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2 10:41 AM

뜨거웠던 한국 AI주 열기 식었다...블룸버그 "삼성·하이닉스 비중 축소하는 글로벌 투자자들"

By 전재희

상반기 세계 최고였던 코스피, 하반기 22% 하락...거래대금 고점 대비 70% 급감
글로벌 펀드 "메모리 투자에서 쉽게 벌 수 있는 돈은 이미 벌었다"...삼성·SK하이닉스 '언더웨이트'

올해 상반기 전 세계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의 최대 수혜시장 가운데 하나였던 한국 증시가 빠르게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했던 메모리 반도체 상승 사이클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서 외국인 투자자와 국내 개인투자자 모두 시장에서 물러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전닉스
(삼전닉스로 불려지는 반도체 대표주차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블룸버그는 11일 한국 증시의 거래대금이 지난 5월 말 고점 대비 약 70% 감소했으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유출도 아시아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빠른 수준이라고 전했다. 올해 상반기 세계 주요 주가지수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던 코스피는 이후 하반기에 22% 하락하면서 주요 시장 가운데 가장 부진한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같은 기간 AI 관련주 비중이 높은 미국과 대만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의존도가 오히려 약점으로

한국 증시가 급격히 흔들리는 배경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가 자리 잡고 있다. 두 회사는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면서 올해 초 코스피 상승을 이끌었지만, 최근에는 시장 집중도가 오히려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의 시가총액 비중은 코스피 전체의 절반을 넘어선다. 메모리 반도체 호황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두 회사의 상승이 시장 전체를 끌어올렸지만, 투자자들이 메모리 가격 상승과 AI 투자 사이클의 지속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증시 전체가 동시에 압박을 받고 있다.

블룸버그는 특히 올해 여름 레버리지 투자 청산으로 발생한 급격한 증시 하락이 일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당시 시장의 높은 변동성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로 다시 돌아오는 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메모리 투자에서 쉽게 벌 수 있는 돈은 이미 벌었다"

레이리언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Rayliant Global Advisors)의 필립 울(Phillip Wool) 포트폴리오 운용 책임자는 최근 한국 메모리주에 투자하기 시작한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이 테마에서 쉽게 벌 수 있었던 돈은 이미 벌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펀드가 한국 AI 관련주에서 차익을 실현하고 있으며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모두 언더웨이트(underweight)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더웨이트는 해당 종목이나 시장의 비중을 기준지수보다 낮게 가져가는 투자전략을 의미한다.

다만 이는 블룸버그 자체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매도 의견을 제시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두 회사에 대한 투자 비중을 축소하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외국인 자금 1,310억 달러 빠져나가

블룸버그가 한국거래소 자료를 집계한 결과 올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증시에서 약 1,310억 달러를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주요 아시아 증시 가운데 가장 큰 외국인 자금 유출 규모다.

줄리어스 베어(Julius Baer)의 리처드 탕(Richard Tang) 홍콩 리서치 책임자는 최근 글로벌 자금이 다시 미국 주식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이러한 흐름이 한국 증시의 외국인 자금 유출을 지속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상반기 코스피가 강하게 상승할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국내 개인투자자들도 7월 급락 이후 적극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융자 잔액은 지난 6월 약 38조6,000억원까지 증가했다가 최근 한 달 동안 약 33조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주식투자를 위해 증권계좌에 대기하고 있는 투자자 예탁금 역시 한때 약 140조원에 육박했지만 최근에는 약 100조원 수준으로 감소했다. 개인투자자들의 위험 선호가 올해 상반기와 비교해 상당히 낮아졌다는 의미다.

삼성전자, 이익 9배 늘었는데 주가는 오히려 하락

메모리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경계심은 최근 삼성전자 주가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최근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거의 9배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사상 최대 수준의 이익을 기록했지만, 실적 발표 당일 주가는 오히려 하락했다.

이는 투자자들이 현재의 높은 이익보다 앞으로 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실적이 크게 개선됐음에도 주가가 반응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시장의 기대 수준이 높아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삼성·하이닉스 55조원 자사주 매입도 종료 임박

수급 측면에서도 한국 증시에는 부담요인이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진행해온 총 55조원, 약 41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JP모건체이스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 증시 전체 매수 주문 약 230억 달러 가운데 상당 부분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자사주 매입에서 발생했다.

두 회사의 자사주 매입은 외국인과 개인투자자들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한국 증시를 떠받치는 중요한 매수세 역할을 해왔다. 이 프로그램이 종료될 경우 시장이 새로운 매수 주체를 찾아야 한다는 점도 투자자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싸기는 싸다...그러나 투자자들은 성장주를 찾는다"

주가 하락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밸류에이션이 크게 낮아졌다는 점은 일부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픽테자산운용(Pictet Asset Management)의 존 위다르(Jon Withaar)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현재 메모리 반도체 종목들이 기업 이익 대비 상당히 저렴한 '가치주'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개인투자자와 단기 헤지펀드들은 단순히 주가가 싸다는 이유로 움직이지 않는다며 이들이 원하는 것은 성장이라고 지적했다. 즉 밸류에이션이 낮아졌다는 사실만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자금이 다시 유입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AI 메모리 호황을 믿는 투자자도

블룸버그는 한국 증시에 대한 시각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최근의 주가 하락을 매수 기회로 보는 투자자들도 있으며 AI 인프라 투자와 메모리 반도체의 수익성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도 존재한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추진하고 있는 기업가치 제고 정책 역시 장기적으로는 한국 증시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평가된다. 또한 상반기의 큰 폭 상승 덕분에 코스피는 최근 하락에도 불구하고 2026년 전체 기준으로는 여전히 세계 주요 시장 가운데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상황은 메모리 반도체 산업 자체의 붕괴라기보다, 올해 초 지나치게 빠르게 집중됐던 AI 투자자금이 다른 시장으로 분산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글로벌 자금은 한국 대신 대만으로

한국에 대한 투자에 신중해진 일부 글로벌 자금은 대안으로 대만 증시를 선택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대만이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한국보다 AI 공급망 전반에 훨씬 폭넓게 노출돼 있다는 점을 투자자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만에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TSMC를 비롯해 반도체 설계와 생산, 패키징, 서버 및 전자제품 제조 등 AI 하드웨어 생태계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다.

대만 자취안지수(Taiex)는 올해 약 70% 상승했으며 지난 분기 코스피보다 약 23%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두 시장의 분기 성과 격차로는 2000년 이후 가장 큰 수준이다.

대만 증시의 상승도 한국보다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 올해 주가가 두 배 이상 오른 종목의 비율은 대만 증시가 약 10%인 반면 코스피에서는 약 4.7%에 불과했다.

UBS "AI 투자 노출은 현재 대만 선호"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의 우춘라이(Chun-Lai Wu) 아시아 자산배분 책임자는 현재 전술적인 AI 투자 노출을 한국보다 대만 주식을 통해 확보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그는 대만이 보다 완전한 기술 하드웨어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으며 글로벌 대형 기술기업들의 강력한 투자계획에도 직접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글로벌 투자자들이 AI 성장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AI 투자 대상이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한국에서 AI 하드웨어 공급망 전체를 갖춘 대만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블룸버그의 분석이다.

한국 AI주, 문제는 '성장이 끝났느냐'가 아니라 '다음 매수자는 누구냐'

블룸버그 보도의 핵심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이 나빠졌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두 회사의 이익은 AI와 메모리 호황 덕분에 강력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미 주가를 끌어올렸던 외국인과 개인투자자, 레버리지 자금이 시장에서 빠져나가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까지 종료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투자자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좋은 실적만으로 과거와 같은 주가 상승을 재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레이리언트의 필립 울이 말한 "쉽게 벌 수 있는 돈은 이미 벌었다"는 표현도 이러한 상황을 의미한다. 메모리 반도체 호황 자체가 끝났다고 단정한 것이 아니라, 올해 초처럼 누구나 AI 메모리주를 매수하면 빠른 수익을 얻을 수 있었던 국면은 지나갔다는 판단이다.

한국 증시가 다시 글로벌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높은 실적을 넘어 AI 메모리 성장의 지속 가능성을 증명하거나, 두 기업 이외의 새로운 성장주가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블룸버그 보도의 핵심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