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1 09:19 AM
By 전재희
국채 가격 급락했지만 신규 투자자는 20년 만의 높은 이자수익 기회
주식·채권 반대로 움직이는 전통적 분산효과, 2021년 이후 처음 되살아나
자산운용사들은 장기채보다 3~5년 단기·중기채와 '채권 사다리' 전략 선호
현금에 머물던 투자자들도 이동 조짐...올해 채권펀드 유입액 이미 2021년 이후 연간 기록 넘어
미국 국채시장이 수십년 만의 가장 거센 매도세를 겪고 있지만 월가의 자산운용사들은 오히려 고객들에게 "채권에 다시 기회를 줄 때"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기존 채권 투자자 입장에서는 금리 급등으로 채권 가격이 떨어져 상당한 손실을 경험하고 있지만, 지금 새롭게 투자하는 사람에게는 상황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5%를 넘어 24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올라가면서 국채와 우량 회사채에서 과거 10여년 동안 보기 어려웠던 높은 이자수익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더 중요한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주식과 채권의 분산효과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전통적인 자산배분 전략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60대40 포트폴리오'다.
자산의 60%를 주식에, 40%를 채권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기본 논리는 단순하다.
경제가 강하고 기업이익이 늘어나면 주식이 상승하고, 경기불안이나 위험회피가 나타날 때는 안전자산인 채권이 상승하면서 주식의 손실을 완충한다.
하지만 이 공식은 최근 몇 년 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2022년 연방준비제도(Fed)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빠르게 금리를 올리면서 주식과 채권 가격이 동시에 급락했다.
주식이 떨어질 때 방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채권까지 함께 무너지면서 많은 투자자가 채권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그러나 WSJ이 인용한 루톨드 그룹(Leuthold Group)의 분석에 따르면 2026년은 2021년 이후 처음으로 주식과 채권이 다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즉 60대40 포트폴리오가 원래 기대했던 방식으로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산운용사들이 현재 가장 어려워하는 문제는 수익률보다 투자자의 심리다.
할버트 하그로브(Halbert Hargrove)의 브라이언 스피넬리(Brian Spinelli) 공동 최고투자책임자는 채권 투자의 가장 큰 장애물이 심리적인 문제라고 설명했다.
지난 15년 동안 투자자들에게 채권은 낮은 수익률의 자산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잡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기준금리가 거의 제로 수준에 머물면서 미국 국채와 우량채권에서 얻을 수 있는 이자수익은 매우 낮았다.
그러다 2022년에는 금리까지 급등하면서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많은 투자자에게 채권은 '수익도 낮고 가격도 떨어지는 자산'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현재의 금리환경은 당시와 상당히 다르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1일 장중 5.34%까지 상승했다.
이는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후 저가매수가 들어오면서 5.27% 부근으로 내려왔지만 절대적인 금리 수준은 여전히 매우 높다.
채권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기존 투자자에게는 손실이지만 새로운 투자자에게는 더 높은 금리로 채권을 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미 국채에서 연 5% 안팎의 수익률을 확보한 뒤 만기까지 보유한다면 중간의 시장가격 변동과 관계없이 약정된 이자와 원금을 받을 수 있다.
신용위험이 있는 회사채에서는 국채보다 더 높은 수익률도 가능하다.
자산운용사들이 최근의 채권시장 급락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 이유다.
실제 자금흐름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WSJ이 인용한 모닝스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채권펀드로 유입된 자금은 이미 2021년 이후 어느 한 해의 전체 유입액보다 많다.
최근 흐름도 같은 방향이다.
9월25일까지 한 주 동안 미국 채권펀드에는 약 59억3천만달러가 순유입됐으며, 일반 과세 채권펀드에만 41억5천만달러가 들어왔다. 국채와 투자등급 회사채, 대출채권 펀드에도 투자자금이 유입됐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 동안 미국 채권 ETF에는 약 540억달러가 들어왔다.
가격은 떨어지고 있지만 높은 금리를 확보하려는 새로운 투자자들이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월가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현금이다.
미국 개인투자자들은 최근 몇 년 동안 머니마켓펀드와 고금리 예금 등에 기록적인 규모의 현금을 쌓아왔다.
단기금리가 높았기 때문에 굳이 가격변동 위험이 있는 채권을 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연준의 금리인상 사이클이 어느 시점에서 멈추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머니마켓 금리는 연준 기준금리를 빠르게 따라 내려간다.
반면 지금 3년이나 5년 만기 채권을 사면 현재의 높은 금리를 수년간 고정할 수 있다.
트라잔 웰스(Trajan Wealth)의 데이비드 부시(David Busch) 최고투자책임자가 3~5년 만기 채권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현금을 많이 보유한 투자자들에게 지금의 높은 금리를 수년 동안 고정하는 방법으로 중기채를 활용하고 있다.
현재 머니마켓이나 단기예금에서 높은 이자를 받고 있는 투자자는 당장은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연준이 금리인상을 끝낸 뒤 금리를 낮추기 시작하면 현금성 상품의 수익률도 빠르게 내려간다.
반면 5% 안팎의 금리로 몇 년짜리 채권을 확보한 투자자는 만기까지 그 이자를 계속 받을 수 있다.
로이터도 최근 금리상승이 예금자와 국채 투자자에게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고 있으며, 만기가 다른 채권을 나눠 보유하는 전략이 활용될 수 있다고 전했다.
결국 현금을 계속 가지고 있을 것이냐, 현재의 높은 금리를 채권으로 고정할 것이냐가 투자자들의 새로운 선택지가 되고 있다.
WSJ은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 거주하는 은퇴 부부 존 리딜라(John Ridilla)와 수 실링-리딜라(Sue Seeling-Ridilla)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들의 투자자산 가운데 약 80%는 현재 국채와 양도성예금증서(CD) 등 고정수익 자산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고정수익 비중은 약 20%에 불과했다.
높아진 금리 때문에 투자전략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이 부부는 채권과 사회보장연금 등에서 연간 약 20만달러의 수입을 얻고 있으며 연간 생활비는 약 9만달러라고 밝혔다.
존 리딜라는 금리가 더 올라온다면 일부 주식까지 국채로 옮긴 뒤 6개월마다 들어오는 이자만으로 생활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금리 시대에는 사실상 불가능했던 투자전략이 5% 금리 시대에는 현실적인 선택지가 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채권을 다시 권하는 자산운용사들조차 장기채에는 상당히 조심스럽다는 사실이다.
많은 투자전문가는 단기 또는 중기채를 장기채보다 선호한다.
이유는 현재 채권시장 불안의 중심에 미국의 장기 재정전망과 인플레이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의 대규모 재정적자가 지속되고 국채발행이 계속 증가하면 투자자들은 10년이나 30년 동안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수 있다.
또 에너지 가격 상승이나 경제과열로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오래 유지된다면 장기채가 더 큰 가격손실을 볼 수 있다.
1일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5.34%까지 상승했고 글로벌 채권금리도 수십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IMF는 시장 기능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지만 높은 에너지 가격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지속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채권 투자에서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듀레이션(duration)이다.
쉽게 말하면 금리가 움직였을 때 채권 가격이 얼마나 크게 움직이는지를 나타낸다.
만기가 길수록 일반적으로 듀레이션이 길고 금리 변화에 민감하다.
예를 들어 금리가 0.5%포인트 더 상승하면 2년물보다 20년 또는 30년물의 가격이 훨씬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올해 채권시장에서도 이런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모닝스타 자료에 따르면 금리에 민감한 장기 국채는 올해 특히 큰 타격을 받은 반면 변동금리 대출상품은 상대적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
따라서 채권에 다시 들어가더라도 '채권이면 무엇이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또 다른 전략은 채권 사다리(bond ladder)다.
예를 들어 투자할 돈을 한 번에 5년물 채권에 넣지 않고 1년, 2년, 3년, 4년, 5년 만기 채권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1년물이 만기가 되면 그 돈을 다시 당시 시장금리로 장기채에 투자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특정 시점의 금리에 모든 돈을 걸지 않아도 된다.
금리가 더 올라가면 만기가 돌아오는 돈을 더 높은 수익률에 재투자할 수 있고, 금리가 떨어지면 이미 사둔 장기 채권에서 높은 이자를 계속 받을 수 있다.
찰스슈왑의 콜린 마틴(Collin Martin) 고정수익 전략 책임자는 지금처럼 금리 전망이 불확실할 때 이러한 채권 사다리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채권 역시 가격이 떨어질 위험은 있지만 현재 투자자가 얻을 수 있는 소득수익은 거의 20년 동안 보기 어려웠던 수준이라고 말했다.
채권이 다시 관심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단순히 5% 이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포트폴리오 전체의 위험을 낮춰주는 역할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2022년에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같은 충격이 주식과 채권을 동시에 때렸다.
연준이 금리를 빠르게 올리자 성장주의 가치가 떨어졌고 동시에 기존 저금리 채권 가격도 급락했다.
따라서 두 자산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주식과 채권 가격이 다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나타나면서 채권의 분산효과가 복원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지속된다면 채권을 보유하는 목적은 단순한 이자수익에서 포트폴리오 방어까지 다시 확대된다.
월가가 우려하는 새로운 문제도 있다.
미국 주식시장과 회사채 시장이 모두 인공지능(AI) 관련 기업에 지나치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WSJ이 인용한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Apollo Global Management) 자료에 따르면 S&P500의 상위 10개 기업이 전체 지수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기술과 AI 산업의 영향을 크게 받는 기업들이다.
채권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올해 새로 발행된 투자등급 회사채 가운데 약 49%가 AI 관련 투자와 연결돼 있다고 WSJ은 전했다.
로이터도 대형 기술기업들이 AI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올해 약 2,200억달러의 채권을 발행했으며 앞으로 발행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60대40 전략의 전제가 두 자산의 분산효과이기 때문이다.
만약 주식 포트폴리오의 상당 부분이 AI 기업이고 채권 포트폴리오도 같은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로 구성돼 있다면 AI 산업에 충격이 왔을 때 두 자산이 동시에 하락할 수 있다.
결국 주식과 채권이라는 자산 이름만 나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다.
윌시 애셋 매니지먼트(Wilsey Asset Management)의 브렌트 윌시(Brent Wilsey)는 식품과 운송 등 AI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낮고 안정적인 사업을 하는 기업까지 폭넓게 분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채권시장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가격과 수익률을 분리해서 보는 것이다.
기존 채권 보유자에게 올해의 금리상승은 나쁜 소식이다.
금리가 오르면서 보유채권 가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 처음 채권을 사는 투자자에게는 같은 현상이 좋은 소식이 될 수 있다.
가격이 떨어진 만큼 투자자가 받을 수 있는 수익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즉 같은 채권시장 급락을 놓고 기존 투자자는 손실을 보고 있지만 신규 투자자는 수십년 만의 높은 금리로 채권을 살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5%를 훌쩍 넘어섰다는 것은 두 가지 상반된 의미를 가진다.
투자자에게는 미국 정부가 지급하는 높은 이자수익을 확보할 기회다.
동시에 시장이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40조달러를 넘어선 정부부채, 재정적자와 대규모 국채발행에 상당한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하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최근 미국 10년물 금리는 5.34%까지 올라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올해 3분기 상승폭은 1994년 이후 가장 컸다.
따라서 현재 자산운용사들이 채권을 권하는 것은 "금리가 이제 최고점이니 곧 채권 가격이 오른다"는 단순한 전망이라기보다, 현재 수준의 이자수익 자체가 과거에 비해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판단에 가깝다.
지난 15년 동안 채권의 가장 큰 문제는 수익률이 너무 낮았다는 것이었다.
2022년에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방어 기능마저 무너졌다.
그래서 많은 투자자가 채권을 버리고 주식이나 현금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국채와 우량채의 수익률은 수십년 만의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고 주식과 채권이 다시 반대로 움직이면서 포트폴리오의 충격을 완화하는 전통적인 역할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채권펀드로 돈이 다시 들어오고 있다.
그렇다고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이 통제되지 않으면 장기금리는 더 오를 수 있고 장기채 가격은 추가로 하락할 수 있다. AI 관련 회사채 발행 급증 역시 주식과 채권의 새로운 동조화 위험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현재 월가의 메시지는 채권시장 전체에 공격적으로 베팅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십년 만에 높아진 수익률을 이용하되 만기를 짧게 가져가고, 채권 사다리를 활용하고, 국채와 우량채·산업별 회사채를 분산하면서 위험을 관리하라는 쪽에 가깝다.
수년간 투자자에게 실망을 안겼던 채권이 다시 포트폴리오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2026년의 고금리 시장이 그 시험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