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1 01:32 PM

"원금은 지켜준다지만 수익 공식은 바꾼다"...미국 은퇴자금이 프라이빗 크레디트 키웠다

By 전재희

인덱스 연금, 시장 하락 때 원금 손실 없지만 보험사가 수익률 산식 조정 가능
아폴로·브룩필드 등 사모자산 운용사, 장기 보험자금 활용해 프라이빗 크레디트 확대

미국에서 은퇴자금을 운용하는 대표적인 보험상품 가운데 하나인 '인덱스 연금(indexed annuity)'이 지난 10여 년간 급성장하면서 월가의 프라이빗 크레디트 확대를 뒷받침한 주요 자금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상품은 주식시장 상승에 따른 수익 가능성을 제공하면서도 시장이 하락할 경우 투자수익률이 0%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보장한다는 점에서 위험을 꺼리는 은퇴자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으로 판매돼 왔다. 그러나 실제 수익률을 결정하는 세부 조건을 보험사가 계약 기간 중 조정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소비자 보호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401K
(미국인들의 은티 연금 상품인 401k. 자료화면)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Apollo Global Management), 브룩필드(Brookfield) 등 대형 사모자산 운용사들은 보험사를 인수하거나 지배하면서 인덱스 연금으로 들어오는 장기 자금을 활용해 프라이빗 크레디트와 비유동성 자산 투자를 크게 늘려왔다.

4만 달러 맡겼지만 12년 연평균 수익률 3.7%

플로리다 대학 시스템에서 영양학 교수로 일하는 69세 사브리나 엘리엇(Sabrina Elliott)은 상속받은 돈 가운데 4만 달러를 인덱스 연금에 투자했다.

상품은 12년 동안 자금을 묶어두는 대신 주식시장 성과에 연동된 수익을 제공하면서 원금 손실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구조였다.

당시 상품을 판매한 보험사는 아비바(Aviva)였지만 이후 아폴로의 지원을 받는 보험사 애신(Athene)이 회사를 인수했다. 애신은 이후 계약기간 동안 엘리엇이 시장 상승분에서 받을 수 있는 비율을 두 차례 낮췄다.

결과적으로 2023년 계약이 종료됐을 때 엘리엇이 기록한 연평균 수익률은 3.7%였다.

같은 기간 미국 국채에 투자했을 경우 얻었을 약 1.9%의 연평균 수익률보다는 높았지만, 해당 연금이 연동돼 있던 S&P 500의 같은 기간 연평균 수익률 약 13%에는 크게 못 미쳤다.

시장에 연동되지만 시장수익률 그대로 받는 것은 아니다

인덱스 연금의 핵심은 주가지수에 연동되면서도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계약자의 투자수익률이 0%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설계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소비자가 실제로 받는 수익률은 S&P 500 등 지수의 상승률을 그대로 적용하는 방식이 아니다.

보험사는 계약 조건에 따라 시장수익률에 참여할 수 있는 비율인 '참여율(participation rate)'을 정하고, 최대 수익률을 제한하는 '캡(cap)'이나 시장수익률에서 일정 비율을 차감하는 '스프레드(spread)' 등을 적용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조건 가운데 일부를 보험사가 계약기간 중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엘리엇의 경우 가입 첫해에는 자금의 60%가 S&P 500 수익률에 연동됐고 여기에서 2.9%포인트의 스프레드가 차감됐다.

그러나 계약 7년째 애신은 주식시장에 연동되는 비율을 55%로 낮췄고, 11년째에는 다시 45%로 축소했다. 나머지 자금은 연 1%의 고정금리를 적용받았다.

엘리엇은 평생에 걸쳐 연금을 나눠 받거나 상속인에게 지급하는 추가 옵션도 구입했지만 실제 사용하지 않았다. 이 옵션 비용은 그의 연평균 수익률을 약 2%포인트 낮추는 요인이 됐다.

애신 "원금 100% 보호하면서 안전자산보다 높은 수익"

애신은 해당 상품의 성과가 매우 우수했다고 반박했다.

회사 측은 이 연금이 원금 100%를 보호하면서 유사한 안전수익 상품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제공했고, 사망보험금 강화와 평생소득 보장 같은 추가 선택사항도 제공했다고 밝혔다.

또 금리가 역사적으로 매우 낮았던 시기와 강한 주식 상승장이 동시에 나타났던 기간을 이용해 인덱스 연금의 성과를 단순히 S&P 500과 비교하는 것은 매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인덱스 연금은 주식투자 상품이 아니라 원금 손실 위험을 제한하면서 일부 시장 상승분에 참여하도록 설계된 보험상품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주식시장 수익률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보험업계의 입장이다.

보험설계사 수수료 최대 7%...일반 고정 연금보다 높아

문제는 판매 과정에서도 제기된다.

주식시장과 연동된 대부분의 금융상품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감독을 받고 판매자에게 증권 관련 자격이 요구된다. 하지만 인덱스 연금은 주별 보험대리점에서도 판매할 수 있다.

이들은 증권 브로커와 동일한 수준의 이해상충 공개나 고객의 최선의 이익을 위한 의무를 적용받지 않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인덱스 연금은 보험설계사가 판매할 수 있는 상품 가운데 수수료가 높은 편에 속한다.

예를 들어 아메리칸 에쿼티(American Equity)는 일부 10년 만기 인덱스 연금 상품에 대해 가입자가 납입한 금액의 5~7%를 설계사에게 수수료로 지급한다.

반면 같은 브룩필드 계열 보험사가 판매하는 단순 고정금리 연금의 수수료는 약 3% 수준이다.

보험업계는 인덱스 연금이 구조가 복잡해 소비자에게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높은 수수료가 정당화된다고 설명한다.

미국생명보험협회(American Council of Life Insurers)도 주 정부의 보험설계사 규정이 연방 증권 브로커 규정을 모델로 만들어졌으며 보험사는 판매되는 상품이 가입자의 필요에 맞는지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소비자단체 "은퇴자 노린 과장 판매 위험"

하지만 소비자 보호단체와 일부 보험 전문가들은 인덱스 연금이 과장된 판매설명에 이용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델라웨어 라이프(Delaware Life)가 판매하는 한 인덱스 연금의 교육자료에는 10만 달러를 투자하면 향후 21년 뒤 270만 달러로 증가하는 사례가 제시돼 있다.

그러나 이 '모멘텀 그로스(Momentum Growth)' 상품이 연동된 주식·암호화폐 혼합지수는 불과 지난해 만들어졌다.

광고에 사용된 수익률은 실제 해당 지수의 장기 운용실적이 아니라 과거 15년간의 데이터를 이용해 가상으로 계산한 수치다. 더욱이 이 15년 가운데 11년은 주식시장이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한 기간이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연금상품을 판매하는 보험설계사 스탠 헤이스콕(Stan Haithcock)은 인덱스 연금을 구입하면서 주식시장에 가까운 높은 수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로부터 매달 수백 통의 문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소비자들은 무료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는 우편물을 받고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상품을 권유받기도 한다.

헤이스콕은 이러한 판매가 특히 은퇴자금을 잘못 운용했을 때 회복하기 어려운 미국 중산층을 겨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기 이후 보험사 사들인 사모자산 운용사

인덱스 연금의 급성장은 월가 사모자산 운용사들의 사업모델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모자산 운용사들은 보험사를 인수하기 시작했다. 보험사가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장기 보험료 자금을 투자에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덱스 연금은 이들 운용사에게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일반적인 고정금리 연금은 계약기간이 약 3~5년인 경우가 많지만 인덱스 연금은 통상 10년 정도 유지된다.

자금의 유출시점도 비교적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운용사 입장에서는 계약자에게 지급해야 할 시점을 예상하면서 장기간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담보대출채권(CLO),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비롯한 비교적 위험도가 높고 유동성이 낮은 프라이빗 크레디트 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소비자와의 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게 매력"

보험사 입장에서는 투자수익이 예상보다 낮을 경우 가입자에게 적용되는 수익률 상한이나 참여율을 낮춰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반대로 투자성과가 좋을 경우에도 소비자에게 지급되는 수익률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면서 보험사의 이익을 확대할 수 있다.

보험·연금 및 투자상품을 판매하는 밸마크 파이낸셜 그룹(Valmark Financial Group)의 래리 리브카(Larry Rybka) CEO는 사모펀드가 이러한 상품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소비자와의 거래조건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구조는 소비자에게 원금보호를 제공하는 대신 보험사가 투자자산 운용과 계약조건 조정을 통해 상당한 재량권을 갖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사모자산 운용사 계열 보험사의 인덱스 연금 준비금 2천억 달러

인덱스 연금 시장은 이미 막대한 규모로 성장했다.

보험 신용평가사 AM 베스트(AM Best)에 따르면 사모자산 운용사가 소유한 보험사들의 인덱스 연금 관련 준비금은 현재 약 2,000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해당 보험사들이 보유한 생명보험·연금 상품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미국 가계가 원금보호와 은퇴소득 확보를 위해 보험사에 맡긴 장기 자금이 결과적으로 월가 사모자산 운용사들의 투자재원으로 활용되면서 프라이빗 크레디트 시장 확대를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금리 올랐는데도 판매는 더 증가...2025년 1,280억 달러

흥미로운 점은 연방준비제도(Fed)가 2022년부터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인덱스 연금의 상대적인 매력이 떨어졌음에도 판매량은 오히려 증가했다는 것이다.

금리가 상승하면서 일반 고정금리 연금과 양도성예금증서(CD), 고금리 저축계좌에서도 상당한 수익률을 얻을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미국의 인덱스 연금 판매액은 2023년 960억 달러에서 2025년 1,280억 달러로 증가했다.

시장 하락에 대한 두려움이 큰 은퇴자들에게 '원금 손실 없음'과 '주식시장 상승에 일부 참여'라는 조합이 여전히 강력한 판매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12년 만기 뒤 선택한 것은 5.85% 고정 연금

사브리나 엘리엇은 결국 새로운 인덱스 연금을 선택하지 않았다.

2023년 기존 상품이 만기가 되자 애신은 2년 연장을 제안했다. 그러나 연장할 경우 시장수익률에 연동되는 자금 비율은 기존 45%에서 다시 35%로 낮아질 예정이었다.

엘리엇의 사위이자 재정상담가인 카를로스 디아스 주니어(Carlos Dias Jr.)는 대신 연 5.85%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전통적인 고정 연금으로 자금을 옮겼다.

내년 은퇴를 계획하고 있는 엘리엇은 가족 중에 재정상담가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원금 보장' 뒤에서 움직이는 월가의 거대한 자금

인덱스 연금의 성장은 미국 금융시장에서 개인의 은퇴자금과 월가의 사모금융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시장이 폭락해도 원금을 잃지 않는다는 안정성을 얻는다. 반면 보험사는 장기간 확보한 자금을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프라이빗 크레디트와 비유동성 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가 실제로 받을 수 있는 시장 상승분은 계약 당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참여율과 캡, 스프레드 등 여러 조건의 영향을 받으며 일부 조건은 보험사가 계약기간 중 변경할 수 있다.

결국 인덱스 연금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원금이 안전한가'만이 아니다.

시장 상승분 가운데 실제로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그 계산방식이 앞으로 어떻게 변경될 수 있는지, 높은 판매수수료와 추가 옵션 비용이 장기수익률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미국 은퇴자들에게는 안정적인 보험상품으로 판매돼온 인덱스 연금이 월가에서는 장기 자금을 확보해 프라이빗 크레디트 시장을 키우는 핵심 금융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