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8 09:49 AM
By 전재희
마이크로소프트·어도비·인포시스 등 주요 IT기업 PERM 노동인증 절차 중단
밴스 "미국인 해고하고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심각"
기존·신규 노동인증 모두 처리 중단...H-1B 비자 자체 취소와는 별개
"미국인을 먼저 고용하라는 메시지"...트럼프 행정부, 취업이민 제도 전면 재검토
하버드·예일·스탠퍼드 등 9개 대학 J-1 비자 사용도 조사
JD 밴스(JD Vance) 미국 부통령이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어도비(Adobe)를 비롯한 대형 기술기업들이 미국인 근로자를 외국인 전문인력으로 대체하기 위해 취업이민 제도를 악용해왔다고 주장하며 이들 기업의 고용기반 영주권 신청 절차를 중단시키겠다고 밝혔다.
밴스는 8일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사기 단속 조치를 발표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를 가장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미국인 근로자를 해고하면서 동시에 H-1B 비자를 통해 외국인 전문인력을 대거 고용했다고 주장하며 "이 시스템을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더 심하게 악용한 회사는 없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H-1B 비자 자체를 취소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외국인 직원을 미국 영주권자로 전환하기 위해 이용하는 영구노동인증제도(Permanent Labor Certification), 이른바 PERM 절차를 중단시키는 것이다. 미 노동부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대상 기업들의 신규 PERM 신청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인 신청 역시 처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밴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미국인을 해고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해왔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미국인 근로자 한 명을 해고할 때마다 외국인 계약노동자 1.5명으로 대체했다"는 취지로 말하며, 현재의 취업비자 제도가 미국 기업의 인력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에서 값싼 외국인 노동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AP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약 6,000명을 감원하는 동시에 약 6,300건의 H-1B 비자를 확보하고 약 3,000건의 영주권 관련 절차를 진행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행정부는 이런 고용 패턴이 H-1B와 고용영주권 제도가 본래 취지와 다르게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입장이다.
밴스는 "마이크로소프트는 훌륭한 미국 기업"이라면서도 기업이 미국 노동자를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행정부가 마이크로소프트 자체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을 먼저 고용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재 대상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어도비에 그치지 않는다. 키스 손더링(Keith Sonderling) 노동장관은 코그니전트(Cognizant), 인포시스(Infosys), 타타(Tata), 위프로(Wipro), HCL, 캡제미니(Capgemini) 등 세계적인 IT 서비스·아웃소싱 기업들도 PERM 프로그램 참여가 중단된다고 밝혔다.
손더링은 이들 기업이 관련된 새로운 영구노동인증 신청은 물론 이미 제출돼 심사 중인 신청도 노동부가 처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인포시스와 타타, 위프로, HCL, 코그니전트 등은 미국 IT산업에서 H-1B 비자를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해온 기업들로 꼽힌다. 이들 기업은 미국 기업의 정보기술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면서 인도 등 해외에서 전문인력을 데려오는 사업모델을 광범위하게 사용해왔다.
이번 조치를 이해하려면 H-1B와 PERM의 차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H-1B는 대학 학위 수준의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직종에 외국인을 일정 기간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임시 취업비자다. 반면 PERM은 기업이 외국인 직원을 고용기반 영주권으로 전환하기 위해 거치는 노동부 인증절차다.
PERM을 신청하려는 기업은 해당 직책에 자격을 갖춘 미국 근로자가 없거나 채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노동시장 모집절차를 통해 입증해야 한다. 노동부가 이를 인증한 뒤에야 고용주는 이민당국에 대부분의 취업이민 영주권 청원을 진행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발표가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의 H-1B 비자를 즉시 취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H-1B 등 임시비자로 근무하다 회사의 스폰서를 통해 영주권을 받으려는 직원에게는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특히 문제 삼는 부분은 기업들이 PERM 절차에서 실시하는 미국인 채용과 실제 일반 채용 사이에 차이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PERM의 기본 취지는 기업이 먼저 미국 노동시장에서 해당 직무를 수행할 사람을 찾고, 적합한 미국인이 없을 경우에만 기존 외국인 직원을 영주권자로 전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정부는 일부 기술기업들이 사실상 이미 특정 외국인 직원을 영주권자로 만들기로 결정한 뒤 미국인 지원자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형식적인 채용공고만 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채용에서는 회사 홈페이지와 온라인 지원시스템을 이용하면서 PERM용 채용에서는 상대적으로 제한된 매체에 광고하거나 우편지원만 허용하는 등의 방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런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 법무부는 지난 8월 오픈AI(OpenAI)와 자회사 스탯시그(Statsig)가 PERM 채용과정에서 미국인 근로자를 차별했다고 판단해 총 320만달러 규모의 합의를 체결했다.
법무부 조사에 따르면 오픈AI는 일반적인 채용공고는 회사의 외부 채용사이트에 올리면서 일부 PERM 관련 일자리는 같은 방식으로 공개하지 않았으며, 일반 구직자에게는 전자지원이 가능했지만 해당 직책에는 우편지원 등을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무부는 이를 미국인 지원자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어 임시 취업비자를 가진 기존 외국인 직원에게 유리하게 만든 행위라고 판단했다. 오픈AI는 합의에 따라 120만달러의 민사벌금을 내고 피해 근로자를 위한 200만달러 규모의 보상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미국 노동자 보호 이니셔티브'를 다시 가동한 이후 취업비자를 가진 외국인을 우대하고 미국 시민권자나 합법적 근로자를 차별하는 채용행위를 집중 단속해왔다. 법무부에 따르면 오픈AI 사건은 해당 이니셔티브 재가동 이후 13번째 합의였다.
밴스는 이번 조치를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H-1B 제도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보고 있다.
그는 이전부터 H-1B 프로그램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해왔으며 필요할 경우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방안에도 찬성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H-1B는 1990년 의회가 만든 제도로 미국 기술기업과 스타트업이 해외의 엔지니어와 과학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전문인력을 채용할 수 있는 주요 통로가 돼왔다. 실리콘밸리의 대형 기술기업 상당수가 이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그러나 공화당 내부에서는 기업들이 진짜 인재부족 때문에 H-1B를 쓰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고용관계가 기업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은 외국인 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해 제도를 사용한다는 비판이 계속돼왔다.
H-1B와 PERM 사이의 중요한 차이도 밴스가 문제 삼는 부분이다.
H-1B 고용에서는 일반적으로 기업이 해당 일자리를 맡을 수 있는 미국인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먼저 입증할 필요가 없다. 일정한 전문직 요건과 임금 등 법적 조건을 충족하면 외국인 전문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기반 영주권 단계에서는 기업이 노동시장 검증을 실시해야 한다. 해당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미국인 근로자가 있는지를 실제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부 기업들이 바로 이 단계에서 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해 이미 고용하고 있는 H-1B 근로자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술업계는 반대로 수년 동안 특정 프로젝트와 시스템을 담당해온 직원과 완전히 같은 기술과 경험을 가진 미국인을 단기간에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기업들은 자신들이 연방법과 노동부의 PERM 규정을 따르고 있을 뿐이라는 입장도 펴고 있다.
다만 행정부가 특정 기업을 PERM 절차에서 영구적으로 즉시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WSJ에 따르면 노동부가 기업의 고용기반 영주권 절차 참여 자격을 중단시키려면 해당 기업에 혐의와 조치 내용을 알리고 기업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이번 조치 역시 행정부의 일방적인 최종 유죄판정이라기보다 노동부의 행정집행과 조사절차의 일부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어도비는 WSJ과 로이터의 즉각적인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면 가운데 하나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강경조치가 발표된 바로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에게 국가기술혁신훈장(National Medal of Technology and Innovation)을 수여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밴스는 이 점에 대해 모순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행정부가 마이크로소프트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표적인 기술기업으로 계속 성공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를 계속 지원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회사가 미국 노동자를 우선하는 데 진지한 태도를 보일 때까지 영주권 관련 신청능력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즉 트럼프 행정부가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적 성과와 미국 기업으로서의 가치는 인정하면서도 노동·이민정책에서는 별도로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이민정책이 불법이민 단속에서 합법 취업이민으로까지 빠르게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밴스가 강조하는 원칙은 '미국 기업은 먼저 미국인을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숙련 외국인 이민 자체를 전면적으로 반대한다기보다 외국인 고용 때문에 미국 근로자의 임금과 취업기회가 줄어드는 구조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주장이다.
밴스는 자신의 부인 우샤 밴스(Usha Vance)의 부모가 인도 출신 이민자라는 점을 언급하면서도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은 출신국이나 기존 공동체보다 미국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지난 4월 그는 "이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모두가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정부의 단속은 기술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밴스는 하버드(Harvard), 예일(Yale), 스탠퍼드(Stanford) 등을 포함한 미국 대학 9곳의 J-1 비자 프로그램 사용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행정부는 대학들이 국제학생과 연구자를 이용해 미국인 대학원생과 연구자의 임금을 낮추고 있는지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감찰관 앤서니 데스포지토(Anthony D'Esposito)는 해당 대학들에 이미 소환장이 발부됐다고 밝혔다. 그는 외국 정부의 영향력이나 부적절한 금융관계, 비자 남용이 연방정부 지원 연구를 훼손하고 있는지도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단계에서 대학들이 실제로 법을 위반했다는 최종 판단이 내려진 것은 아니며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학생의 미국 취업경로에도 동시에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국토안보부는 F-1 학생비자를 가진 외국인이 졸업 전후 미국에서 일정 기간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 제도에 최소 7만달러의 비용을 부과하는 방안을 최근 제안했다. 추가 연장 과정에서는 3만달러의 비용이 더 붙을 수 있다.
OPT는 특히 미국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 STEM 인재들이 H-1B로 이동하기 전에 사용하는 대표적인 취업경로다. 따라서 PERM과 H-1B, J-1, OPT에 대한 동시 압박은 트럼프 행정부가 외국인 고숙련 노동시장 전체를 재편하려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기술산업은 수십 년 동안 외국인 전문인력에 크게 의존해왔다. 인도와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온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H-1B, OPT 등을 통해 미국 기업에서 일한 뒤 고용주의 지원을 받아 영주권을 취득하는 경로가 실리콘밸리 인재 확보의 핵심이었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어도비 같은 대표적인 미국 기술기업뿐 아니라 인포시스와 타타 등 대형 IT 서비스기업까지 PERM 절차에서 배제될 경우 현재 영주권을 기다리고 있는 상당수 외국인 직원에게 불확실성이 생길 수 있다.
PERM 자체도 통상 처리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어서, 심사가 중단될 경우 외국인 직원과 기업의 장기 고용계획 모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발표에서 밴스가 전달한 메시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미국 기업이 외국인 고숙련 인재를 고용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을 해고하거나 사실상 배제하면서 외국인 근로자를 유지하기 위해 이민제도를 이용하는 것은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미국 기술기업 가운데 하나이며 트럼프 행정부 역시 그 기술적 성과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밴스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국 노동자를 우선할 책임도 더 크다고 주장했다.
"당신들은 훌륭한 미국 기업이다. 그러나 훌륭한 미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해야 한다."
밴스가 마이크로소프트를 향해 던진 이 말은 이번 조치뿐 아니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앞으로 H-1B와 고용영주권, 국제학생 취업제도를 어떤 방향으로 바꾸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메시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