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6 08:46 AM

WSJ "프랑스 '마법의 돈' 시대, 결국 부채폭탄으로 돌아왔다"

By 전재희

프랑스 10년물 국채금리 5% 육박...2002년 이후 최고
2030년까지 만기 도래 부채 1조달러 넘어...내년 국채 발행 약 3,800억달러 사상 최대 전망
국가부채 GDP의 120% 근접...이자비용 2030년까지 59% 증가 예상
WSJ "수십년간 국가에 '마법의 돈'을 요구해온 재정문화가 고금리 시대에 한계 노출"

프랑스가 수십년간 이어온 과도한 재정지출의 대가를 본격적으로 치르기 시작하면서 유럽 금융시장의 새로운 '약한 고리'로 떠오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은 5일 "France's Appetite for 'Magic Money' Has Turned Into a Debt Bomb"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초저금리 시대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프랑스의 막대한 국가부채가 글로벌 금리 급등과 정치적 혼란이 맞물리면서 위험한 악순환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의 부채
(프랑스 부채 추이. 프랑스 국가 통계국)

프랑스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최근 5%에 근접해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한때 유럽 재정위기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와 그리스보다 프랑스가 더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리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

2030년까지 갚거나 다시 빌려야 할 돈 1조달러 넘어

WSJ이 가장 주목한 것은 앞으로 몇 년 동안 프랑스가 맞게 될 대규모 부채 차환이다.

프랑스는 2030년까지 1조달러가 넘는 기존 국채의 만기를 맞게 된다.

내년에는 약 3,800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새로 발행할 예정인데 이는 사상 최대 수준이다.

문제는 과거 프랑스 국채를 꾸준히 사들이던 투자자들이 줄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중앙은행은 더 이상 정부 국채를 대규모로 매입하지 않고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을 재투자하지 않으면서 보유규모를 줄이고 있다.

일본의 자산운용사 등 전통적인 해외 투자자들도 프랑스 국채 비중을 낮추고 있다.

이들의 빈자리를 채웠던 헤지펀드들마저 최근 채권시장 변동성으로 손실을 입었다고 WSJ은 전했다.

"수십년 동안 재정적 무임승차"

프랑스 자산운용사 카르미냑(Carmignac)의 케빈 토제(Kevin Thozet)는 WSJ에 프랑스가 오랫동안 유럽의 재정질서에서 사실상 무임승차해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프랑스가 "수년, 아니 수십년 동안 재정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도 넘어갔다"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그동안 시장이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지만 이제 투자자들이 프랑스 재정상황을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금리가 낮을 때는 막대한 부채를 쌓아도 이자부담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기존 부채가 만기를 맞아 높은 금리로 차환되기 시작하면 정부 재정은 빠르게 압박받는다.

이자비용 2030년까지 59% 증가

프랑스 재무부가 의뢰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의 국가부채 이자비용은 2030년까지 현재보다 5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이자지출은 프랑스 정부의 가장 큰 예산항목 가운데 하나이며, 2030년에는 군사비보다 더 큰 규모가 될 수 있다고 WSJ은 전했다.

현재 프랑스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120%에 근접했다.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국가부채가 경제를 서서히 목 조르는 '점진적인 교살'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WSJ "진짜 위험은 정치가 해결책을 만들 수 없다는 것"

WSJ은 프랑스 채권 매도세가 단순히 높은 국가부채 때문만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이 더 우려하는 것은 프랑스 정치시스템이 더 이상 재정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정부지출을 줄이고 재정질서를 회복하려던 총리들이 잇따라 의회의 반발과 불신임 압력에 직면했다.

마크롱 진영과 좌파, 우파가 의회를 크게 세 블록으로 나눠 차지하면서 대규모 지출삭감을 통과시키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대선 주자들은 오히려 더 쓰겠다는 공약

문제는 202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주요 후보들이 긴축보다 추가지출 공약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라고 WSJ은 지적했다.

극우 진영의 마린 르펜(Marine Le Pen)은 프랑스의 정년을 다시 60세 수준까지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WSJ은 이 정책에 연간 약 90억유로의 추가 정부지출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극좌 지도자 장뤼크 멜랑숑(Jean-Luc Mélenchon)은 더욱 급진적인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중앙은행이 보유한 약 4,880억유로의 프랑스 국채를 유럽중앙은행이 동결하거나 사실상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멜랑숑은 이를 두고 "불 속에 던져버리라"고 표현했다.

"국가에 돈 달라고 하는 것이 프랑스의 반사작용"

WSJ은 프랑스 부채문제의 뿌리를 수십년 동안 이어진 정부 과잉지출과 광범위한 복지제도에서 찾았다.

프랑스는 1974년 이후 한 번도 정부예산을 균형 상태로 만들지 못했다.

마크롱의 중도정당 소속 실뱅 마이야르(Sylvain Maillard) 의원은 WSJ에 "프랑스에는 언제나 국가에 조금 더 '마법의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반사작용이 있다"고 말했다.

경제·사회적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해결하는 방식이 국민과 정치권 모두에게 익숙해졌다는 설명이다.

마크롱, 처음에는 재정개혁 약속

마크롱은 집권 초기만 해도 이런 구조를 바꾸겠다는 입장이었다.

투자은행가 출신인 그는 노동시장 규제를 완화하고 법인세를 낮췄으며 부유세를 폐지했다.

이 같은 정책으로 집권 초기 프랑스의 재정적자를 EU 기준인 GDP 대비 3% 이하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각종 위기가 발생하면서 마크롱의 정책은 재정확대로 방향을 틀었다.

노란조끼 시위에 100억유로 투입

첫 번째 전환점은 2018년 노란조끼 시위였다.

유류세 인상 등에 반발한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마크롱은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최소 100억유로의 추가지출을 결정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면서 재정확대는 더욱 커졌다.

마크롱은 기업과 가계를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지원정책을 도입하면서 'Quoi qu'il en coûte', 즉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코로나 지원이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는 코로나 당시 유럽 최대 규모 가운데 하나인 유급휴직 지원제도를 운영했다.

식당부터 대기업까지 영업을 하지 못하는 기업의 직원 급여를 정부가 대신 지원했다.

당초 봉쇄기간 동안만 운영될 임시정책이었지만 상당수 기업이 이후에도 여러 해 동안 지원을 받았다.

프랑스 정부는 공공의료 종사자의 임금도 올렸고 기업세도 추가로 감면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가격이 급등하자 이번에는 가계와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에너지가격 상한제에 수백억유로를 투입했다.

유럽의 천연가스 공급이 안정된 이후에도 일부 지원정책은 계속됐다.

프랑스 상원에서 관련 재정조사를 담당했던 장프랑수아 위송(Jean-François Husson) 의원은 "공공자금이 계속 들어갔지만 정부 누구도 플러그를 뽑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2023년부터 계산서가 나타나기 시작

재정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2023년이다.

2023년 12월7일 프랑스 재무부 관계자들은 브뤼노 르메르(Bruno Le Maire) 당시 재무장관에게 비밀 메모를 전달했다.

정부 세수가 예상보다 크게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다.

에너지기업에 부과한 횡재세는 예상했던 30억유로의 세수를 확보하지 못했고 부가가치세 수입도 목표치를 밑돌았다.

정부지출 역시 약 30억유로 과소평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무부 관계자들은 당초 GDP의 4.9%로 전망했던 2023년 재정적자가 5.2%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봤다.

정부 재정에서 약 92억유로의 추가 구멍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재무부 "국민에게 공개하고 지출 줄여야"

르메르는 엘리자베트 보른(Élisabeth Borne) 당시 총리에게 문제를 공개하고 지출을 즉시 삭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2024년 예산에서 우선 3억유로를 줄이고 이후 100억유로를 추가 삭감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보른은 당시 민감한 이민법과 예산안을 처리하고 있었고 이미 예산안 통과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갔다며 수정하지 않았다.

보른은 WSJ과 인터뷰에서 "더 이상 예산을 바꿀 수 없었다. 우리는 마지막 단계에 있었다"고 말했다.

몇 달 만에 재정 구멍 400억유로

상황은 곧 더 나빠졌다.

2024년 2월 재무부가 작성한 또 다른 내부문건에서는 2023년 재정적자가 GDP의 5.6%까지 올라갈 수 있고 2024년 적자도 5.7%에 이를 가능성이 제기됐다.

불과 몇 달 전 통과시킨 예산안에서는 2024년 적자를 4.4%로 예상하고 있었다.

르메르는 사실상 400억유로 규모의 추가 재정구멍을 메워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는 의회의 승인을 받아 최대 200억유로의 지출을 추가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총리실과 정치권은 이에 부정적이었다.

"그때까지도 모두 돈이 싼 세상에 살고 있었다"

당시 가브리엘 아탈(Gabriel Attal) 총리의 경제보좌관이었던 라얀 네자르(Rayan Nezzar)는 WSJ에 당시 프랑스 정치권의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라는 생각이 아직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모두가 여전히 돈이 싼 세계에서 살고 있었고 부채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이미 초저금리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마크롱 "문제는 과도한 지출이 아니라 세수"

2024년 4월 마크롱 대통령은 엘리제궁에서 의원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대규모 수정예산을 마련하자는 요구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마크롱은 "수정예산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필요성을 모르겠다"며 "우리의 문제는 과도한 지출이 아니다. 문제는 세수가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 달 뒤 유럽의회 선거에서 르펜의 국민연합이 마크롱 진영에 압승했다.

마크롱은 같은 날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조기총선이 오히려 재정개혁을 더 어렵게

마크롱은 조기총선에서 승리하면 의회 권력을 강화해 대규모 재정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마크롱 진영은 의석을 잃었고 국회는 르펜의 우파, 마크롱의 중도파, 멜랑숑 등이 참여한 좌파연합으로 3등분됐다.

어느 세력도 안정적인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대규모 긴축정책을 통과시키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미국 자산운용사 뱅가드(Vanguard)의 국제금리 책임자 알레스 코우트니(Ales Koutny)는 이 시기를 프랑스에 대한 투자판단의 전환점으로 기억했다.

그는 "표면 아래 상황이 생각보다 더 나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단계에 온 것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프랑스 국채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최근 3년 재정적자 계속 GDP의 5% 넘어

이후 프랑스의 예산통과 과정은 정치적 혼란의 연속이 됐다.

대규모 지출삭감을 추진하려던 총리들이 잇따라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고 정부의 재정적자는 최근 3년 동안 GDP의 5%를 계속 웃돌았다.

프랑스 재무부가 의뢰한 최근 연구에서는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30년 재정적자가 GDP의 6.8%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이제 금리가 성장률보다 높아진다

WSJ이 지적한 가장 위험한 변화는 프랑스 국가부채에 적용되는 평균 금리가 경제성장률보다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초저금리 시대에는 경제의 명목성장률이 정부의 평균 차입금리보다 높았기 때문에 부채가 늘어나더라도 GDP 대비 부채비율을 관리하기 상대적으로 쉬웠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관계가 뒤집힐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부채에 적용되는 금리가 성장률보다 높아지면 정부가 과감하게 지출을 줄이지 않는 한 부채비율이 계속 올라가는 구조가 된다.

카르미냑의 토제는 이를 "눈덩이 효과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OECD "지출 줄이지 않으면 2050년 부채 200% 가능"

WSJ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추산을 인용해 프랑스가 충분한 재정조정을 하지 않을 경우 국가부채가 2050년 GDP의 200%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는 프랑스가 당장 국가부도에 빠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럽은 과거 유로존 재정위기 당시보다 금융시장 충격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더 많이 갖고 있고 유럽중앙은행도 시장불안에 대응할 수 있다.

최근 프랑스 국채 매도세가 헤지펀드의 위험한 거래가 한꺼번에 청산되면서 과도하게 확대된 측면도 있다고 WSJ은 전했다.

위기를 피하더라도 대가는 크다

그러나 국가부도나 구제금융 사태를 피한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부채의 이자를 갚는 데 더 많은 돈을 사용하면 교육과 국방, 연구개발, 인프라 등 경제성장을 위한 생산적인 투자에 사용할 예산이 줄어든다.

결국 높은 국가부채는 미래 경제성장까지 약화시키고, 성장률 하락은 다시 국가부채 부담을 높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WSJ "최대 변수는 차기 대통령선거"

WSJ은 프랑스 재정위험의 최대 변수로 차기 대통령선거를 꼽았다.

마크롱은 연임 제한으로 다시 출마할 수 없다.

문제는 당시 여론조사에서 앞서던 르펜과 멜랑숑 모두 프랑스의 재정문제를 충분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채권 투자자들의 우려라고 전했다.

뱅가드의 코우트니는 "모두가 돈을 더 쓸 방법만 이야기하고 있다"며 "프랑스의 재정상황은 이미 좋지 않은데 정치권이 말하는 정책들까지 반영하면 상황은 더 나빠 보인다"고 말했다.

"채권시장이 결국 규율을 강제할 수도"

금융시장에서는 국채시장을 정부의 재정규율을 강제하는 최종 심판자로 표현하기도 한다.

정부가 지속 불가능한 정책을 추진하면 투자자들이 국채를 팔고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면서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과거 그리스 등도 재정위기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과 긴축정책을 실시해야 했다.

프랑스 국회 재정위원회 소속 중도파 샤를 로드웰(Charles Rodwell) 의원은 현재의 시장압력이 좌우 정치권 모두에게 현실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WSJ에 "우리는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법의 돈' 시대의 끝

WSJ의 분석을 종합하면 프랑스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부채 규모 자체만이 아니다.

수십년 동안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새로운 지출로 문제를 해결했고, 국민과 정치권 모두 낮은 금리에 익숙해졌다.

그동안 시장은 프랑스에 매우 낮은 비용으로 돈을 빌려줬다.

하지만 이제 10년물 국채금리가 5%에 접근했고, 2030년까지 1조달러 이상의 기존 부채를 다시 빌려 갚아야 한다.

중앙은행과 해외 장기투자자의 수요는 줄었고 정치권은 지출삭감을 놓고 분열돼 있다.

프랑스가 지난 반세기 동안 유지해온 '국가가 돈을 풀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초저금리 시대에는 가능했다.

그러나 WSJ은 이제 시장이 그 방식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프랑스가 유로존의 새로운 재정위기 진원지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수십년간 계속된 '마법의 돈'이 더 이상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채권시장이 프랑스 정치권에 점점 더 높은 금리로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 이번 WSJ 보도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