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7 07:37 AM
By 전재희
美 국무부, 비공개 외교문서 '데마르슈' 전달...국제보건규칙에 따른 정보공개 촉구
이르쿠츠크 페스트 연구소 28세 여성 직원, 원인불명 폐렴으로 사망...약 200명 한때 격리
러시아 "업무 관련 병원체 발견 안 돼"...WHO도 "현재 이르쿠츠크 페스트 확인 사례 없어"
WHO, 러시아 밖 확산 위험 "매우 낮다"...사망자 본인의 정확한 검사결과는 여전히 불분명
미국은 러시아의 옛 소련 생물무기 프로그램까지 거론...1979년 스베르들롭스크 탄저균 사고 기억도 재부상
미국 정부가 러시아 시베리아의 페스트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던 연구원이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폐렴으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러시아 정부에 보다 상세한 정보를 공개하라고 공식 압박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국무부가 러시아 측에 비공개 외교문서인 '데마르슈(démarche)'를 전달해 이번 사건에 관한 정보공개가 충분하지 않으며 국제보건상의 의무에 따라 보다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가 특히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사망자가 페스트 등 위험 병원체를 연구하는 기관에서 근무했다는 점과, 사망 나흘이 지나도록 러시아가 정확한 사망원인과 실시한 검사 종류, 결과를 충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여성이 페스트에 감염됐거나 연구소에서 병원체가 유출됐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접촉자들에게서 페스트를 비롯한 위험 병원체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WHO에 통보했고, 세계보건기구(WHO)도 현재 러시아 밖으로 질병이 확산될 위험을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사망자는 현지 언론에서 다리야 시필로바(Darya Shipilova)로 확인된 28세 여성 연구원이다.
그녀는 러시아 시베리아 이르쿠츠크에 위치한 '이르쿠츠크 항페스트 연구소(Irkutsk Anti-Plague Research Institute)'에서 근무했다.
시필로바는 지난 2일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폐렴 증상으로 숨졌다.
러시아 보건당국은 초기 대응 과정에서 그녀와 접촉한 사람 약 200명을 의료관찰 또는 격리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상당수는 검사결과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격리가 해제됐다.
이 기관은 이름 그대로 페스트를 비롯한 위험 감염병을 연구하는 곳이다.
1934년 스탈린 시대에 설립됐으며 이후 페스트뿐 아니라 콜레라와 탄저병, 브루셀라증 등 심각한 감염병을 연구·감시해왔다.
이 때문에 연구소 직원의 갑작스러운 사망 자체가 국제적인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러시아 측은 연구소 업무가 사망 원인이라는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이르쿠츠크 주지사 이고리 코브제프(Igor Kobzev)는 시필로바의 시신에 대한 광범위한 실험실 검사가 실시됐으며 "그녀의 직업적 활동과 관련된 미생물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소비자보호·보건감독청 로스포트레브나조르(Rospotrebnadzor) 역시 접촉자들을 검사한 결과 페스트를 비롯한 심각한 감염병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일부 접촉자에게서 코로나19와 리노바이러스 등 일반적인 호흡기 바이러스가 확인됐지만 페스트균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WHO에도 현재 이르쿠츠크 지역에서 확인된 페스트 환자가 없다고 통보했다.
문제는 사망한 시필로바 본인에게 어떤 검사가 실시됐는지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러시아는 WHO에 접촉자들에게서 페스트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시필로바 본인이 실제로 페스트 검사를 받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음성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 때문에 미국은 "페스트가 아니다"라는 러시아 측 발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정확한 검사방법과 검사결과, 사망자가 어떤 병원체에 노출됐는지 여부, 접촉자 범위와 방역조치 등이다.
마코 루비오(Marco Rubio) 미 국무장관은 6일 러시아가 제공한 정보가 아직 매우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루비오는 아이슬란드에서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가 더욱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해야 국제사회가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촉구했다.
그는 현재 상황을 두고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며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아직 판단할 수 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루비오는 미국뿐 아니라 국제기관들도 이 사건을 계속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미국 정부 역시 현재 대규모 감염병 발생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해소할 만큼의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WSJ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러시아 정부에 공식적인 '데마르슈'를 전달했다.
데마르슈는 정부가 다른 국가에 공식 입장이나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외교적 의사표시다.
공개 성명보다 직접적이지만 반드시 일반 대중에게 내용이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조치는 미국 정부가 이번 사건을 단순히 러시아 국내 보건문제로만 보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전염병이 국경을 넘어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면 국제적인 정보공개 의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WHO의 국제보건규칙(International Health Regulations·IHR)이다.
2005년 채택된 IHR은 국경을 넘어 확산할 가능성이 있는 공중보건 위협에 대해 국가들이 WHO와 정보를 공유하도록 규정하는 국제법적 체계다.
국가는 자국 내에서 발생한 사건이 국제적인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평가 후 24시간 이내에 WHO에 통보해야 한다.
초기 통보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가능한 경우 질병의 정의와 실험실 검사결과, 위험원의 종류와 원인, 환자와 사망자 수, 확산에 영향을 주는 조건, 정부가 취한 보건조치 등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다만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미국이 러시아의 정보공개가 국제적 의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압박하고 있지만, 현재 WHO가 러시아의 IHR 위반을 공식적으로 판정했다는 발표는 없다.
러시아는 WHO의 질의에 답했고 현재 이르쿠츠크에 페스트 확진사례가 없다고 통보했다. WHO 역시 해당 정보를 공개했다.
따라서 현재 쟁점은 러시아가 전혀 보고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제공한 정보가 충분한가에 더 가깝다.
WHO의 현재 평가는 비교적 차분하다.
WHO는 이번 사건이 러시아 밖의 일반 대중에게 미치는 위험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
러시아가 제공한 자료상 이르쿠츠크에서 확인된 페스트 환자는 없으며 시필로바와 접촉한 사람들에게서도 위험 병원체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단계에서 코로나19 초기와 같은 대규모 국제적 전염병 사태를 예상할 근거가 없다는 의미다.
미국 관리들도 이번 사건이 코로나19와 같은 전염성을 가진 대규모 유행으로 발전할 징후는 현재 없다고 보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페스트는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라는 세균에 의해 발생한다.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을 일으켰던 바로 그 세균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다.
문제는 폐에 감염되는 폐페스트(pneumonic plague)다.
폐페스트는 적절한 치료가 빠르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치명적일 수 있고 사람 사이에서도 호흡기 비말을 통해 전염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위험병원체를 다루는 연구소 직원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보건당국이 경계해야 할 사안이다.
시베리아에서 페스트균이 발견되는 것 자체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몽골과 중국에 인접한 시베리아 일부 지역에는 설치류 등을 통해 페스트균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풍토병 지역이 있다.
사람이 감염된 설치류나 벼룩과 접촉하면서 산발적인 감염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시필로바가 페스트에 감염됐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연구소 유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험실과의 연관성, 자연환경에서의 노출 여부 등은 별도의 역학조사가 필요한 문제다.
현재 러시아 당국은 그녀의 업무와 관련된 병원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미국 정부의 높은 관심을 받는 배경에는 소련과 러시아의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둘러싼 오랜 불신도 있다.
미 국무부는 러시아가 옛 소련의 공격용 생물무기 연구·개발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았다고 오랫동안 평가해왔다.
국무부가 공개한 2024년 군축협정 준수보고서에서도 미국 정부는 소련의 생물무기 프로그램이 러시아에 의해 "흡수됐으며 폐기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러시아가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 따른 의무를 완전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 정부의 평가이며 러시아는 자국이 불법적인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주장을 부인해왔다.
이 점 역시 이번 사건과 구분해야 한다.
미국 정부가 러시아의 군사 생물학 프로그램에 오랫동안 의혹을 제기해왔다는 사실과 이르쿠츠크 항페스트 연구소가 생물무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공개된 정보에서는 이번 사건이 생물무기 연구와 관련됐다는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이르쿠츠크 연구소는 감염병 감시와 진단, 연구를 수행하는 공중보건 연구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러시아의 과거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근거로 이번 사망사건 자체를 생물무기 사고라고 연결하는 것은 현재 확인된 증거를 넘어선 해석이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설명에 대한 불신이 큰 데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1979년 당시 소련 스베르들롭스크에서 탄저균이 대규모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재의 도시 이름은 예카테린부르크다.
당시 소련 정부는 주민들이 오염된 고기를 먹어 발생한 자연적인 감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러시아 대통령은 군사시설에서의 생물학 연구와 관련된 사고였음을 인정했다.
이 사건은 소련이 대규모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운영했다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위험병원체 연구시설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서방국가들이 높은 수준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WSJ은 이번 사건을 두고 코로나19 초기 중국 정부의 정보공개 문제와 비교하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두 사건 사이에는 현재 단계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코로나19는 이미 사람 사이에서 빠르게 전염되고 있었지만 현재 이르쿠츠크 사건에서는 사망자와 접촉한 사람들 사이에서 페스트 확진사례가 확인되지 않았다.
WHO도 국제적인 확산위험을 매우 낮게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판 코로나 사태'와 같은 표현을 사용할 단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러시아 주변 국가들은 예방적 대응에 나섰다.
시베리아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불안이 확산됐고, 인접한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공항과 국경에서 보건·검역 조치를 강화했다고 WSJ은 전했다.
이르쿠츠크 지역은 몽골과 비교적 가까우며 시베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자연적으로 페스트균이 발견된다.
특히 러시아 당국의 정보공개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황이 주변국의 예방조치를 강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미국이 필요하다면 러시아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백악관에서 이번 사건이 러시아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미국이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측은 이에 대해 미국 내 홍역 등 감염병 대응에도 러시아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다음 단계로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기보다는 공식 외교채널을 통해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이번 사건은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복잡한 시점에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과 곧 통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두 정상은 우크라이나전쟁 종식을 둘러싼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보건문제가 미·러 관계의 새로운 갈등요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는 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보고받고 있는 내용에 대해 추가 정보를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 공개된 미 정보당국의 평가에서도 실험실 유출이나 페스트 감염이 확인됐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페스트가 확인됐느냐보다 정확히 무엇이 발생했는지가 아직 완전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확인된 것은 다음과 같다.
28세 연구원이 원인불명의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페스트와 탄저병 등 위험 감염병을 다루는 연구기관에서 근무했다.
약 200명의 접촉자가 한때 의료관찰 또는 격리조치를 받았다.
접촉자들에게서는 현재까지 페스트 등 위험 병원체가 확인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연구업무와 관련된 미생물이 사망자에게서 검출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WHO도 현재 러시아 밖으로 확산될 위험을 매우 낮게 평가한다.
그러나 사망자에게 정확히 어떤 검사를 실시했고 무엇을 배제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자료는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
바로 이 정보의 공백이 미국의 압박과 국제사회의 의구심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은 사망 원인에 대한 추측이다.
시필로바가 페스트 연구소에서 일했다는 사실 때문에 온라인에서는 실험실 사고와 페스트균 노출, 다른 위험 병원체 감염 등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로이터가 확인한 현재 자료에서는 그녀의 사망이 페스트나 연구실에서의 병원체 노출과 연결됐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 가장 정확한 표현은 '위험병원체 연구기관 직원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으로 사망했으며 당국이 정확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미국의 요구 역시 러시아가 페스트 유출을 은폐하고 있다고 이미 결론 내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루비오 장관의 발언처럼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위험병원체를 취급하는 기관에서 직원이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주변 사람을 대규모로 관찰해야 했다면 국제사회가 객관적으로 위험을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료가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WHO 국제보건규칙도 바로 이런 상황에서 국가 간 정보공유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향방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정보는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느냐뿐 아니라 러시아가 사망자의 구체적인 검사결과와 역학조사 내용을 얼마나 공개하느냐다.
현재까지는 페스트 확산을 보여주는 증거가 없다.
그러나 미국은 러시아의 과거 생물무기 프로그램과 정보 비공개의 역사를 고려할 때 러시아 당국의 단순한 "문제없다"는 발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러시아가 구체적인 실험실 검사결과를 공개한다면 이번 사건은 제한적인 원인불명 폐렴 사망사건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정보공개가 계속 제한되거나 추가 감염사례가 확인된다면, 시베리아의 한 연구원 사망사건은 미·러 외교갈등을 넘어 국제적인 생물안보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