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2 09:29 AM
By 전재희
리야드 국제공항 미사일 공격으로 최소 13명 사망...공항·정유시설·송유관 잇따라 표적
전쟁비용에 재정적자 확대·외국인 투자 감소...관광·AI·대형 개발사업까지 압박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이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와 핵심 에너지 시설로 확대되면서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왕세자가 지난 10년간 추진해온 대규모 경제개혁 계획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사우디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중동의 전쟁 확산 속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더라도 국토를 가로지르는 동서 송유관을 통해 홍해로 원유를 수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후티 반군이 공항과 정유시설, 송유관까지 잇따라 공격하면서 안보 위기가 에너지 수출뿐 아니라 관광, 외국인 투자, 인공지능(AI), 대형 개발사업 등 빈 살만 왕세자의 '비전 2030' 전반을 흔들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는 후티 반군이 발사한 미사일 최소 한 발이 리야드 킹 칼리드 국제공항에 떨어져 최소 13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다쳤다. 공항 터미널 두 곳이 피격돼 지붕 일부가 무너졌고, 부상자 가운데 상당수는 중상을 입었다.
일요일에도 폐쇄된 공항을 겨냥한 추가 공격이 이어져 터미널 4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추가 사망자와 부상자가 나왔다. 사우디 당국은 불과 올여름까지만 해도 후티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최근 공격은 이러한 평가를 사실상 뒤집고 있다.
후티의 근거지인 예멘에서 리야드까지는 500마일, 약 800km 이상 떨어져 있지만 미사일과 드론 공격이 수도까지 도달하면서 리야드 일부 지역은 사실상 전쟁권역으로 변하고 있다.
최근에는 요격된 탄도미사일의 잔해가 유치원과 의료시설에 떨어졌고, 금융지구 근무자와 일부 국제학교 학생, 외교관들에게 대피 또는 실내 대기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후티 군 대변인은 사우디 공항이 계속 공격 대상이라고 경고했다.
사우디 관계자들은 추가 공격을 막는 데 필요한 요격미사일 재고도 줄어들고 있다고 WSJ에 전했다. 41세의 빈 살만 왕세자는 최근 벙커가 설치된 여러 왕궁을 오가며 별도로 선발된 경호팀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보 불안은 사우디가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집중적으로 육성해온 관광과 국제행사 산업에도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수도의 국제공항이 반복적인 미사일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는 해외 관광객과 글로벌 기업,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달 말 예정된 사우디의 대표적인 국제 투자회의 개최 여부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전쟁비용 증가로 정부 재정적자 역시 확대되고 있어, 사우디가 안정적이고 안전한 투자처라는 인식이 흔들릴 경우 그동안 추진해온 경제 다각화 계획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10년 동안 사우디를 현대화하고 석유 중심 경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조 달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미래도시 네옴(Neom), 리야드에 건설하려는 거대한 정육면체형 복합건물 '무카브(The Mukaab)', 사막에 조성하는 스키 리조트 등이 있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의 연간 예산이 약 3,500억 달러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초부터 매우 공격적인 투자계획이었다. 여기에 이란과 관련된 전쟁비용과 후티 공격에 따른 경제적 손실까지 더해지면서 기존 계산을 맞추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경제지표에서도 경고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 투자는 감소했고 빈 살만 왕세자가 비전 2030을 통해 제시한 목표에도 크게 못 미치고 있다.
국방비와 인프라 보호비용이 증가할수록 경제 다각화에 투입해야 할 자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캐피털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에 따르면 사우디의 비석유 부문 경제 규모는 올해 2분기에 1분기보다 축소됐고, 사우디 재무부는 2026년 국내총생산(GDP)이 3.6%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우디는 올해 초 이란과의 충돌이 확대되고 호르무즈해협 통항이 어려워지자 동부 유전지대에서 홍해까지 국토를 가로지르는 동서 송유관을 적극 활용했다. 이를 통해 호르무즈해협을 거치지 않고도 원유를 수출할 수 있었고 높은 유가와 함께 상당한 수익도 확보했다.
그러나 후티는 지난 7월 사우디에 대한 해상봉쇄를 선언하며 홍해 운송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9월에는 동서 송유관까지 공격했다. 사우디가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하기 위해 의존했던 핵심 에너지 수출로까지 후티의 공격 대상이 된 셈이다.
후티는 에너지 시설뿐 아니라 사우디 항공산업도 집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리야드 킹 칼리드 국제공항은 최소 네 차례 공격을 받았으며, 이는 항공과 관광을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육성하려는 빈 살만 왕세자의 전략에 직접적인 부담이 되고 있다.
사우디와 후티의 갈등은 10년 넘게 이어져왔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15년 예멘 내전에 개입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예멘 정부를 지원하면서 후티 반군과 전쟁을 시작했고, 사우디 주도의 연합군은 후티를 상대로 대규모 공습을 벌였다.
그러나 전쟁은 장기화했고 후티 역시 사우디의 석유시설과 리야드 등 주요 도시를 공격하면서 양측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2022년 휴전에 들어갔다. 최근 이란과 주변국들의 충돌이 확대되면서 후티가 다시 본격적인 군사행동에 나서자 사우디는 과거의 전쟁으로 다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란과의 직접적인 충돌 확대를 피하면서 외교채널을 유지하려 해왔다. 사우디 정보당국은 이란이 후티에 전쟁 참여를 적극적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파악했지만, 일부 당국자들은 후티가 자체 이해관계에 따라 신중하게 움직일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후티는 지난 8월 홍해 입구의 전략적 요충지인 바브엘만데브 해협 주변 해안지역을 장악하기 위한 공격에 나섰다. 사우디가 전면전 확대를 우려해 적극적인 공군 지원을 하지 않는 사이 전략적 항구도시 모카(Mokha)와 주변 주요 거점들이 후티에 넘어갔다.
빈 살만 왕세자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과의 관계 구축에도 상당한 공을 들여왔으며 미국에 약 1조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약속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미국은 현재까지 후티의 진격을 되돌리기 위한 사우디의 직접적인 군사지원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고 있으며 군사고문을 파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말 기자들에게 미국이 후티와 접촉하고 있으며 사우디의 후티 공격에 동참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군사개입 방침은 아직 내놓지 않았다.
사우디는 부족한 방공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군사 동맹국인 파키스탄에 지원을 요청하고 전 세계에서 추가 방공시스템을 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예멘 내 동맹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외국인 전투원을 모집하는 방안과 외교적 해법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라이스대학교 베이커연구소의 걸프지역 전문가 크리스티안 코츠 울리히센(Kristian Coates Ulrichsen)은 어떤 군사적 대응도 후티가 상당한 상징적·실질적 피해를 줄 능력을 보여준 비대칭전쟁에 사우디를 더욱 깊숙이 끌어들일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빈 살만에게 군사적 대응과 확전 자제 가운데 어느 쪽도 쉬운 선택이 아니라는 의미다.
안보 위기는 사우디가 최근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AI 산업에도 새로운 위험을 만들고 있다. 사우디는 막대한 국부펀드와 값싼 에너지를 활용해 세계적인 AI 데이터센터와 컴퓨팅 인프라를 유치하려 하고 있지만, 데이터센터와 전력시설 역시 미사일과 드론 공격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사우디는 글로벌 기술기업과 AI 프로젝트의 주요 자금 공급원이기도 하다. 따라서 안보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영향은 중동을 넘어 세계 기술산업과 AI 투자시장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후티의 공세는 빈 살만 왕세자에게 단순한 군사적 위기를 넘어 지난 10년간 추진해온 국가개조 프로젝트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 시험이 되고 있다. 사우디가 관광객과 글로벌 기업, 해외 투자자, 국제 스포츠대회와 박람회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주요 도시와 교통·에너지 인프라가 안전하다는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수도 국제공항과 송유관, 정유시설이 잇따라 공격받으면서 그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이미 여러 초대형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재검토되고 있고 사우디는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 개최 계획도 포기했으며, 앞으로 2030년 세계박람회와 2034년 월드컵을 위한 대규모 투자도 감당해야 한다.
후티와의 충돌이 단기간에 진정되지 않는다면 빈 살만 왕세자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전쟁 자체가 아닐 수 있다. 수조 달러를 투입해 구축하려 했던 '석유 이후의 사우디'가 실제 안보위기와 재정압박 속에서도 유지될 수 있느냐가 더 근본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