채금리 급등의 또 다른 핵심 요인은 에너지 가격이다.
미국-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정으로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움직이면서 투자자들은 높은 에너지 비용이 미국의 물가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 주 초 브렌트유는 미·이란 협상 기대 속에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떨어졌지만 이후 다시 107달러까지 상승했다.
특히 미국 경유 가격이 갤런당 6.50달러를 넘어서면서 운송비와 농업비용, 상품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S&P Global도 기록적인 경유가격이 상품 운송비를 높여 향후 물가상승 압력을 추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것은 채권투자자들이 연준이 인플레이션 통제에 실패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WSJ에 따르면 채권시장의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를 보여주는 브레이크이븐 인플레이션율은 여전히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즉 투자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이 영원히 통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다시 2%로 낮추기 위해 연준이 금리를 얼마나 더 높여야 할 것인가가 시장의 핵심 우려다.
이는 미 국채 투자자 입장에서는 중요한 문제다.
향후 더 높은 금리로 발행되는 국채가 나올 가능성이 커지면 현재 낮은 금리의 채권을 보유할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 전체가 높은 금리를 견디고 있다고 해서 모든 분야가 강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분야는 주택시장이다.
프레디맥에 따르면 30년 고정 모기지 금리는 이번 주 **7.03%**까지 올라 지난해 초 이후 처음으로 7%를 넘어섰다.
높은 주택가격과 7%대 모기지가 겹치면서 미국의 주택 구매능력이 크게 악화됐고 기존주택 판매도 부진한 상태다.
상업용 부동산 역시 높은 차입비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즉 연준의 고금리가 경제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주택과 부동산처럼 금리에 민감한 업종은 큰 충격을 받고 있는데도 AI 투자와 소비, 일부 기업활동이 이를 상쇄하면서 미국 경제 전체가 좀처럼 둔화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높은 금리의 영향이 모든 미국 가계에 동일하지 않다는 점도 과거와 다른 부분이다.
많은 미국인은 팬데믹 당시 3% 안팎의 장기 고정금리 모기지를 확보해 현재 금리 인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특히 주택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고령층 가운데 상당수는 새로운 모기지를 받을 필요가 없다.
반대로 이들은 주식시장 상승과 머니마켓펀드, 예금 등에서 높은 이자수익을 받고 있다.
야데니리서치의 에드 야데니(Ed Yardeni)는 미국 가구 가운데 약 3분의 1이 65세 이상을 가구주로 두고 있다면서 이들 상당수는 새로운 모기지를 찾는 대신 높은 투자수익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과거보다 금리 인상이 소비를 둔화시키는 힘이 약해진 이유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국채금리 상승을 경기와 인플레이션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미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채 발행 증가 역시 장기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정부가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채 공급을 확대하면 투자자들은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수 있다.
23일 미 재무부가 실시한 700억달러 규모 5년물 국채 입찰도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입찰금리에서 이뤄졌으며 수요가 예상보다 약했다.
높은 정부부채와 AI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연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투자자의 자금을 놓고 경쟁하는 채권 공급이 크게 늘어난 셈이다.
현재 상황이 연준에 어려운 이유는 경제가 침체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만 높은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상황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오히려 상당히 강하다.
문제는 그 강한 성장 자체가 추가적인 물가상승 압력으로 연결될 가능성이다.
만약 현재 인플레이션이 유가 상승과 같은 일시적인 공급충격 때문이라면 이란전쟁이 종료되고 에너지 가격이 떨어질 경우 상당 부분 자연스럽게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AI 투자와 소비, 기업의 신규 주문 증가 등 미국 내부의 강한 수요가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면 연준은 훨씬 강한 통화긴축을 해야 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WSJ 기사의 가장 중요한 문제제기다.
AI 관련 투자가 높은 금리에도 계속 확대된다면 연준의 금리 인상만으로 AI 붐 자체를 식히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연준이 전체 경제의 수요를 충분히 낮추기 위해서는 AI 이외의 부문에 훨씬 더 강한 금리 압박을 가해야 할 수도 있다.
위노그라드는 이를 두고 연준 입장에서는 "AI가 둔화하기를 거부한다면 AI가 아닌 모든 것을 정말 강하게 눌러야 할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결국 미국 경제의 현재 강세는 단순한 호재로만 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AI 투자 붐은 경제성장과 생산성을 끌어올릴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강한 투자수요와 자금조달, 건설·전력·제조업 수요를 만들어 인플레이션과 장기금리를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 결과 강한 경제 → 인플레이션 지속 우려 → 연준 추가 금리 인상 전망 → 국채 매도 → 장기금리 상승 → 주택·부동산 압박이라는 새로운 순환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 경제가 앞으로도 높은 금리를 견디며 성장할 경우 채권시장에는 오히려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지금 미 국채시장이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 경제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경제가 너무 강해서 연준이 예상보다 훨씬 더 높은 금리를 오래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