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6 09:44 AM

트럼프, 국방물자생산법까지 동원해 알래스카 전력망 확충...223마일 송전선 건설

By 전재희

알래스카 남중부 벨루가~내륙 힐리 잇는 두 번째 고압 송전망 구축
총사업비 약 4억1,800만달러...美 정부, DPA 통해 최대 1억5,000만달러 투입
알래스카 인구 약 75% 사용하는 '레일벨트' 전력망 안정성 강화
미군기지·광산·자원개발 전력수요까지 겨냥...에너지 인프라를 '국가안보 자산'으로 규정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가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DPA)을 동원해 알래스카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대규모 고압 송전망 건설을 지원한다.

미국이 전력망을 단순한 민간 인프라가 아니라 군사시설과 핵심광물 개발을 뒷받침하는 국가안보 시설로 규정하고 연방정부 자금을 직접 투입하는 것이다.

JD 밴스(JD Vance) 부통령은 5일 알래스카에서 200마일이 넘는 새로운 고압 송전선을 건설하는 '알래스카 레일벨트 송전 프로젝트(Alaska Railbelt Transmission Project)'를 발표했다.

핵심 사업은 알래스카 남중부 벨루가(Beluga)와 내륙의 힐리(Healy)를 연결하는 '벨루가-힐리 송전 프로젝트(Beluga-Healy Transmission Project)'다.

미 에너지부에 따르면 약 223마일, 약 359㎞의 새로운 고압 송전선이 건설된다.

총사업비 4억1,800만달러

미 에너지부가 공식 발표한 잠정 총사업비는 약 4억1,800만달러다.

이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국방물자생산법을 통해 최대 1억5,000만달러를 지원한다.

나머지 2억6,800만달러는 비연방정부 자금으로 조달하는 구조다.

밴스 부통령은 현지 연설에서 프로젝트 규모를 약 4억달러라고 표현했다.

그는 "오늘 우리는 에너지 지배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새로운 송전망이 알래스카 전력 인프라를 크게 확충할 것이라고 밝혔다.

밴스는 200마일 이상의 새로운 송전선을 건설해 알래스카 주민 약 75%의 전력비용을 낮추고 전력망의 신뢰성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알래스카 인구 75%가 사용하는 '레일벨트'

이번 사업을 이해하려면 알래스카의 독특한 전력망 구조를 볼 필요가 있다.

미국 본토 대부분은 거대한 지역 전력망이 서로 연결돼 있다.

하지만 알래스카는 지리적으로 고립돼 있고 도시 간 거리도 멀어 자체적인 전력 시스템에 크게 의존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레일벨트(Railbelt)' 전력망이다.

앵커리지(Anchorage)를 중심으로 남부 케나이반도에서 페어뱅크스(Fairbanks)까지 이어지는 지역으로, 철도와 주요 도로를 따라 알래스카 인구와 산업시설, 군사시설 상당수가 밀집해 있다.

미 에너지부는 이번 송전망이 완성되면 알래스카 전체 인구의 약 75%가 사용하는 지역의 전력비용과 안정성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는 남부와 내륙 연결망에 '병목'

현재 알래스카 레일벨트 전력망에는 구조적인 약점이 있다.

남중부와 내륙지역을 연결하는 대규모 송전경로가 충분하지 않아 특정 송전선에 문제가 생길 경우 대체경로가 제한적이다.

미 에너지부의 2026년 '전국 송전망 수요 연구'에 따르면 알래스카의 기존 레일벨트 시스템은 장거리 저전압 송전선이 많고 시설이 노후했으며 송전용량과 예비경로가 부족하다.

특히 중부와 북부를 연결하는 기존 '알래스카 인터타이(Alaska Intertie)'는 윌로(Willow)에서 힐리까지 약 170마일을 잇는 단일 138kV 송전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벨루가-힐리 프로젝트는 이와 별도로 남중부와 내륙을 연결하는 두 번째 대형 송전경로를 만드는 것이다.

한쪽 발전소 문제 생겨도 다른 지역에서 전력 공급

두 번째 송전망의 가장 큰 목적 가운데 하나가 '중복성(redundancy)'이다.

현재와 같이 주요 지역을 단일 송전경로가 연결하는 구조에서는 산불이나 강풍, 혹한, 설비고장 등으로 송전선에 문제가 발생하면 광범위한 지역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새로운 벨루가-힐리 노선이 만들어지면 전력회사들이 남부와 내륙 사이에서 전기를 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경로를 갖게 된다.

미 에너지부 전력국의 케이티 제레자(Katie Jereza) 차관보는 "알래스카의 날씨는 가혹하며 전력망에는 전기를 계속 이동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싼 전력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 전기료 낮추는 효과

두 번째 송전망은 단순한 비상용 우회선 이상의 의미가 있다.

지역마다 발전비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지역에서 비교적 저렴한 수력이나 다른 발전원이 충분한 전력을 생산하더라도 송전용량이 부족하면 이를 전력이 필요한 다른 지역으로 보낼 수 없다.

새로운 송전선이 만들어지면 발전비가 싼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을 보다 자유롭게 앵커리지와 페어뱅크스 등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알래스카 에너지 당국은 이를 통해 주민과 기업의 전력비용을 낮추고 지역별 전력시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연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왜 국방물자생산법을 전력선에 쓰나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자금조달 방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력망 사업에 국방물자생산법을 적용했다.

DPA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제정된 법으로, 국가안보에 필요한 물자와 산업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한다.

전쟁이나 국가비상사태 때 군수물자 생산을 확대하는 데 주로 사용됐지만 반도체와 핵심광물, 의료물자, 에너지 등으로 적용범위가 확대돼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4월20일 대통령 결정문(Presidential Determination No. 2026-10)을 통해 전력망 인프라와 관련 공급망을 국가방위에 필수적인 산업자원으로 공식 지정했다.

여기에는 변압기와 송전선, 전선, 변전소, 고압 차단기, 전력제어 전자장비, 보호계전시스템 등이 포함됐다.

트럼프 "전력망 자체가 국가안보"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이 필요한 전력망 장비를 시장에만 맡겨서는 충분히 빠르게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4월 대통령 결정문은 미국 내 생산능력 부족과 긴 조달기간, 해외 공급망 의존, 투자 부족 등을 이유로 대통령의 개입 없이는 관련 산업능력을 필요한 시기에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DPA 303조를 활용해 정부가 구매계약과 생산능력 투자, 금융지원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알래스카 송전망은 이러한 정책이 실제 대형 전력 인프라 프로젝트에 적용되는 사례다.

미군의 알래스카 확대와 직접 연결

에너지부는 이번 송전망 사업을 발표하면서 민간 전기요금뿐 아니라 군사적 목적을 전면에 내세웠다.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에너지부 장관은 새로운 송전망이 "현재 알래스카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미군 확장을 지원할 뿐 아니라 국가안보에 중요한 광업과 기타 자원개발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래스카에는 엘먼도프-리처드슨 합동기지(Joint Base Elmendorf-Richardson), 아일슨 공군기지(Eielson Air Force Base), 포트 웨인라이트(Fort Wainwright) 등 주요 군사시설이 집중돼 있다.

북극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중국의 전략경쟁이 심화되면서 알래스카의 군사적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이들 기지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송전망 역시 국방 인프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핵심광물 개발에도 필요한 전기

광업과 자원개발도 중요한 배경이다.

알래스카에는 금과 아연을 비롯해 미국이 전략적으로 확보하려는 여러 광물자원이 존재한다.

그러나 광산은 대규모 전력을 사용하는 산업이다.

채굴뿐 아니라 분쇄, 선별, 가공설비를 가동하려면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필요하다.

외딴 지역에서 대규모 광산을 개발하려면 발전시설을 별도로 건설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사업비가 급격히 올라간다.

송전망을 확대해 기존 전력시스템과 새로운 자원개발 지역을 연결하면 향후 광산과 산업 프로젝트의 경제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판단이다.

알래스카 LNG 등 대규모 개발과도 맞물려

트럼프 행정부는 알래스카를 미국 에너지·자원 전략의 핵심지역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 북부의 천연가스를 남부 해안으로 운송해 액화천연가스(LNG)로 수출하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광산과 천연가스, 군사시설,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개발사업이 현실화될수록 레일벨트 전력망에 필요한 전력수요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송전망 투자는 단순히 현재 주민들의 전기수요를 처리하는 것을 넘어 향후 알래스카에서 추진될 대규모 개발사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전력 인프라를 먼저 확충하는 성격도 갖고 있다.

1억5,000만달러가 곧바로 건설비로 투입되는 것은 아냐

다만 이번 발표만으로 즉시 223마일 송전선 공사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알래스카 에너지 당국의 커티스 세이어(Curtis Thayer) 사무총장은 지역매체 알래스카 비컨에 새 연방자금 상당 부분이 우선 엔지니어링과 설계, 인허가 등에 사용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현재 프로젝트의 실제 건설은 2030년 이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따라서 현재 발표는 대규모 송전망을 실제 건설 단계로 끌고 가기 위한 연방정부의 초기 자금 투입에 가깝다.

나머지 2억6,800만달러 조달도 과제

에너지부는 전체 사업비 4억1,800만달러 가운데 2억6,800만달러를 '비연방 자금(non-federal funding)'으로 설명했다.

다만 알래스카 에너지 당국은 실제 나머지 자금조달 구조가 아직 완전히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세이어 사무총장은 주정부 자금이나 다른 보조금, 알래스카 에너지 당국의 대출 등이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번 1억5,000만달러 지원은 전체 프로젝트를 완전히 충당하는 건설비가 아니라 다른 자금을 끌어오기 위한 핵심 종잣돈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당초에는 자금조달이 불투명했던 사업

벨루가-힐리 송전망 구상 자체는 새롭게 나온 것이 아니다.

알래스카 에너지 당국은 수년 동안 레일벨트 전력망 현대화 계획의 하나로 새로운 인터타이를 검토해왔다.

2025년 알래스카 에너지 당국 자료에서도 'New Intertie Beluga-Healy'는 필요한 신규 프로젝트로 분류돼 있었지만 당시에는 자금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번에 DPA 자금이 투입되면서 오랫동안 계획단계에 있던 프로젝트가 실제 사업 추진을 위한 중요한 전기를 맞게 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DPA를 에너지정책 수단으로 확대

트럼프 행정부가 국방물자생산법을 에너지 분야에 활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행정부는 전력망 장비와 핵심광물, 에너지 생산능력을 국가안보와 연결하면서 DPA의 적용범위를 확대해왔다.

폭스비즈니스는 올해 트럼프 행정부가 캘리포니아 앞바다에서 중단됐던 석유생산시설의 재가동을 명령하는 과정에서도 DPA를 활용했다고 전했다.

이번에는 송전망 자체를 국가방위에 필수적인 시설로 규정하고 연방정부가 자금을 투입한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에너지 안보'와 '국가안보'를 사실상 하나의 정책 틀에서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DPA 에너지 사업에 연방자금 10억달러 확보

미 에너지부에 따르면 의회가 통과시킨 세제·재정법안을 통해 국가안보상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에너지 프로젝트에 총 10억달러의 연방자금이 배정됐다.

알래스카의 1억5,000만달러 지원도 이 재원에서 나온다.

앞으로 다른 송전망과 변압기, 전력장비 생산시설 등에도 같은 방식의 DPA 자금이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

주민 전기료와 국가안보를 동시에 내세운 프로젝트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사업에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부여하고 있다.

첫 번째는 알래스카 주민의 전력비용을 낮추고 정전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군기지와 광산, 에너지·자원개발 프로젝트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즉 일반적인 전력망 현대화 사업을 국가안보 투자와 결합한 것이다.

에너지부는 벨루가-힐리 송전선이 완성되면 알래스카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한 지역과 주요 군사시설 사이에 추가적인 전력 이동경로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알래스카 전력망의 가장 큰 약점 '하나뿐인 길'

알래스카처럼 장거리 송전망이 제한된 지역에서는 전기를 얼마나 생산하느냐만큼 이를 어디까지 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대형 발전소에서 싼 전기를 생산해도 송전선이 부족하면 다른 지역 주민은 그 전력을 사용할 수 없다.

하나뿐인 주요 송전선이 고장 나면 우회할 방법도 제한된다.

이번 223마일 벨루가-힐리 송전망은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 번째 전력 고속도로에 해당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DPA까지 동원한 배경에는 전력망의 안정성이 주민 생활뿐 아니라 알래스카의 미군기지와 광산, 향후 자원개발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총사업비 약 4억1,800만달러 가운데 연방정부가 투입하는 최대 1억5,000만달러는 단순한 지역 인프라 지원이 아니라 미국이 알래스카 전력망을 국가안보 인프라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앞으로 실제 인허가와 나머지 사업비 조달, 공사 일정이 확정돼야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수년간 계획단계에 머물렀던 벨루가-힐리 송전 프로젝트는 본격적인 추진을 위한 첫 대규모 연방자금을 확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