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8 09:09 AM

美 폭격기 배치된 영국 공군기지 겨냥 테러 의혹...용의자 5명 보석 석방

By 전재희

RAF 페어퍼드 인근서 영국인 5명 체포...폭발물법·테러행위 준비 혐의 수사
미군 B-1 폭격기 운용 핵심기지...올해 이란 공격 작전에도 사용
英 대테러당국 "외국 정부 대신 움직인 대리세력 가능성까지 조사"
이란 "근거 없는 악의적 추측" 전면 부인...경찰도 아직 이란 연계 공식 확인 안 해

미군의 대이란 군사작전에 사용돼온 영국의 RAF 페어퍼드(RAF Fairford) 공군기지 인근에서 테러공격을 준비한 혐의로 체포됐던 영국인 남성 5명이 보석으로 석방됐다.

그러나 영국 대테러당국은 이들이 혐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며, 외국 정부의 지시를 받은 대리세력 또는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외국 국가를 위해 행동했을 가능성까지 포함해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건이 발생한 RAF 페어퍼드는 미국 공군의 B-1·B-52 전략폭격기가 운용되는 유럽 내 핵심 거점 가운데 하나로, 올해 미국의 이란 군사작전에도 사용됐다. 이 때문에 영국과 미국 당국은 이번 사건이 이란 또는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과 관련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영국 경찰은 현재까지 이란이 이번 사건에 개입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며, 이란 정부도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공군기지 향하던 흰색 밴 3대...주민 신고로 시작된 수사

사건은 27일 새벽 영국 남서부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의 RAF 페어퍼드 인근에서 시작됐다.

경찰에 따르면 오전 12시45분께 공군기지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이는 수상한 차량 3대가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는 대형 흰색 밴 3대가 있었고, 현지 주민은 복면이나 후드를 쓴 남성들이 차량 주변에서 들판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무장경찰이 출동해 기지에서 약 1마일 떨어진 웰퍼드(Whelford) 지역에서 남성 5명을 체포했다.

영국 페어퍼드에서 촬영된 항공 영상에는 흰색 밴 여러 대와 이들을 향해 접근하는 폭발물 처리 로봇의 모습이 담겼다.(영국 페어퍼드에서 촬영된 항공 영상에는 흰색 밴 여러 대와 이들을 향해 접근하는 폭발물 처리 로봇의 모습이 담겼다. 영상: 로이터 )

이들은 처음에는 영국 폭발물법(Explosives Act) 위반 혐의로 체포됐으며, 대테러경찰이 수사를 인계한 이후 테러행위 준비 혐의가 추가됐다.

현장 주변 약 400m에는 통제선이 설치됐고 인근 약 85가구 주민들도 대피했다. 경찰 폭발물 처리팀은 차량과 현장을 조사했다.

모두 영국 국적 20대...런던 거주

경찰은 체포된 5명이 모두 23~25세의 영국 국적 남성이며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한 뒤 28일 보석으로 석방했다.

하지만 로런스 테일러(Laurence Taylor) 영국 대테러경찰 책임자는 이들이 여전히 수사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보석 조건에 따라 이들의 이동과 다른 사람과의 접촉 등이 엄격하게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번 보석 석방을 혐의가 해소됐거나 사건이 종결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현재 영국 경찰은 디지털 자료와 차량, 현장 물품 등을 계속 분석하며 범행 목적과 배후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대테러당국 "외국 정부 대리세력 가능성도 조사"

이번 사건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배후다.

테일러 대테러경찰 책임자는 수사당국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면서, 사건이 **"대리세력이나 외국 정부를 대신해 의도적으로 또는 자신도 모르게 행동한 개인들"**에 의해 추진됐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영국 경찰이 단순한 개인적 테러계획뿐 아니라 외국 국가가 현지인을 이용해 군사시설을 공격하려 했을 가능성까지 들여다보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경찰은 특정 국가를 배후로 지목하지 않았다.

왜 RAF 페어퍼드가 중요한가

RAF 페어퍼드는 일반적인 영국 공군기지가 아니다.

런던에서 서쪽으로 약 90~100마일 떨어진 이 기지는 영국 소유지만 미국 공군이 장기간 사용하고 있으며, 미 공군 글로벌타격사령부(Global Strike Command)의 전진작전 거점 역할을 한다.

특히 활주로가 매우 길어 B-1과 B-52 같은 대형 전략폭격기의 운용이 가능하다.

1991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전에서도 사용됐으며 올해 미국의 이란 군사작전에서도 B-1과 B-52 폭격기가 이 기지에서 출격했다.

WSJ에 따르면 현재 기지에는 B-1 폭격기 약 12대가 배치돼 있다.

따라서 실제 테러공격을 계획한 것이 확인될 경우 단순한 영국 국내시설이 아니라 미국의 중동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전략기지를 겨냥한 사건이 된다.

이란, 앞서 "미국 공격에 기지 제공하면 결과 있을 것" 경고

이란과 RAF 페어퍼드 사이에는 이미 긴장이 존재했다.

영국은 올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전쟁에 직접 참전하지 않았지만, 미국이 영국 내 군사기지를 이용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영국 정부는 처음에는 미국이 영국 기지에서 이란을 공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이후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걸프지역 동맹국과 영국 이해관계가 위협받자 방어 목적의 미군 작전에는 영국 기지 사용을 허용했다.

이후 미국의 B-1·B-52 폭격기가 페어퍼드에서 이란 관련 작전에 투입됐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지난 7월 미국의 이란 공격에 사용되는 기지는 정당한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정부도 당시 페어퍼드 방어태세를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최근 수주간 기지 주변 경계 강화

실제로 사건 발생 전부터 RAF 페어퍼드 주변 경계가 강화돼 있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현지 관계자는 이란 측의 구체적인 위협 이후 최근 약 6주 동안 기지 주변 감시활동이 강화됐다고 전했다.

주민과 항공기 관찰자들도 최근 기지 출입구와 주변에 차량이 추가 배치되는 등 경계수준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AP에 따르면 영국 내 또 다른 미군기지인 RAF 레이큰히스(RAF Lakenheath)는 최근 미 국방부의 FPCON Charlie 경계상태에 들어갔다.

Charlie 단계는 특정 시설이나 인원을 대상으로 한 테러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건 또는 정보가 입수됐을 때 적용되는 비교적 높은 경계수준이다. 다만 페어퍼드의 정확한 경계등급은 공개되지 않았다.

현지 농부가 우연히 발견...기지 보안 논란

이번 사건이 알려진 과정도 논란을 낳고 있다.

현지 언론 보도와 로이터에 따르면 한 여성 농부가 파티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기지 인근 도로를 가로막고 있던 흰색 밴 3대를 발견했다.

그녀는 복면을 쓴 여러 명이 차량에서 내려 주변 들판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 여성은 일부 남성들이 기지 외곽 울타리에서 약 100m 거리까지 접근한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기지가 이미 높은 경계상태였는데도 민간인의 우연한 발견과 신고로 사건이 알려졌다는 데 대해 보안체계에 의문을 제기했다.

영국 국방당국은 신고한 주민에게 감사를 표시하면서도 주민이 당시 보안작전의 전체 상황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사건의 "일부 모습"만 봤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오랫동안 감시...큰 피해 노렸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사건 직후 미국과 영국 당국이 용의자들을 이미 조사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오랫동안 감시해왔으며 결국 체포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이 기지에 **"큰 피해"**를 입히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국 수사당국은 아직 공격 목표와 구체적인 범행계획을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WSJ은 안보 당국자들이 기지에 배치된 미국의 B-1 전략폭격기가 유력한 공격대상이었을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로서는 이 부분도 수사당국의 최종 결론이 아니라 조사되고 있는 가능성이다.

이란대사관 "근거 없는 악의적 추측"

이란은 즉각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주영 이란대사관은 28일 X에 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을 이란과 연결하려는 주장을 **"근거 없고 악의적인 추측"**이라고 규정하며 전면적으로 부인했다.

대사관은 이런 주장이 영국 내에서 반이란 정서를 부추기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이터 역시 현재까지 영국 경찰이 공식적으로 이란을 이번 사건과 연결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이란이 RAF 페어퍼드 테러를 지시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영국이 주목하는 '대리인 공격' 방식

그럼에도 영국 당국이 외국 정부 연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데는 배경이 있다.

최근 몇 년간 유럽 정보·수사기관은 이란과 러시아가 자국 요원을 직접 보내기보다는 현지인을 모집해 방화·파괴공작 등을 수행하도록 하는 이른바 프록시(proxy·대리인) 방식에 대한 경계를 강화해왔다.

영국 정부는 올해 여름 유대교 회당 등 유대계 시설을 대상으로 발생한 일련의 방화·기물파손 사건의 배후에 이란 혁명수비대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 당국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에도 현지 젊은이들을 온라인으로 모집해 공격을 수행하도록 하는 방식이 사용됐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에서도 용의자들이 특정 외국 정부와 직접 연결돼 있었는지뿐 아니라, 자신들이 누구를 위해 움직이는지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제3자의 지시를 받았을 가능성까지 조사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세 가지

현재 수사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체포된 5명이 실제로 RAF 페어퍼드에 대한 공격을 준비했는지다.

둘째, 공격이 계획됐다면 구체적인 목표가 B-1 폭격기를 비롯한 미군 항공기였는지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독자적으로 움직였는지,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또는 이란을 포함한 외국 정부와 연결돼 있었는지다.

현재 영국 경찰이 공식 확인한 것은 5명이 폭발물 관련 범죄와 테러행위 준비 혐의로 체포됐고, 보석으로 석방된 뒤에도 계속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까지다.

이란전쟁 장기화 속 유럽의 새로운 안보 위험

이번 사건은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중동을 넘어 유럽 내 미군시설의 보안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RAF 페어퍼드는 미국이 유럽에서 중동 방향으로 전략폭격기를 운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형기지 가운데 하나다.

이란은 미국의 공격에 사용되는 해외기지도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해왔고, 미국과 영국은 최근 해당 시설들의 경계를 강화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배후와 실제 공격계획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사건의 성격을 판단할 핵심은 보석으로 풀려난 5명의 통신기록과 자금흐름, 차량과 현장에서 확보된 물품 분석을 통해 누가 공격을 계획했고, 실제로 외부 조직이나 국가가 개입했는지가 확인되는지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