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2 09:32 AM
By 전재희
S&P 500 종목 중 50일 이동평균선 위는 3분의 1뿐...대형 AI주가 지수 상승 주도
ChatGPT 이후 시총가중지수, 동일가중지수보다 약 50%포인트 앞서...닷컴버블 직전과 유사한 격차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 부근에서 거래되고 있지만 시장 내부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S&P 500 지수는 기록적인 수준에 가까워졌지만 지난 금요일 기준 구성 종목 가운데 50일 이동평균선 위에서 거래되는 종목은 약 3분의 1에 불과했다.
겉으로는 강한 상승장이 이어지고 있지만 실제 상승을 이끄는 종목은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월가에서는 이를 시장의 '폭(breadth)'이 좁아졌다고 표현한다. 다만 시장 상승이 소수 종목에 집중됐다는 사실 자체가 곧바로 급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문제는 그 격차가 얼마나 빠르게 커지고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가에 있다는 분석이다.
주식시장에서 소수 종목이 전체 수익률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내는 현상 자체는 드물지 않다. 장기적으로 보면 시장에 상장된 수많은 기업 가운데 실제 투자자 수익의 대부분을 만들어낸 것은 극히 일부의 뛰어난 기업들이었다.
따라서 단기간 시장 폭이 좁아졌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약세장이 시작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과거에도 단기적인 시장 폭 악화가 주가 조정으로 이어진 경우는 있었지만 대부분은 비교적 작은 폭의 하락에 그쳤다.
그러나 특정 대형주들이 짧은 기간 동안 급격히 몸집을 키우면서 시장 전체 상승의 대부분을 담당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주요 시장 사이클의 정점 부근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현재 시장의 쏠림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일반 S&P 500 지수와 동일가중 S&P 500 지수의 수익률 차이다.
일반적인 S&P 500은 기업의 시가총액이 클수록 지수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과 같은 초대형 기업들의 주가 움직임이 지수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반면 동일가중 S&P 500은 500개 기업에 거의 같은 비중을 부여한다. 따라서 두 지수의 수익률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는 것은 일부 초대형 기업들의 주가가 나머지 시장보다 훨씬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현상은 2022년 11월 ChatGPT가 등장하면서 AI 투자 열풍이 시작된 이후 크게 가속됐다. 이후 시가총액가중 S&P 500의 누적 총수익률은 동일가중 S&P 500보다 약 50%포인트 더 높아졌다.
더 주목되는 것은 현재의 격차가 과거 닷컴버블 당시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이다.
WSJ은 ChatGPT 출시 시점을 현재 AI 투자 열풍의 출발점으로 놓고, 1996년 야후(Yahoo) 기업공개를 당시 인터넷 투자 열풍의 대표적 출발점으로 비교했다. 각각의 사건 이후 동일한 거래일 수가 지난 시점에서 시가총액가중 S&P 500과 동일가중지수 사이의 수익률 격차가 거의 같은 수준으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에도 인터넷 관련 대형 기술주들이 시장 상승을 이끌면서 주요 지수는 빠르게 올랐지만 시장 전체 종목의 성과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이러한 격차는 닷컴버블 붕괴와 함께 급격하게 해소됐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는 있었다. 라디오 산업이 급성장했던 시기와 1960~70년대 이른바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 열풍에서도 소수 성장주가 시장 전체를 끌어올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현재 시가총액가중 S&P 500이 동일가중지수를 크게 앞서고 있기 때문에 대형주 중심의 지수가 원래 구조적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결과는 다르다. 동일가중 S&P 500은 1990년 이후 일반 S&P 500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동일가중 방식은 정기적인 재조정을 통해 급등한 대형주의 비중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작고 저평가된 기업의 비중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규모가 작은 기업과 저평가주가 장기적으로 추가 수익을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이러한 성과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최근 일반 S&P 500의 압도적인 성과가 반드시 지속 가능한 구조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이번 분석의 핵심이다.
시장 쏠림 현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시가총액가중지수와 동일가중지수 사이의 격차가 어떻게 해소되느냐다.
긍정적인 시나리오는 상승장에서 뒤처졌던 중소형주와 경기민감주가 오르면서 시장 전체가 대형 기술주를 따라잡는 것이다. 이 경우 상승장이 더욱 폭넓게 확산하면서 시장이 건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극단적인 쏠림 국면에서는 반대 방향으로 격차가 해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나치게 오른 대형 성장주들이 급락하면서 전체 지수가 동일가중지수 쪽으로 내려오는 방식이다.
WSJ 칼럼은 이를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에 비유했다. 격차가 벌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갈 때는 훨씬 빠르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시장 상승의 중심에는 AI라는 실제 기술혁신이 존재한다. 생성형 AI는 기업의 생산성과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반도체 산업의 구조를 바꾸고 있으며 관련 기업들의 실적 성장도 상당 부분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시장에서도 기술적 혁신 자체가 허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라디오는 실제로 사회를 바꿨고 인터넷 역시 세계 경제의 핵심 인프라가 됐다. 그럼에도 이러한 기술을 둘러싼 투자 기대가 지나치게 빠르게 주가에 반영됐을 때 시장은 큰 조정을 겪었다.
따라서 "AI가 실제 혁명적인 기술이기 때문에 이번 시장 사이클은 다르다"는 논리만으로 현재의 높은 밸류에이션과 시장 집중도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WSJ 칼럼의 시각이다.
현재 미국 증시의 강세장은 출범 4주년을 맞았다. 기간만 보면 매우 오래된 상승장은 아니지만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강세장 이후 가장 긴 상승 흐름이다.
시장에서는 상승장이 얼마나 오래 지속됐느냐 자체보다 상승을 이끄는 종목 수가 줄어들면서 일부 대형주에 의존하는 정도가 얼마나 커지고 있는지를 더욱 주목하고 있다.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3분기 실적 발표 시즌이 시작된다는 점도 중요한 변수다. 월가 대형은행들이 실적 발표의 포문을 열 예정이며 최근 금융시장 변동성이 컸다는 점은 거래수익 측면에서 은행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증시 외부의 환경도 만만치 않다. 12일 오전 기준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약 5.24% 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며 국제유가는 배럴당 93달러를 넘어섰다.
고금리와 높은 유가는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높이고 소비자의 지출 여력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장기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미래 성장 기대를 바탕으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기술주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 투자은행들의 트레이딩과 중개 수익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어 이번 실적 시즌에서 업종별 차별화가 더욱 커질 가능성도 있다.
이번 주에도 AI 관련 기업들은 시장의 핵심 관심 대상이다. 아마존(Amazon)은 개발자들이 서로 다른 AI 칩을 쉽게 전환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 기업 디카트(Decart)를 약 70억 달러에 인수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 IREN 역시 앤트로픽(Anthropic)과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장전거래에서 주가가 상승했다. AI 모델뿐 아니라 GPU와 데이터센터, 전력, AI 칩 호환 소프트웨어 등 AI 인프라 전체로 투자 열기가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정유회사 발레로(Valero)와 마라톤 페트롤리엄(Marathon Petroleum)은 미국 정부의 디젤 공급 확대 방안이 시장에 미칠 영향을 투자자들이 평가하면서 주가가 소폭 상승했다.
현재 시장의 좁은 상승폭 자체를 곧바로 증시 폭락의 신호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역사적으로 시장 상승의 상당 부분이 소수의 우량기업에서 발생하는 현상은 흔했으며 단기적인 시장 폭 악화만으로는 큰 조정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일부 초대형 기업의 상승이 수년 동안 누적되면서 일반 S&P 500과 동일가중지수 사이의 격차가 역사적인 수준까지 확대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특히 ChatGPT 등장 이후 약 4년 동안 벌어진 격차가 1990년대 후반 인터넷 열풍 당시와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S&P 500이 사상 최고치를 계속 경신하느냐가 아니라 그 상승에 참여하는 기업이 늘어나느냐다. 중소형주와 경기민감주까지 상승세가 확산된다면 현재의 강세장은 보다 건강한 형태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소수 AI 대형주의 상승만으로 지수가 계속 올라가면서 나머지 시장과의 격차가 더욱 커진다면, 과거 여러 기술주 중심의 상승장에서 반복됐던 경고 신호와 점점 더 닮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