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7 10:20 AM
By 전재희
아크로폴리스 바라보는 프닉스 언덕서 연설..."국경 열고 산업 해외로 보내고 군사력 약화"
"민족주의는 더러운 단어가 됐고 역사를 부끄러워하도록 가르쳤다"
서구 쇠퇴는 불가피한 운명 아닌 '선택' 강조...유럽에 주권·문화·국방 회복 촉구
로이터 "고대 그리스 가치와 '아메리카 퍼스트' 연결"...폭스뉴스는 "유세연설 같은 분위기" 평가
루비오·밴스, 공화당의 2028년 포스트 트럼프 구도에서 계속 거론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미국 국무장관이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국경과 세계주의, 산업 공동화가 서구의 힘을 약화시켰다며 미국과 유럽이 국가주권과 자국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루비오는 7일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이 내려다보이는 아테네의 프닉스(Pnyx) 언덕에서 연설하며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애국심, 국가에 대한 의무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외교정책과 연결했다.
로이터는 루비오가 고대 그리스의 영웅주의와 명예,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철학을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폭스뉴스는 이날 연설이 전통적인 국무장관의 외교정책 연설이라기보다 때로는 선거 유세연설에 가까운 분위기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루비오는 서구가 지난 수십년 동안 스스로 힘을 약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국경을 열었고 산업을 해외로 보냈으며 우리의 군대가 약해지고 쇠퇴하도록 내버려뒀다"고 말했다.
이어 민족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됐으며 서구사회가 자국 역사와 전통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국가적 자신감까지 잃었다고 주장했다.
루비오는 "민족주의라는 단어는 더러운 단어가 됐다"며 서구사회가 기념물을 철거하고 자국 역사를 비난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물려받을 나라를 부끄러워하도록 가르치는 상황까지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가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권한을 국제기구와 초국가적 관료조직에 지나치게 넘겼다고 비판했다.
이번 연설의 핵심은 트럼프 행정부가 줄곧 강조해온 '국가주권'이었다.
루비오는 국가가 국민에게 직접 책임지는 정치체제가 국제적 관료기구에 의사결정을 넘기는 체제보다 민주주의에 더 충실하다는 논리를 폈다.
로이터는 이번 연설을 루비오가 고대 그리스의 가치와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를 직접 연결한 연설로 평가했다.
루비오는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고 국민이 자신의 나라를 지키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이 같은 주장은 지난 2월 독일 뮌헨안보회의 연설과도 연결된다.
당시 백악관은 루비오가 유럽에 국가주권을 되찾고 대규모 이민과 세계주의적 제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서구의 공동 문화유산을 다시 강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설명했다.
루비오는 서구가 내부적으로 자신감을 잃는 동안 경쟁국들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구의 자신감이 흔들리는 동안 우리의 적과 경쟁자들은 더욱 대담해졌다"고 말했다.
현재 국제정세를 그는 하나의 '변곡점(inflection point)'으로 표현했다.
루비오는 고대 그리스가 외세의 침입에 맞서 싸웠던 시대를 언급하면서 오늘날 서구가 직면한 위협도 당시 못지않게 실제적이라고 주장했다.
"전쟁이 다시 돌아왔다. 강대국 경쟁도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로이터 역시 루비오가 앞으로 10년이 향후 한 세기 동안 서구의 세계적 위치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루비오는 특히 현재 미국과 전쟁 중인 이란을 언급했다.
그는 이란의 급진적 종교지도자들을 비판하면서 서구사회와 이란 정권 사이에는 인간 생명과 희생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가치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루비오는 서구의 영웅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죽음을 감수할 수 있지만 "우리의 영웅들은 죽음 자체를 숭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미국과 이란 사이의 전쟁을 단순한 군사·핵 문제만이 아니라 가치와 문명을 둘러싼 경쟁으로 설명하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루비오는 연설 장소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연설이 열린 프닉스 언덕은 고대 아테네 시민들이 모여 정치적 결정을 내렸던 장소로, 현대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뒤편에는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이 보였다.
루비오는 파르테논이 약 2,500년 동안 수많은 제국의 흥망을 지켜봤다고 말하며 미국 공화국 역시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정치·문화적 전통을 계승했다고 주장했다.
AP 역시 루비오가 민주주의와 국가에 대한 충성, 국가이익의 방어를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서구의 핵심 가치로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루비오가 반복적으로 강조한 단어는 '쇠퇴(decline)'였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가 다시 일어섰던 역사를 언급하며 서구의 쇠퇴가 역사적으로 예정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전쟁 직후 유럽은 폐허가 됐고 공산주의 혁명이 확산하면서 서구의 시대가 끝났다는 전망이 많았지만 미국과 유럽은 NATO와 자유시장, 국가방위를 통해 이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지도자들이 "쇠퇴는 선택이라는 사실을 이해했고 그 선택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현재에도 같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루비오의 메시지였다.
루비오는 유럽에 대한 메시지도 상당히 직접적이었다.
그는 미국은 유럽 동맹국들이 자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의 문화와 유산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미국과 같은 문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그것을 방어할 능력과 의지를 갖추기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루비오는 "우리는 동맹국들이 죄책감과 수치심에 묶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유럽을 향해 반복하고 있는 메시지와 일치한다.
백악관은 지난 2월 뮌헨 연설에서도 루비오가 유럽에 "공동의 문화유산"을 되찾고 군사적·경제적으로 보다 자립적인 대륙이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설명했다.
루비오는 미국이 기존 국제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는 '관리자' 역할을 계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미국이 "서구의 관리된 쇠퇴를 정중하고 질서 있게 관리하는 역할"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대신 기존 동맹을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고 다시 활성화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NATO와 유럽연합, 국제기구 자체를 반드시 해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부담하는 비용과 국가주권의 범위를 다시 조정하겠다는 논리와 연결된다.
AP는 루비오가 이번 유럽 순방에서 NATO 동맹에 대한 미국의 안보공약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유럽에 더 큰 책임을 요구하는 두 가지 메시지를 함께 전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루비오는 유럽을 전적으로 비관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았다.
그는 "유럽이 긴 잠에서 깨어나 수천년 전 이곳에서 타올랐던 불꽃을 다시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 전역에서 세대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루비오가 구체적으로 어떤 정치세력이나 국가를 지칭하는지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의 발언은 최근 유럽에서 강화되고 있는 국가주권과 이민통제, 방위비 확대 움직임 등을 포괄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민 문제는 이날 별도의 외교 일정에서도 등장했다.
루비오는 그리스가 지리적 위치 때문에 대규모 이주와 인신매매 등 여러 안보위협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를 "강력하고 모범적인 NATO 동맹국"이라고 평가하면서 미국과 그리스가 테러와 조직범죄 관련 정보공유를 확대하는 새로운 협력체계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그리스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동하는 주요 이주경로 가운데 하나에 위치해 있어 국경과 이민 문제에 민감한 국가다.
루비오의 그리스 방문이 정치적 메시지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미국과 그리스는 이번 방문을 계기로 대테러 정보공유와 법집행 협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양국은 테러와 초국가적 범죄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정보를 보다 긴밀하게 공유하기로 했다.
루비오는 세계적으로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그리스가 미국에 "불안정한 세계 속의 안정의 원천"이라고 평가했다.
그리스는 동부 지중해의 NATO 군사전략과 유럽의 에너지 공급망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재 중동전쟁과 관련한 논의도 있었다.
그리스 외무장관 요르고스 게라페트리티스(Giorgos Gerapetritis)는 실현 가능한 평화프로세스가 마련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안보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스는 이미 홍해에서 유럽연합(EU)의 해상안보 임무에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방문은 서구문명과 국가주권이라는 정치적 메시지와 함께 중동전쟁, 에너지 수송로, NATO 동맹을 둘러싼 현실적인 안보협상을 동시에 진행한 일정이었다.
폭스뉴스가 이번 연설을 "campaign-ready", 즉 선거 유세에 나설 준비가 된 듯한 연설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외교 현안보다 미국 국내정치에서 익숙한 주제가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열린 국경 비판, 산업 해외이전, 민족주의의 복권, 세계주의 비판, 역사와 국가에 대한 자부심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미국 공화당의 국내 정치 메시지와 상당 부분 겹친다.
다만 루비오가 이날 연설에서 2028년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계획을 밝힌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연설을 '2028 대선 출정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사실보다는 정치적 해석에 해당한다.
루비오가 차기 공화당 지도부 논의에서 주요 인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로이터는 지난달 공화당 내부에서 트럼프 이후의 당 노선을 둘러싼 논의가 이미 시작됐으며 JD 밴스(JD Vance) 부통령과 루비오가 대표적인 차세대 인사로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보도에서는 밴스가 트럼프식 포퓰리즘과 비개입주의 노선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인물로, 루비오는 보다 전통적인 공화당 외교·안보 경력과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주의적 노선을 결합한 인물로 평가됐다.
그러나 현재 어느 인물도 2028년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것은 아니며 당내 구도 역시 아직 형성 단계다.
이번 아테네 연설은 루비오가 갑자기 새로운 노선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뮌헨안보회의에서도 그는 유럽이 자신의 문화적 뿌리와 국가주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비슷한 메시지를 내놨다.
백악관은 당시 연설을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대서양동맹 구상을 보여주는 연설로 규정하면서 대규모 이민과 지나친 초국가적 제도, 군사적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강조했다.
아테네에서는 이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켜 고대 그리스와 현대 미국을 하나의 서구문명 계보 안에 넣었다.
루비오가 전달하려 한 또 하나의 메시지는 '아메리카 퍼스트'가 동맹 해체나 고립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강한 국가들이 자신의 이익과 주권을 지키면서 협력하는 것이 오히려 더 건강한 동맹을 만든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로이터는 루비오가 이번 순방에서 아이슬란드와 그리스, 포르투갈 등 NATO 동맹국을 방문해 안보와 에너지, 무역협력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국가주권 중심의 트럼프 외교철학을 설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국제기구가 국가 위에 서는 방식의 세계주의는 거부하지만 주권국가 사이의 동맹과 협력은 유지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연설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루비오가 서구의 문제를 단순한 경제력이나 군사력의 상대적 쇠퇴로만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가 제시한 원인은 국경통제 약화, 제조업 해외이전, 군사력 축소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신감 상실이었다.
즉 미국과 유럽의 문제를 GDP 성장률이나 국방예산만으로 설명하기보다 '서구가 스스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잊었다'는 문명적 위기로 규정한 것이다.
이런 접근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정책에서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루비오가 아테네에서 전달한 최종 메시지는 비교적 단순하다.
국경을 지키고 산업과 군사력을 회복하며 국가가 스스로 결정할 권한을 되찾고,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다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서구가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거부했다.
전후 유럽이 폐허에서 다시 일어난 것처럼 지금의 위기 역시 정치적 선택을 통해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AP는 루비오가 향후 10년을 서구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시기로 규정하며 민주주의와 국가주권, 공동의 문화유산을 다시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루비오의 아테네 연설이 앞으로 미국 외교정책의 장기적 방향으로 자리 잡을지, 또는 공화당의 차세대 정치노선을 규정하는 메시지로 발전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국무장관의 연설이 기존의 외교·안보 현안을 넘어 국경과 이민, 국가정체성, 역사, 세계주의를 아우르는 정치적 선언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는 점이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 탄생지에서 루비오가 던진 메시지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서구가 약해진 가장 큰 이유를 외부의 적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서 찾아야 하며, 그 선택을 다시 뒤집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