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1 01:38 PM

트럼프, 러시아·우크라이나 '에너지 휴전' 선언...러시아산 디젤 허용 놓고 의회 반발

By 전재희

"양측 합의했다" 밝혔지만 러시아는 확인 안 해...우크라이나 "상호 중단이라면 수용"
트럼프의 러시아산 디젤 수입 허용 추진에 공화·민주 상원의원들 "2022년 법 위반" 반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상대방의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는 '에너지 휴전'에 합의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아직 이를 확인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어 실제 합의가 성립했는지는 불분명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시에 러시아산 디젤과 석유의 미국 및 세계시장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중간선거를 불과 몇 주 앞두고 이란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휘발유와 디젤 가격이 상승하면서 유권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에너지 가격을 낮추기 위한 대응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 자료화면)

그러나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다시 허용하려는 움직임을 놓고 미 의회에서는 민주당뿐 아니라 일부 공화당 의원들까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산 에너지의 미국 수입을 금지한 2022년 법에 위배될 수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에 결정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트럼프 "즉시 에너지 휴전"...러시아는 확인 안 해

트럼프는 일요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즉시 발효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에너지 휴전이 있다"며 "양측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트럼프의 발표를 확인하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지금까지 에너지 시설에 대한 상호 공격 중단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크렘린궁 역시 트럼프의 새로운 발표에 즉각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트럼프는 지난 9월 14일에도 비슷한 에너지 휴전이 성립됐다고 발표했지만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에 대한 공습을 계속했다.

실제로 트럼프가 이번 휴전을 발표한 일요일에도 러시아는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과 다른 목표물에 공격을 이어갔다. 키이우에서는 하루 종일 폭발음이 들렸고 정전도 계속됐다.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은 에너지 휴전을 지지하면서도 "현 단계에서 러시아는 최근 몇 시간 동안 우크라이나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면서 휴전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젤렌스키 "러시아가 멈추면 우리도 정유시설 공격 중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상호적인 에너지 휴전에는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력망에 대한 폭격을 중단한다면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 정유시설에 대한 공습을 멈출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것처럼 러시아의 공격 중단 없이 우크라이나만 일방적으로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중단하는 방안에는 반대하고 있다.

젤렌스키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평화를 원한다. 문제는 러시아가 평화를 원하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대화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기다리고 있으며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내용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러시아산 디젤 공급 확대 추진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으로 중동의 에너지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국제 유가와 디젤 가격이 상승하자 러시아를 에너지 가격 안정의 일부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트럼프는 금요일 푸틴과 러시아산 디젤의 미국 및 세계시장 공급을 확대하는 내용의 합의를 발표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중동지역의 에너지 수출이 차질을 빚는 가운데 러시아의 공급을 늘려 국제시장의 디젤 부족과 가격 상승을 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공화당 소속 톰 에머(Tom Emmer) 하원의원은 일요일 ABC뉴스에서 러시아산 디젤 합의를 옹호하며 "우리 대통령은 가능한 모든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너지 전문가들은 러시아산 공급 확대가 실제 세계시장 가격을 의미 있게 낮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의 동유럽 연구책임자 야니스 클루게(Janis Kluge)는 러시아가 이미 디젤 수출 재개를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합의에서 푸틴이 특별한 양보를 한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러시아산 디젤 공급이 늘어난다고 해도 현재 글로벌 연료시장의 부담을 크게 줄이기는 어렵다며 "중동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공화·민주 상원의원 공동 반발..."푸틴에 재정적 생명줄 줘선 안 돼"

러시아산 에너지 수출 허용 방안을 놓고는 미국 의회에서 초당적인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일요일 공동성명을 내고 트럼프 행정부의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허용 계획이 2022년 제정된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금지법에 위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명에는 공화당의 수전 콜린스(Susan Collins) 메인주 상원의원, 리사 머카우스키(Lisa Murkowski) 알래스카주 상원의원, 존 커티스(John Curtis) 유타주 상원의원, 톰 틸리스(Thom Tillis) 노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이 참여했다.

민주당에서는 진 샤힌(Jeanne Shaheen) 뉴햄프셔주 상원의원, 론 와이든(Ron Wyden) 오리건주 상원의원, 리처드 블루먼솔(Richard Blumenthal) 코네티컷주 상원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성명에서 미국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을 계속 공격하는 상황에서 푸틴에게 재정적인 생명줄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며 행정부가 즉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와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고,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금지한 2022년 법이 요구하는 정당화 절차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백악관은 이들 상원의원의 공동성명에 즉각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중간선거 앞둔 트럼프...에너지 가격이 정치적 부담

트럼프가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 확대를 서두르는 배경에는 불과 몇 주 앞으로 다가온 미국 중간선거도 자리하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중동지역 원유와 석유제품 공급이 흔들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장기화하면서 미국의 휘발유와 디젤 가격이 크게 올랐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교통과 물류비를 통해 소비자 물가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기 때문에 공화당에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러시아산 디젤 합의를 중간선거를 앞두고 연료 가격을 낮추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도널드 노크로스(Donald Norcross) 하원의원은 트럼프가 공화당의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러시아산 디젤이 공급되더라도 국제 에너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트럼프의 전략이 실제 유권자들이 체감할 정도의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트럼프, 젤렌스키 공개 비판하며 책임론 제기

이번 에너지 휴전 발표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를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는 토요일 젤렌스키의 우크라이나 지도자 교체까지 요구하면서 러시아와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책임과 국제 연료 가격 상승의 책임을 젤렌스키에게 돌렸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정유시설을 드론 등으로 공격하면서 러시아의 석유제품 생산과 수출 능력에 타격을 주고 있고 이것이 세계 에너지 가격 상승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트럼프 측의 논리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현재 자신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압박 수단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 한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계속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러시아, 겨울 앞두고 우크라이나 에너지망 집중 공격

러시아는 겨울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의 전력과 난방, 수도 등 필수 서비스에 타격을 주기 위해 에너지 기반시설에 대한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젤렌스키가 일요일 방송된 ABC뉴스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 일주일 동안 우크라이나의 전력 시스템을 196차례, 석유·가스 시설을 20차례 공격했다.

같은 기간 러시아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도시에서 153명이 사망했다고 젤렌스키는 밝혔다.

그는 이러한 공격이 러시아가 충분한 압박을 받고 있지 않다는 신호라고 주장했다.

젤렌스키는 "그들은 계속하기를 원한다"며 러시아가 실제 에너지 휴전을 원한다면 우크라이나도 이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영향력도 이전보다 약화

트럼프의 최근 발언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미국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제한되고 있다는 현실도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한 미국의 직접적인 지원을 거의 모두 종료했다. 다만 미국은 여전히 위성과 기타 핵심 정보는 우크라이나와 공유하고 있다.

반면 유럽이 우크라이나의 군사·재정 지원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우크라이나 역시 국내 드론과 기타 무기 생산능력을 크게 확대하면서 미국의 정책 변화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Atlantic Council)의 셸비 매기드(Shelby Magid) 부국장은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미국을 핵심 동맹국으로 보고 있지만 유럽과의 협력 확대로 인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만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상황에서는 벗어났다고 평가했다.

'에너지 휴전'이 실제 휴전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

현재 핵심은 트럼프가 발표한 에너지 휴전을 푸틴이 실제로 받아들일지 여부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먼저 공격을 중단한다면 상호 휴전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럽도 에너지 시설에 대한 상호 공격 중단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아직 공식적인 동의 의사를 밝히지 않았으며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트럼프의 러시아산 디젤 공급 확대 구상 역시 에너지 가격 안정이라는 경제적 목표와 러시아에 대한 제재 유지라는 외교·안보 목표가 충돌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특히 미국 내에서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연료 가격을 낮추기 위해 푸틴 정부에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결국 트럼프가 추진하는 '에너지 휴전'과 러시아산 디젤 공급 확대 정책의 성패는 두 가지에 달려 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실제로 중단할 것인지, 그리고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 확대가 미국 소비자들이 체감할 정도로 휘발유와 디젤 가격을 낮출 수 있을지 여부다.

현재까지는 어느 쪽도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