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4 11:11 AM
By 전재희
JPMorgan·BOA·Citi·Wells Fargo 등 9곳 조사...OCC "정치적 견해·합법적 사업 이유로 금융서비스 제한한 정책 확인"
MAGA 상품 판매업체 계좌 폐쇄 사례도...민주당 후보만 지지한 단체 역시 서비스 거부당해
미국 연방 금융감독당국이 JPMorgan Chase와 Bank of America, Citibank, Wells Fargo 등 미국 최대 은행들이 고객의 정치적·종교적 견해나 합법적인 사업활동을 이유로 금융서비스를 제한하는 이른바 '디뱅킹(debanking)' 관행을 운영해왔다고 밝혔다.
미 통화감독청(OCC)은 14일 47쪽 분량의 보고서를 공개하고 자산 규모 기준 OCC 감독을 받는 9대 은행의 정책과 고객 처리 사례를 조사한 결과, 2020년부터 2025년 9월 사이 모든 조사 대상 은행에서 정치·종교적 신념이나 합법적인 사업활동을 이유로 금융서비스 접근을 제한하거나 이를 유도할 가능성이 있는 정책이 존재했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JPMorgan Chase Bank, Bank of America, Citibank, Wells Fargo Bank, U.S. Bank, Capital One, PNC Bank, TD Bank, BMO Bank 등 9곳이다.
OCC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2025년 8월 서명한 '모든 미국인의 공정한 금융서비스 접근 보장' 행정명령에 따라 이들 은행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은행들이 정치적 또는 종교적 신념이나 합법적인 사업활동 때문에 개인과 기업의 계좌 개설이나 금융서비스 이용을 거부·제한하도록 하는 정책을 갖고 있었는지를 조사한 것이다.
디뱅킹은 은행이 개인이나 기업의 계좌를 폐쇄하거나 신규 계좌 개설을 거부하고, 대출·결제 등 금융서비스 제공을 제한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OCC는 지난해 9월 9개 은행에 대한 조사를 공식 발표했고 같은 해 12월 예비 조사결과를 공개한 뒤 추가적인 고객 민원과 내부 자료를 검토해왔다.
조너선 굴드(Jonathan Gould) 통화감독청장은 이번 조사결과에 대해 미국의 대형은행들이 고객과 합법적인 기업에 금융서비스를 거부하거나 차별해왔다는 "반박하기 어려운 증거"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인은 자신의 신념과 소속, 정치적 견해와 관계없이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금융서비스에 대한 공정한 접근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은행이 지켜야 할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OCC가 특히 문제 삼은 것은 은행들이 사용해온 이른바 '평판 리스크(reputation risk)' 기준이다.
특정 고객이나 산업과 거래할 경우 은행의 이미지가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금융서비스를 제한하는 방식인데, OCC는 이러한 기준이 명확한 금융·운영상 위험보다 정치적·사회적 논란을 근거로 고객을 배제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보고서에는 정치 성향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례도 포함됐다.
OCC에 따르면 2021년 2월 한 대형은행이 소유한 결제업체는 트럼프 대통령과 'Make America Great Again(MAGA)' 브랜드를 홍보하는 상품을 판매하던 업체의 계좌를 폐쇄했다.
OCC는 해당 사례를 은행의 평판 리스크 정책이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금융서비스를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진 사례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그러나 OCC 보고서는 한쪽 정치세력만 차별을 받았다고 결론 내리지는 않았다.
2023년에는 한 은행이 특정 공교육 관련 단체의 금융서비스 제공을 거부했는데, 해당 단체의 정치조직이 민주당 후보들만 지지한다는 점이 이유로 작용했다고 OCC는 밝혔다.
즉 보고서에서 확인된 정치적 디뱅킹 사례는 보수·진보 양쪽에 모두 존재했다.
OCC는 일부 은행에서 특정 정치성향보다 '정파적 활동(partisan activity)' 자체를 위험요인으로 분류한 사례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 은행의 사업부문은 2025년까지 정파적인 활동을 하는 기업이나 단체를 원칙적으로 높은 평판 리스크가 있는 고객으로 취급했다.
해당 정책은 진보와 보수 조직 모두에게 적용됐지만 결과적으로 헌법상 보호되는 정치적 견해를 표명한다는 이유만으로 금융서비스 제공이 거부되는 사례가 발생했다고 OCC는 지적했다.
반대로 '초당적(bipartisan)'이라고 판단된 단체에는 금융서비스가 제공됐다.
OCC는 이런 방식이 개별 고객의 실제 금융위험을 평가하기보다 정치적 활동 자체를 위험요인으로 판단한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봤다.
조사는 정치와 종교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OCC는 은행들이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특정 산업 전체에 대해 금융서비스 제공을 제한하는 정책도 광범위하게 운영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석유·가스 탐사와 개발, 석탄 채굴 및 석탄발전소, 총기와 탄약 제조·유통, 민간 구금시설, 담배 및 전자담배 제조·판매, 디지털 자산 관련 사업 등이 포함됐다.
특히 대부분의 은행은 북극지역의 석유·가스 탐사와 생산에 대한 금융지원을 제한했으며, 신규 석탄광산이나 석탄발전소 건설과 확장에도 제한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은행은 기업 매출 가운데 일정 비율 이상이 석탄 관련 사업에서 발생할 경우 금융서비스 자체를 제공하지 않는 정책을 운영하기도 했다.
OCC의 이번 조사는 상당한 규모의 자료를 토대로 진행됐다.
당국은 OCC 감독을 받는 금융기관에 접수된 약 10만건의 민원을 검토했으며, 9개 은행으로부터 정책과 내부절차, 개별 고객 처리과정과 관련된 약 5만개의 문서를 제출받았다.
전체 자료는 약 42만쪽에 달했다고 OCC는 밝혔다.
OCC는 이 자료를 토대로 은행들의 고객 선정 기준과 평판 리스크 정책, 특정 산업에 대한 제한조치 등을 분석했다.
이번 조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종교적 견해 때문에 미국인이 금융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시작됐다.
트럼프는 자신 역시 과거 정치적 이유로 은행서비스를 거부당했다고 주장해왔다. 멜라니아 트럼프(Melania Trump) 여사도 자신의 회고록에서 오랫동안 이용하던 은행이 2021년 1월 6일 의사당 사태 이후 자신의 계좌를 폐쇄했고, 이후 아들 배런 트럼프(Barron Trump)의 신규 계좌 개설도 거부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다만 OCC의 이번 보고서가 특정 행정부가 개별 은행에 특정 고객을 직접 퇴출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은 아니다.
OCC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핵심은 2020년부터 2025년 9월 사이 조사대상 9개 은행 모두에서 정치·종교적 견해나 합법적 사업활동을 이유로 금융서비스 접근을 제한할 위험이 있는 정책이나 관행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공화당은 이번 보고서를 정치적 디뱅킹 문제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로 평가했다.
상원 은행위원장인 팀 스콧(Tim Scott·공화·사우스캐롤라이나) 의원은 보고서 내용이 매우 심각하다며 "신앙이나 정치적 견해 때문에 미국인을 금융시스템에서 배제하는 것은 미국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소속 댄 뮤저(Dan Meuser·공화·펜실베이니아) 의원도 이번 보고서가 과거 은행권에서 정치·종교·합법적 사업활동을 둘러싼 과도한 금융제한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에서는 향후 디뱅킹 문제와 관련한 추가 청문회와 입법 논의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은행권은 정치적 차별을 목적으로 고객을 배제했다는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JPMorgan Chase는 Fox Business에 자사의 정책은 고객의 정치적 또는 종교적 견해를 근거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은 OCC 보고서가 미국과 전 세계에서 약 9,000만명의 고객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소수의 과거 사례를 다룬 것이라고 설명했다.
JPMorgan은 그러나 일부 과거 사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교훈을 얻어 업무절차를 개선했다고 밝혔다.
은행 측은 또한 규제당국이 금융기관의 개별 의사결정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았던 과거의 규제환경이 은행업계 전반에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문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고 밝혔다.
Wells Fargo는 별도의 논평을 내놓지 않았고 BMO Bank는 은행정책연구소(Bank Policy Institute)의 입장을 인용했다.
BPI는 미국 은행업계가 금융서비스에 대한 공정한 접근을 지지하며,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고객들이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제와 정책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정치적 또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고객의 금융서비스 이용이 부당하게 영향을 받지 않도록 행정부 및 의회와 추가적인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미 금융당국은 디뱅킹 재발을 막기 위해 규제 방식 자체도 바꾸고 있다.
OCC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지난 4월 은행 감독에서 '평판 리스크'를 공식적으로 제거하는 최종 규정을 발표했다.
새 규정은 금융감독기관이 개인이나 기업의 정치·사회·문화·종교적 견해나 합법적이지만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업활동을 이유로 은행에 계좌폐쇄나 서비스 제한을 요구하거나 권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굴드 OCC 청장은 평판 리스크가 은행의 건전성이나 재무위험과 관계없는 결정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돼왔다며, 앞으로 은행 의사결정은 보다 객관적이고 개별적인 위험평가를 근거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OCC는 이번 보고서 공개로 조사가 끝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굴드 청장은 일부 대형은행들이 문제가 된 관행을 줄이기 위해 정책을 변경하고 있지만 현재 조치만으로는 충분하다고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OCC는 정치적 또는 종교적 신념을 근거로 고객과 잠재 고객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추가적인 감독·규제체계 변경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번 조사로 미국에서 오랫동안 정치권의 논쟁거리였던 '디뱅킹' 문제가 단순한 개별 고객 불만을 넘어 연방 금융감독당국의 공식 규제 사안으로 확대됐다. 앞으로의 쟁점은 은행이 실제 금융범죄와 신용위험을 관리할 권한을 유지하면서도 정치적·종교적 견해나 합법적인 사업 자체를 이유로 금융서비스 이용을 제한하지 않도록 어느 수준까지 규칙을 구체화하느냐가 될 전망이다.